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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마늘을 심기로 했어_151113 C 551

우주신 수능 때문에 부천에 왔더니, 어제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집들이 다 마늘을 심는데, 우리는 천재가 애써 만들어 놓은 마늘밭을 놀리고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시다고. 흐음,,,,

 

지난 8월에 우리 넷이서 오전 내내 땀흘려 만들어 놓은 마늘밭을 그냥 놀리려고 했던 이유는, 밭 전체에 흙을 받아 지면을 높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 밭이 산밭과 도로 아래에 있어서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흙탕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내려 작물이 쓸려가 버리곤 하지. 삼밭 농사짓는 사람의 배수처리가 잘못되어 그래. 한 동네 살면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계속 참아왔는데 - 우리 하우스 망가뜨린 것도 말만 하고 수리해 주지 않아서 정말 슬프다 - 마침 동네 야산을 택지로 개발하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흙이 생기게 된거야. 그 흙을 받아다가 - 흙은 공짜지만 트럭 2대 50만원 포크레인 1대 50만원 등 100만원의 비용은 들지 - 밭 전체를 높이게 되면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게 될거야. 마을 농로를 내어 주면서 잘려나간 밭이 100여 평 되는데,  이 공사를 하게되면 덤으로 그 정도의 면적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빗면으로 처리된 밭둑이 모두 밭으로 바뀌니까 말이지. 뿐만 아니라 땅 모양이 훨씬 좋아져서 나중에 진짜 그림같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것같아.

 

밭 전체에 흙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만들어 놓은 마늘밭도 묻히게 되어 마늘을 심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와 함께 만들어 놓은 밭을 보고 있자면 슬그머니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제 할머니 전화를 받고 결심했다. 밭을 정리하는 것은 나중에 하고, 일단 마늘을 심자. 마늘밭 옆에 흙을 쌓아 두었다가 내년 여름에 마늘을 캐고 흙을 밀어서 채우면 될테니까. 말이 안되는 일이기는 해. 봄 장마비에 흙이 전부 유실될 수도 있고, 쓸려내리는 흙에 마늘밭이 매몰될 수도 있거든. 그래도 너와의 추억을 버리시지 않겠다는 두 분의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 정도 피해와 고생은 각오하기로 했어. 혹시 네가 휴가를 나오게 되면, 마늘 캐고 밭 정리할 때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좋겠지. 우주신도 같이 할 수 있으니 더더욱 즐거울 것이고.

 

The people I have been working with are just so exasperating. just so는 강조, exasperating은 골칫덩어리로 해석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오후 4시 기차로 부산으로 떠난다. 너를 임신하기 전에 다녀왔으니까 거의 23년 만이지.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고집 안피우려고 해. 사랑한다, 행복한 시간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