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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관리기를 엎어 먹다_160425, 월

그리미의 허리 통증은 다시 도져서 2주를 지나 3주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MRI 촬영 결과 디스크 증상은 아직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꾸준히 운동으로 근육을 강화해 나가면 좋아진다고 한다. 우리의 단골 주치의인 본외과 선생님의 진단이다. MRI를 찍었던 병원에서는 150만원이 드는 시술을 하자고 했었다. 시술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해 버리니 무척 놀랐지만 촬영 영상을 가지고 가서 주치의에게 보여 드렸더니 안심이 되는 진단을 내려 주셨다. 좋은 주치의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운동, 그것이 중년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한 가지다. 건강을 잘 유지해 나가자.


그리미의 허리 부실은 우리의 행복한 시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일죽과 작동에서 200여 평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쪼그려 앉아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알았고, 보은의 3,400평 농사를 지으며 내 땅을 가지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마련한 음성의 내 땅. 불과 2,200평의 농사지만 제초제와 농약을 쓰지 않고, 주말마다 내려와서 부셔져라 가꾸면서 허리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땅을 가지고 가꾸는 것 자체를 즐기는 나와는 달리 농사를 잘 짓고 싶은 그리미는 땡볕에서 쉼없이 일을 했다. 그러면서 허리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허리 통증도 2주전 주말에 농원에 내려와 쑥 캐고, 딸기밭 정리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미의 일에 대한 열정은 몸의 고통과 맞바꿔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큰 일이 났다. 함께 하기로 한 농사일은 이제 모두 나의 일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동 부지런히 해서 어서 건강을 되찾아야겠다.


기계 일에 익숙해졌어도 여전히 일은 부담스럽다. 그리미를 출근시키고 돌아와 보니 이랑을 만들어 놓은 밭이 벌써 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비가 계속 내려서 작업을 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을 끝내야 겠다. 농로 포장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밭보다 약 30cm 정도 낮춰놓은 농로가 오늘 작업의 어려운 부분이다. 며칠 전부터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점검을 해 두었다. 높게 턱이 진 부분에 흙을 충분히 깔아서 관리기가 잘 올라갈 수 있도록 하면 될 것 같았다.


정농과 함께 삽과 괭이로 흙길을 만들어 가면서 대여섯 줄을 무난하게 작업하였다. 일이 잘 풀려나가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관리기가 조정이 안되더니 휙 뒤집어져 버린다. 턱이 진 부분에 흙이 충분히 깔리지 못한 데다가 관리기의 한쪽 바퀴가 걸려서 올라가지를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급히 관리기를 뒤집어 보려 했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이랑을 정리하던 정농께서 오셔서 힘을 합쳐 무사히 뒤집을 수 있었다. 놀란 가슴도 진정시킬 겸 잠시 안정을 취한 뒤 시동을 걸었더니 잘 걸린다. 한 고비 넘겼다. 턱진 부분을 호미와 삽으로 다시 작업을 하고 나머지 이랑들도 전부 손을 본 뒤에 다시 비닐 씌우기 작업에 들어갔다. 긴장을 하고 신경을 써서 사전 작업을 해 놓았더니 무난하게 작업이 이루어진다. 후우.


결국 오늘도 사고를 미리 예방하지는 못했다. 다친 사람이나 기계의 손상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사고가 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요즘은 기계들이 좋아져서 그나마 사고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경운기나 초기 트랙터로 작업을 할 때는 정말로 많은 사고가 났었다고 한다. 농부들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지만,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밭은 겨우 500평인데도 그 밭의 모든 부분이 서로 다르고, 사전 작업도 밭의 상황에 따라 달리 해야 하는데, 조금만 상황이 달라지고 나면 기계 조작에 문제가 생겨서 사고가 생길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조심 또 조심. 건강하고 안전하게 농사짓기 위해 노력하자. 절대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작업하자.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멀리서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고승의 목탁 소리처럼 분명하고 은은하게 들려온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초록이 물드는 논과 밭과 야산들을 둘러본다. 참 평화롭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