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식품을 제외하고, 집안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물들을 완전하게 먹어치우고 집 떠날 준비를 마쳤다. 양상치와 토마토, 모짜렐라와 살라미로 점심시간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음료수까지 준비해 넣었더니 배낭은 무거울 대로 무거워져서 어깨가 휘청거린다. 공항에 가서 사 먹으면 될 것인데도 착실하게 준비한다. 짐을 부치고 나서 공항 의자에 앉아 먹는 샌드위치는 제법 맛이 있다. 예쁜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에서, 무늬는 단순하지만 멋진 디자인에 깔끔하고 맑은 접시 위에 올려놓고 먹었다면 더욱 맛이 있었을 것이다.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차를 가지고 가는 법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법이 있다. 지난 2, 3년은 차를 가지고 편안하게 이동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번에는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스탄불 숙소비로 날린 돈이 있어서 주차비라도 절약해 보려고 몸이 귀찮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소사역까지는 걸어서 15분이지만 짐을 끌고 가기에는 힘이 들어서 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처음에는 불쾌해 하던 기사분도 웃돈을 얹어 5천원을 미리 드렸더니 기분좋게 짐까지 싣고 내려 주신다.
인천으로 가는 공항버스는 한 시간에 두 대 정도가 있는데, 소풍 터미널에서 출발해서 소사역과 가스공사를 거쳐서 간다. 요금은 8천원. 처음 타보는 버스라 시간에 맞춰 도착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평일 한 낮이라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귀국할 때는 새벽 6시 20분이 첫차라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항은 매우 붐볐다. 만일 겨울방학이 이런 추운 시기가 아니고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2, 3월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학기가 3월에 시작되니 방학을 추운 겨울에 할 수밖에 없어서 시민들은 날씨 나쁜 한 겨울에 한 해를 정리하는 여행을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몰린다. 실제로 겨울 여행을 다녀 보면 세계 곳곳의 관광지가 한국 사람들로 넘쳐난다. 관광지들에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어차피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한국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유연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냉난방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학교나 회사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냉난방을 하게 되면 국가 전체 차원의 비용도 줄어들지 않을까.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회계연도도 4월 1일이나 5월 1일로 변경해 버리면 그만이다.
베이징의 숙소는 서우두 국제공항 특급열차를 타고 Dongzimen(東直門) 역에 내려서 구해 보려고 두 개의 호텔을 부킹 닷컴에서 검색해 두었다. 그런데, 김포공항 세관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의논할 시간이 생겼다. 모두에게 의견을 물으니 검색한 것 중에서 좋은 것으로 해 달라고 해서 아예 예약을 해 버렸다. 어떤 호텔이 좋은지는 모르겠다. Beijing Taiyue Suite Hotel. 아침까지 주는 데도 세사람 숙박료가 74,000원이니 정말 저렴하다.
추운 날씨와 살인적인 스모그로 시달린다고 해서 걱정을 매우 많이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북경은 매우 포근하고 푸르렀다. 비행기도 7천 미터 이내에서 낮게 운항해서인지 착륙할 때 귀도 아프지 않았다. 북경은 72시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하고, 그럴 경우 비자 심사도 매우 간단하다. 잔뜩 늘어서 있는 줄과는 달리 특별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짐도 찾지 않으려고 했는데, 짐이 공항을 떠돌다가 분실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짐을 찾았다. 다음 번에는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봐야겠다. 짐을 끌고 다니는 여행은 매우 불편하다. 생각과 달리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짐이 이송되어 왔다. 완완디가 아닌 모양이다. 짐을 끌고 다니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공항 안에 있는 수하물 보관소에 70위안에 가방 두 개를 맡겨 두었다.
철도와 지하철 시스템은 매우 좋았고 한 낮이어서인지 사람도 적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산위안지하오에서 내려 10호선 열차를 갈아 타고 3번째 정거장에 내렸다. 공항철도와 일반 열차의 승차권이 연계되어 있지 않아서 표를 두 번 사야했고, 100위안 지폐로는 티켓판매기를 이용할 수 없어서 줄 서서 공안에게 표를 구입해야 했다.
전혀 새롭지 않은 도시의 거리다. 사람도 시스템도 아파트와 빌딩까지도. 호기심이 전혀 발동되지 않는 상태에서 서울의 거리를 걷듯 북경의 산리툰 거리를 걷는다. 숙소가 1.2km라고 해서 멀다고 생각했는데, 짐이 없어서인지 어렵지 않게 이동했다. 그런데, 예약자 명단에 우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아가씨는 그냥 들어가 버린다. 뭐 어쩌란 이야기야. 잠시 황당했는데, 남아 있는 직원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예약이 없으니 패밀리룸을 이용하려면 518위안을 내라고 한다. 영어는 안통하니 나는 470위안(서비스 요금 15% 추가, 예약하면서 안내를 받아 알고 있었다)을 써서 주면서 이렇게 처리하라고 했으나 안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예약 확인서를 뒤져 부킹닷컴의 콜센터 전화번호를 주고 확인해 보라고 했다. 잠시 후 영어 소통이 가능했던 여직원이 다시 나오더니 그 번호로 전화를 걸고, 옆 직원과 이야기 하고, 왔다갔다 하고, 15분 동안 온갖 쇼를 다 한다. 그리고 되었단다. 470위안.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없다. 아이구 허리야. 아무래도 부킹 닷컴에 항의를 해 두어야겠다.
불편한 허리를 침대 위에 눕히고 쉰 다음에 저녁을 먹고 천안문 광장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 앞의 그럴싸한 음식점으로 갔다. 바로 앞에서 양꼬치를 굽고 있기에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현금을 챙겨보니까 별로 많지가 않다. 하루밤 자는 것이라 별로 돈을 챙기지 않았는데, 짐을 맡기는 비용이 추가되는 바람에 돈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주문을 받으시는 아주머니에게 카드를 흔들며 물었더니 쓸 수 있다고 한다. 안심이 되었다.
닭고기, 마파두부, 야채 볶음밥, 백반을 시켰더니 70위안. 먼저 계산을 하라고 해서 그리미와 우주신을 보냈는데, 카운터에서 난리가 났다. 우리 카드는 안되는 모양이다. 가지고 있는 현금은 전부 65위안. 주인이 열을 내며 시끄럽게 떠들다가 우리 자리에 꺼내진 현금을 보더니 말도 없이 확 그냥 가지고 간다. 예의 없는 행동에 그리미가 열을 받았다. 어쨌든 밥은 주려나 보다. 중국인들과 어울려 노는 백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중국인이어서 걱정은 되었지만 다들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우리도 잘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안심했다.
착각이었다. 가장 자신있게 주문했던 마파두부(20위안). 중국 발음도 거의 똑같아서 친근하기까지 했던 이 음식.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왜 이리 혀를 아리게 하는 맛이 있을까. 마치 떫은 무엇을 먹은 것같은 뒷맛. 게다가 양념을 얼마나 많이 넣어줬는지 짜다. 흰밥(미판 3위안)이 없었으면 도저히 먹어낼 수 없었다. 신기한 것은 강한 뒷맛이 1~2분쯤 지나면 입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닭고기 야채볶음은 뼈까지 박살을 내서 요리를 해왔다. 맛이 있었는데, 살들을 골라서 조금 먹고 났더니, 남은 부분은 대부분이 뼈다귀 박살난 것들이어서 먹을게 별로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기름에 튀겨진 고추들이 함께 조리되어 있어서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먹을만했다. 야채 볶음밥은 그냥 먹기 힘든 비빔밥이었다. 기름에 튀겨진 고추들과 같이 다 먹을 수 있었다. 특별히 푸대접을 받은 것은 없지만 첫 발을 잘 뗀 것 같지는 않았다. 본의 아니게 5위안을 할인받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는 것에 만족하고 식당을 떠난다. 지갑에는 이제 한 푼도 없다.
지하철 요금이 없어서 ATM을 찾았다. 사방에 널려 있었다. 첫번째는 실패. 왜 안 나왔는지 모르겠다. 방콕과 이스탄불에서 겪었던 현금 인출 불가의 상황이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행이 두번째는 성공. 넉넉하게 500위안을 뽑았다. 지갑이 두둑해 지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사람은 왜 이럴까.
지하철 시스템은 역시 잘 되어 있었다. 천안문 광장 앞은 야간이어서 그랬는지 무척 썰렁했다. 스무 명 내외의 관광객들과 같이 광장을 점유하고 천천히 둘러 보았다. 곳곳에 공안이 배치되어 있어서 기분은 나쁘지만 안심이 된다. 어디서 무슨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공기도 맑고 날도 춥지 않았다. 별조차 볼 수 있었다.
천안문은 '수명우천 안방치민(受命于天 安邦治民)'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평화롭게 통치한다. 오늘날 모든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저런 분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선한 의지에 따라 하늘에 거스르지 않게 평화로운 정치 행위를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묘하게도 마오의 초상화가 매우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다는 것이다. 강력한 권위로 신처럼 묘사되어 있을 줄 알았던 그가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덩샤오핑의 평가대로 '공은 60이고, 과는 40'이니 천안문에서 그의 초상은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작은 홈통안에 숯불 몇개를 올려두고 드라이기로 불을 살려가며 꼬치를 굽는 젊은 청년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서 양꼬치(1.5위안) 4개와 닭달개 숯불구이(2개가 한꼬치, 5위안) 3개를 사서 방으로 들어갔다. 양꼬치 너무 맛있다. 다시 나가서 더 사오고 싶었는데, 그저 그런 닭날개 맛을 보다가 배가 불러졌다. 우주신도 너무 아쉬워한다.
여느 때와 같이 속옷과 양말을 빨아서 마른 수건에 넣어 짜서 널어놓고, 뜨끈한 라디에이터에 등판을 지진 다음 잠이 들었다. 여행은 또 다른 곳에서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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