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경사가 생겼다. 이장댁 조카딸이 행정고시에 최종 합격했다고 한다. 오는 토요일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이신단다. 김영상 대통령이 일생을 마쳤고, 물대포에 맞은 농민은 아직도 일어나시지 못하는 모양이다. 시리아는 세계의 폭격을 받고 있다. 어우리패는 필리핀으로 공연 여행을 떠난다.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김장이 미뤄지는 바람에 오늘에야 배추를 뽑아서 토요일에 김장을 하기로 했다. 예상했던 상황이기는 하지만 막상 배추를 뽑는데, 성한 것이 거의 없다. 300개의 모종을 사서 심었으니 아무리 안되어도 200개는 되어야 할텐데.
300개 대부분 크기는 잘 컸다. 속이 잘 차서 묵직한 느낌이 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지 겉잎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당 부분이 누렇게 짓물러져 버렸다. 속상해 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려니 하고는 있지만 아쉬움은 있다. 올해는 잘 된 벼농사만 생각하고 안된 농사는 잊어야 한다. 원인은 가뭄과 늦은 시기로 둘러대고 마음을 가라 앉힌다. 그 배추를 따서 옮기는데 이두박근까지 저리니 사기가 더 떨어진다.
당근도 뽑았다. 파릇파릇 이파리가 예쁜 당근들은 제법 많이 기형으로 자랐다. 모종을 하느라 옮겨 심었더니 자리를 잡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잘 생긴 놈들이나 작은 놈들이나 맛이 좋을 것으로 믿어본다. 한참을 서서 이파리를 떼어낸다. 오전에 배추를 뽑을 때는 두겹으로 입은 옷으로 버티다가 찬기운 때문에 몸살기를 느꼈는데, 바지도 한 겹 더 껴 입고, 파카도 둘러입고 일을 하니 등이 뜨끈하여 일할 만하다. 도로를 내느라 파묻힌 밭의 한쪽에서 갓이 씩씩하게 잘 자랐다. 수천께서 매우 좋아하신다.
마지막으로 쪽파. 쑥쑥 뽑아서 흙을 털어내고 뿌리를 잘라내는 것으로 끝. 어찌보면 참으로 간단한 김장 준비인데, 벌써 며칠째 두 분은 애를 쓰고 계신다. 배추 씻어서 절이고 버무리는 것으로 김장도 끝날테니 앞으로 사흘만 더 고생하면 되겠다.
못난이 배추에 대해 말씀 드렸더니 장모님께서 귀하고 맛있게 잘 먹을테니 걱정 말라 하신다. 그리미가 전해 준 그 말이 큰 위로가 된다. 카톡으로 날라 온 처제들의 격려도. 그런데, 아들 놈들은 어째 아무 소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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