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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발칸 크로아티아 여행

[겨울 비엔나 여행] 인류와 자연의 창조는 재결합되어야 한다_160106

6시부터 잠이 깨어 억지로 눈을 부치고 누워 있다가 7시가 다 되어 세수를 하고 식사를 하러 갔다. 예상한 것 보다는 다양한 메뉴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이와 토마토, 파프리카  등의 채소가 있었고, 빵도 4종류, 잼과 버터, 우유와 차 등 더 이상은 필요없는 아침 식사다. 숙소가 너무 조용해서 사람이 없나 했더니 식당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내려왔다. 조용하고 예의있게 머물렀던 모양이다.


오늘의 계획은 베토벤과 모짜르트, 슈베르트가 묻혀 있다는 중앙묘지(Wiener Zentral Triedhof)를 가는 것이다. 7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하고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사한 슈베르트는, 죽음을 앞둔 베토벤을 일주일 전에 극적으로 만나 자신의 악보들을 보여준다. 베토벤은 '자네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내 생명은 이제 다 되었네. 자네는 분명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베토벤의 모습에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슈베르트는 장례식에서 관을 직접 매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년 뒤인 1828년에 병사한 슈베르트는, 소원대로 베토벤과 나란히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하고 있지 않을까. 


모짜르트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791년에 죽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그의 뒤를 이었으니 비엔나라는 도시는 이들의 명성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모짜르트의 무덤에는 시신이 없다고 하는데, 모짜르트가 너무 가난해서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지 못해 시신이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모짜르트는 번 것 보다 너무 많이 써서 그렇지 결코 가난하지 않았으며, 그의 시신은 비엔나 중산층의 전통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시신과 같이 묻혔다가 여러 번 이장되어 유실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후 아내인 콘스탄체가 그의 유고들을 정리해서 많은 돈을 벌었으며, 재혼한 후에 모짜르트의 전기를 썼다고 한다. 그의 묘에는 기념비가 서 있는데, 아내인 콘스탄체의 조각상이 그의 부조 위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무슨 의도일까.



이런 위대한 음악가들의 남겨진 모습을 보려고 한 계획은 틀어졌다. 눈이 많이 내려서 교외로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대신에 미술사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훌륭한 선택이었다. 나쁜 선택도 있었다. 익숙지 않은 비엔나 시내에서 미술관을 보다 쉽게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실패였다. 부킹 닷컴에서 제공하는 오프라인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숙소 인근의 관광지에 대해 안내를 해 주는 서비스인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예상과는 달리 길안내가 원활하지 못하다. 두꺼운 구름 때문에 GPS와의 교신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자동 로테이션으로 해 놓은 화면이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위치에 따르는 방위 설정을 잘못한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하루 종일 지도 한 장 보다 못한 기능으로 속을 썪다가 숙소로 돌아올 때는 문제 없이 잘 돌아왔다. 길을 알고 이용을 해서 그런 것일까. 원래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는 것은 천재의 담당이었다. 그 자리를 내가 메꿔 보려고 준비를 했는데,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안내 책자의 허접한 지도를 보며 길을 잡아가는 그리미의 솜씨가 더 훌륭했다.


헤매는 와중에도 가는 길에 쿤스트하우스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먼저 들르기로 했다.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라는 별명답게 훈데르트바서의 아파트는 타일로 아기자기하고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1929년생인 그는 오스트리아가 나찌에 병합되면서 유태인을 탄압할 때 외할머니를 비롯한 69명의 친척을 잃는 아픔을 겪으며 게토로 강제 이주를 당하는 슬픔을 겪었다고 한다. 전후에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자유롭고 풍요로운 백개의 강)로 스스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자연의 곡선을 사랑하고 인간과 자연의 창조물의 조화를 추구했던 그는 회화에서 건축까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그의 건축물 중에는 대지의 경계를 무시하고 지붕위에 흙을 덮거나 대지 아래에 건축을 한 것도 있다고 한다. 아직 10시가 되지 않아서 박물관 내부는 들어갈 수 없어서 매우 아쉬웠지만,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즐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 앞에서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 그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깨달았는데, '창문의 권리'를 존중해서 다양한 형태로 만든 창문들과 풀밭지붕이 만들어 내는 어지러운 듯한 외형이 만들어 낸 감정이었던 모양이다.




U3를 타고 포크스가든(Volksgarden / 전철비 인당 1.1 유로 / Wien card를 구입하려다가 계속 돌아다닐 일이 없을 것같아 그때 그때 구입하기로 했다)에 내려 미술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1인당 15유로.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학생 무료 입장권이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세 사람 티켓을 달라고 한 것은 실수였다. 훌륭한 미술관을 유지한 빈에게 주는 팁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볼만한 것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언제나처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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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우피치나 루브르나 오르세를 뛰어넘는 가장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생각한다. 나찌 추종과 인종 차별이라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여행하고 싶지 않은 나라의 하나였는데, 이 미술관만큼은 만족스럽다. 아침부터 4km 이상 이리저리 걸어 다니느라 다리가 아파 엘리베이터로 2층으로 올라가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림 전시관이 정말 좋았다. 램브란트, 뒤러, 브뤼겔, 루벤스, 카라바지오, 클림트 등등 꼭 보고 싶었던 그림들을 볼 수가 있었다. 게다가 모든 그림들 앞에 제대로 된 거대하고 편안한 쇼파가 놓여 있어서 원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서 편히 쉬면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은 미술관을 다녔지만 이렇게 관람객을 위하는 미술관은 없었다. 20유로에 도록을 하나 구입하는 사치를 부렸다. 그림에서 얻은 감동이 워낙 커서 그 감동을 도록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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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보고 싶어서 재입장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불가능하다고 한다. 네 시간 정도로 관람을 끝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다음에 올 일이 있으면 샌드위치와 따뜻한 음료를 준비해서 하루 종일 여유있게 보아야겠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조각과 부장품들은 너무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림만큼 멋있었던 것은 이집트 신성문자와 바빌로니아의 문자다. 영어 안내가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알파벳의 기원인 것처럼 보이는 안내판을 보면 페니키아의 문자일 수도 있다.


미술관을 나와 트램역 앞의 케밥집을 그냥 지나쳐 시청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실수였다. 힘든 다리를 질질 끌며 찾아간 시청은 공사중이었다. 사진 몇 장 남기고 Wien 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근사한 레스토량들이 연이어 있었는데, 단가가 높아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빅맥을 먹으며 다리를 쉬기로 했다. 빅맥 메뉴 2개와 빅맥 치킨(합 17.5유로)으로 주린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와이파이도 잘 터지고 넓은 매장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이곳이 없었다면 가난한 여행자들은 트램역의 케밥을 길 위에서 먹어야 할 것이다. 케밥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싼 가격이지만 난방이 되어 따뜻하고 넓은 탁자와 화장실을 비롯한 쉴 곳이 잘 마련되어 있으니 추운 길가나 부담스러운 레스토랑 보다는 훨씬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맥도널드 매장에서 이런 안식을 느끼다니.



합스부르크 왕가의 호프부르크 왕궁(Hofburg), 모짜르트가 미사곡 연주를 했다는 페터교회(Peterskirche), 슈테판 성당(St. Stephansdom) 등의 명소들이 찾을 필요도 없이 주욱 이어져 있었고, 별다른 감흥없이 기념 사진을 찍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볼만큼 본 것들의 재판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중앙역(Wein Mitte)에는 거대한 mall이 있는데, 이곳에 늦게까지(오후 9시) 영업하는 유일한 슈퍼마켓이 있다. 물건의 종류도 별로 다양하지 않고, 가격도 비싼데 사람으로 꽉 차있다. 닭고기살 튀김 두 조각에 4.6유로니까 5천원이나 한다. 밥을 하려고 쌀을 찾았는데,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즉석밥만 있고 쌀은 팔지 않는다. 카르푸와 같은 대형 매장에는 이런 물건들이 갖춰져 있는데, 동네 슈퍼 정도 크기의  마켓이라 그런 모양이다. 빈은 인종 백화점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없으니 당황스러웠다.




비록 쌀을 사지 못해서 따뜻한 밥을 지을 수 없었지만 저녁은 햇반 세 개와 된장국 3그릇, 오이 한 개, 무말랭이, 닭고기 살 튀김, 김가루로 푸짐하게 차려 먹었다. 맥주는 사람들이 많이 고르는 것을 사왔는데, 좀 더 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나 먼 이국에서 멋진 레스토랑에 들어가 근사한 웨이터들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기는 하지만 상황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일년 매출이 고작 천만원인 농부가 그런 호사를 누려서야 되겠는가. 여우가 먹지 못한 신포도처럼 그런 멋진 식사는 아마도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일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밥과 국과 김치가 함께 하는 식사가 편안하다. 놀러 와서 밥을 준비해야 하는 그리미를 열심히 도와서 힘들어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저녁을 먹고도 시간은 8시다. 주변에는 주택가와 피자집 밖에 없다. 틴휘슬로 타이타닉 주제가를 연습하다가 일기를 쓰고 자기로 했다. 원곡을 연주한 틴휘슬은 음정이 더 낮은 모양이다. 안되겠다. 다른 곡을 먼저 연습해서 휘슬을 손에 익힌 후에 연주가 가능한지를 판단해 봐야겠다. 휘슬 소리는 매우 높고 강렬하다. 멋지게 연주한다면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언제나 고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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