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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시골집이 가벼워졌다_151118

이틀동안, 비가 온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장구를 두드리다가 어제 저녁 8시부터 12시 반까지 단장님 지도 아래 무려 4시간 반을 집중 훈련했다. 시간이 쌓이면서 가락과 장단이 몸으로 스며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행이 비가 내리지 않아 정미를 하려고 문의했더니 오후 2시에 오란다. 일찍 점심을 먹고 30kg 포대 22개를 등짐을 져서 마음이에 싣고 있는데, 이슬비가 떨어진다. 포장을 씌우고 정미소로 갔더니 그 사이에 들어온 벼가 있어서 시간이 더 걸리겠다고 한다. 잘 되었다. 마침 장구채를 지참했다. 라면 박스 앞에 놓고 굿거리와 삼채 합주가락을 연습했다. 거의 다 익숙해질 무렵 차를 대란다. 올 때마다 정신없이 바쁜 정미소에서 일하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체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소음도 장난이 아니어서 정신집중이 안될 정도다.

 

벼 : 29kg x 22ea = 650kg을 가져다가 쌀 : 20kg x 25ea = 500kg(현미 12개/찹쌀 13개)로 정미했더니 정미료 9만원(15,000원 x 6가마)이 들었고, 포장용 20kg 비닐 50장을 만원(250원인데, 200원으로 할인)에 구입했다.

 

비닐을 파시는 아주머님은 벌써 53년 동안 이 장사를 하고 있는데, 군대간 남편을 면회하러 갔다가 그 당시 처음 본 비닐이 가볍고, 반짝반짝 빛나고 예뻐서 한바퀴 사다가 팔기 시작한 것이 오늘처럼 거대 기업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가족 비즈니스로 이런 좋은 사업이 없다고 한다. 나중에 은퇴하실 때 가게 넘겨달라고 했더니, 그러마 하시며 비닐값을 50원이나 깎아 주신다.

 

비가 제법 쏟아진다. 잠시 쉬었다가 통닭이라도 한 마리 사갈까 했는데, 오는 길에 통닭집이 보이지 않는다. 비도 내리고 피곤하기도 하여 그냥 집으로. 다행이 쌀을 내릴 때는 비가 오지 않아서 어렵지 않게 콘테이너로 옮길 수 있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등짐을 졌다. 많이 먹어서인지 작년보다 다이어트 효과는 적다. 대신에 쌀이 많이 나왔다.

 

거의 10년만에 친구들로부터 쌀 2가마를 주문받았다. 농부에게서 농산물을 그냥 가져가는 것은, 월급쟁이 지갑에서 대가없이 현금을 가져가는 것과 같지만, 친구들에게까지 쌀을 팔고 싶지는 않다. 처가집에도 그렇고. 한 포대씩 툭툭 던져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언젠가 그리 될 날도 오겠지.

 

다음 주까지 남아있는 벼들 특히 흑미를 정미하고, 여기저기 택배를 보내고, 처가집에 강매한 쌀을 배달하고 나면 농사가 거의 끝나고 밭을 정리하는 일만 남는다. 우주신을 데려다가 일을 시켜야 하는데, 학교가 쉬지를 않으니 어쩌지. 흠.

 

쌀창고는 무거워졌으나, 나무들이 헐벗어서 시골집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