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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검불이 문제다_151125

김장 준비를 위해 장에 가서 굴, 돼지고기, 쇠고기, 맥주, 냉동새우, 고등어, 과자와 음료수 등등을 사왔다. 은행에 들렀더니 한발자국에 1초 정도 걸려야 겨우 거동이 가능하신 할머니가 노령연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러 오셨다. 잘 들어와서 통장에 잔고가 쌓여 있어도 아픈 몸 때문에 얼굴은 밝지 못하시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장날 구경을 나오셨으니 좋은 일이다. 맛좋은 꽈배기라도 사서 드시면 얼굴이 밝아지시겠지. 느릿느릿 보행기에 의지해서 궂은 날의 장터라도 돌아다니실 수 있으면 인생의 기쁨인 것이다. 웃고 살자.

 

웃고 살아야 하는데, 흑미 도정을 하던 정미기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 볏가마 들어 올리기도 힘든데 기계마저 말썽을 피우는 듯 하다. 일단 전기상태를 보면 과부하는 아니다. 모터를 만져 보아도 심하게 열을 받은 느낌은 아니다. 중간 층에 걸려 있는 지푸라기와 검뎅이를 전부 제거하고 다시 돌려 보았다. 여전히 왕겨가 배출되지 않는다. 천천히 돌려도 마찬가지다. 왕겨 배출용 모터가 고장이 났나 보았지만 쌩쌩 잘 돌아간다.

 

지켜 보시던 수천께서 한 말씀 하신다. 검불이 문제다. 검불을 제거하고 벼를 쏟아서 작동을 해 보았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이것도 아닌가. 2, 3분을 더 돌리고 났더니 왕겨 배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그렇군. 어머니의 10년 농사 경력을 4년차 농부 아들이 따라가지를 못한다. 책은 내가 더 많이 읽었는데. 흠.

 

굵고 기다란 지푸라기를 걷어내면서 정미기를 돌렸더니 잘 돌아간다. 총 270kg의 벼를 돌려서 180kg 정도의 흑미를 얻었다. 한 밤중에 콤바인 작업을 한 것이라 검불이 많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래도 많이 나왔다. 목과 얼굴이 따끔거리지만 일 하나를 또 끝내고 났더니 개운하다.

 

동네분이 주문하신 흑미 20kg을 배달해 드렸더니 어머니 용돈 12만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