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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기계에도 점점 익숙해지는 모양이다_160411, C 403

농사철이 시작되자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불안하다. 과연 올해 농사가 무난하게 잘 될 수 있을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에 어렵사리 콤바인을 빌려 벼베기를 뒤늦게 하고, 비를 맞지 않은 상태에서 무사히 벼를 말려 탈곡까지 끝내는 과정이 매우 초조했었다. 잘 끝내고 여유가 생겨서 가을갈이를 한다고 쟁기를 빌려서 작업을 했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끝마무리가 쉽지 않았던 여운이 남아서인지 기계 일에 대한 부담은 여전했다.


첫번째 일은 트랙터 작업이다. 농기계 임대센터에 농업인 안전보험 가입증명서를 보내고 곧바로 트랙터와 배토기(이랑만드는 기계), 로터리를 임대했다. 총 13만원. 43마력의 트랙터를 빌릴려다가 힘센 48마력이 있기에 시험삼아 빌려보았다. 빌릴 수 있는 날자가 3월 28일 월요일 뿐이라 일요일에 농원으로 내려가서 아침 일찍 임대센터로 갔다. 많은 농민들이 기계를 임대하러 와 있었다. 농사일이 시작된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센터가 바쁘다 보니 열시가 다 되어서야 기계를 농원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기름을 채우고 막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센터에 전화했더니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30분을 기다려 담당자가 오더니 발밑에 있는 레버 하나가 살짝 건드려져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고작 살짝 틀어진 레버 하나 ???!!!


결국 11시가 다 되어서야 밭작업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기계가 너무 많이 밭을 밟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어 최소한의 로터리 작업 후 바로 이랑만들기에 들어갔다. 우리 밭은 모양도 좋지 않고 이리저리 쪼개져 있어서 작업하기가 쉽지 않다. 이랑은 똑바로 만드는 것이 기술인데 작업환경이 좋지 않다보니 쉬운 일은 아니다. 첫 이랑 두 개를 두 번만에 겨우 완성하고 났더니 감이 왔다. 아주 똑바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비닐 씌우기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는 되었다. 멀리 바라보며 천천히 작업하는 것이 핵심기술이다. 얼마나 단순한가. 그런데도 아랫밭 작업을 마치고 나니 온몸이 뻣뻣하다. 90분 정도 걸렸다.


윗밭은 점심을 먹고 작업하려다가 혹시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을까봐 로터리 작업을 먼저 해 두기로 했다. 천천히 윗밭을 갈기 시작했는데, '덜커덩' 요란한 소리가 난다. 뭘까. 기계를 세우고 살펴 보았더니 로터리 사이에 낡은 철근이 걸려 있다. 열심히 걷어낸다고 했는데도 지주목으로 쓰던 철근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다행이 오래된 철근이라 로터리를 손상시키지 않고 휘어져 나온다. 아래밭에서는 한 개만 나왔는데, 윗밭에서는 세 개나 나왔다.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밭정리를 해야겠다. 한 시가 다 되어서야 로터리 작업이 끝났다.


트랙터를 세워두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긴장한 데다가 오랜 만에 하는 작업이라 피곤했던지 밥도 잘 먹히지를 않는다. 국물에 말아 훌훌 씹어 마시면서 제육볶음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고 얼른 점심을 끝냈다. 커피 한 잔 하면서 잠깐 쉬다가 다시 트랙터로 달려갔다. 기름을 한 가득 채우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번에는 잘 걸렸다. 여러 회사에서 만드는 것들을 빌려 쓰다보니 시동은 물론이고 작동법도 완벽하게 알 수가 없다. 조정하는 것이 회사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본 기능이 어느 정도 익숙해 져서 큰 어려움 없이 작업이 이루어진다. 고마운 일이다.


오후 이랑 작업은 잘 나간다고 좋아하다가 실수한 것을 발견했다. 마지막 이랑을 만들며 빠져 나오는 곳으로 이랑의 끝을 맞춰야 하는데 반대로 작업을 해 버린 것이다. 되돌릴 방법은 없다. 30% 정도 작업한 것을 다시 로터리를 치고 다시 작업해야 했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다. 일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여지 없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의 순서를 충분히 생각하고 했어야 하는데, 부분적인 이랑 만들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런 실수가 생긴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랑 모양이 다소 훼손되고 손 봐야 할 부분들이 좀 더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그런데로 일은 빨리 끝이났다. 이제 이랑 만들기에도 적응이 된 모양이다.


이랑을 만들어 놓고 바로 비닐 씌우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날이 너무 가물어서 비를 좀 맞히고 씌우기로 의논이 되었다. 며칠 후에 비가 내렸다. 4월 11일 월요일. 그러니까 꼬박 2주일 만에 이랑에 비닐을 씌운다. 그런데 밭에 끌어다 놓은 관리기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정농께서 걱정이 많으시다. 점심을 먹으면서 기계가 고장이면 수리를 맡기고 임대센터에서 빌려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 둔 것이다. 기계를 밭에서 끌어내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같아 걱정은 되었지만 잘 될 것이라 믿고 밭으로 갔다.


관리기가 이랑을 반쯤 타 넘고 기울어진 상태로 서 있었다. 연료탱크에도 기름은 들어있어서 기름 부족은 아닌 모양이다. 시동기를 땡겨 보았지만 엔진은 부르릉 거리기만 한다. 기어를 풀고 관리기를 평평하게 자리 잡아 놓은 뒤에 기름을 보충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시동을 걸어 보았다. 역시 안된다. 흠, 문제가 생긴 것인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한 번 시동을 당겼다. 안된다. 또 다시 한 번. 안된다. 잠깐 또 쉬었다. 두 세 번 해 보고 안되는 기계는 자꾸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일단 여유를 갖고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좋다. 시동이 안 걸리더라도 기계를 끌고 나가서 임대센터로 이동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조심해야 한다. 다치지 않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동을 걸어보자. 천천히 준비하고 휘익 잡아당겨 보았다. 헛, 시동이 걸린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시동이 걸리지 않은 원인은, 기계에 기름이 부족했고, 옆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엔진룸으로 기름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으며, 다시 기름이 공급될 때까지 몇 번의 시동과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차암 단순한 이유였는데 알 수 없었으니 답답했다. 어쨌든 만세.


비닐 씌우기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마침 바람도 잔잔하여 비닐들이 날리지도 않았고, 마무리가 필요한 처음과 끝은 힘을 합쳐 천천히 마무리를 했더니 기분좋게 잘 정리가 되었다. 생각같아서는 전체 밭을 다 끝내고 싶었는데, 한 번 더 비를 맞힌 뒤에 씌우자 하시는 정농의 의견에 따라 아랫밭 일은 남겨 두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수없이 여기저기 인사를 하며 농원에 들어와 기분좋게 샤워를 했는데, 비보가 날아든다. 그리미가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아버님의 생신 모임을 하고 농장에서 쑥뜯기와 딸기밭 정리를 했는데, 서 너 시간 쪼그려 앉아서 일을 한 모양이다. 그렇고 나서 월요일에 아이들과 텃밭 가꾸기를 하던 중 허리를 삐끗했다는 것이다. 이제 막 올 농사일에 자신이 붙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데, 또 심장이 콩닥거릴 일이 생긴 것이다. 부랴부랴 부천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오늘 헤어진 그리운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기쁘고, 농사일도 한 고비를 넘겼다 생각하니 그런 모양이다. 지금은 일어나지 못하지만 근육통이니 금방 회복될 것으로 믿기로 했다. 그래 좋은게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