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든 중국사든 로마사든 역사를 읽다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야만족이다. 역사 서술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 야만족이니 공정하지 못하고, 모든 문화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으니 그들을 '북방민족'이라고 불러야겠다. 흉노족으로 시작해서 선비족과 유연족, 여진족과 만주족, 돌궐족과 말갈족 등등. 이들의 역사가 배우 궁금해졌다. 마침 한울빛 도서관에서 중국인이야기를 빌릴 수 없어서 이 책을 집어왔다. '흉노제국이야기'. 재미있다.
"2004년 말, 2천 5백여 명의 헝가리인들이 정부를 향해 자신들이 '훈족'이란 사실을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비록 이들의 요구는 헝가리 국회와 민족종교사무위원회로부터 기각당했지만, 훈족의 후예들이 유럽에 존재하고 있는지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1천 5백여 전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의 속표지에서)
이 이야기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스스로를 훈족이라 생각하는 헝가리인들은 누구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헝가리 국회는 왜 이들의 요구를 기각했을까.
"암벽화에 묘사된 고대 유목민족의 기병 : 유목 궁수들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등에서도 정확하게 활을 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이들의 기사법에 대해 켄타우로스(반인반마) 전설의 기원이라고 여겼다." (18쪽 그림 설명에서)
켄타우로스 전설의 탄생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었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여부를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신화의 근거는 인간의 상상력이겠지만, 상상력도 무엇에 의해 자극받지 않고는 발휘될 수 없다. 강력하고도 무시무시한 북방기마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상상력을 자극할 만하다.
"(흉노군의 핵심 전술 중 하나는) 적을 함정으로 유인하여 공격하는 전술이다. (중략) 기원전 99년, 한무제의 장수 이릉은 보병 5천 명을 이끌고 천리 밖으로 흉노를 토멸하러 떠났다. (중략) 북쪽으로 한 달 넘게 걸어 흉노의 근거지에 다다랐지만 흉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중략) 산골짜기에 고립된 한나라군은 비 오듯 쏟아지는 흉노군의 화살 속에 결국 참혹한 패배를 겪고 말았다. 이 전쟁에서 장수 한연년이 전사하고 이릉은 투항했으며 5천 군사 중 겨우 4백여 명만 살아 돌아왔다. 이 광경이 흉노가 사용한 유인 전술이다." (24~5쪽)
흉노의 유인전술에 섬멸당한 한무제의 군대와 그 군대를 지휘했던 이릉. 패배하고 투항한 이릉의 운명을 따라 한 사람의 인생도 바뀐다. 사마천. 이릉의 전투가 훌륭했음을 엄호하다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사기'의 완성을 위해 궁형이라는 비참한 선택을 한 사람이다. 강력한 흉노의 존재가 최고의 역사서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사기'에는 '흉노열전'과 '조선열전'이 있어서 한나라 당시의 국제정세를 다루게 함으로써 사라질 뻔했던 북방민족과 한민족의 역사가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는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흉노족의 존재가 가장 오래된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알아둘 재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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