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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달리면 삶의 의미가 보일까_철학자가 달린다 1_마크 롤랜즈 지음_151120

독서와 일과 음악과 운동은 균형있게 시간 배분을 해서 꾸준히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는 네 가지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 가장 먼저 하다가 언제나 뒤로 밀리고, 잊어버렸다가 문득 다시 '이러면 안되지' 하고 마음을 다잡고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도쿄돔에서 한국과 일본이 야구시합을 했다. 오타니의 큰 키와 160km를 넘나드는 빠른 볼, 뛰어난 제구에 놀아나며 3:0으로 뒤지고 있었다. 좋은 일도 많이 있는데 뭐 이런 답답한 경기를 보냐 하면서 8회를 보다가 TV를 끄고 드디어 책을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 30분 후에 한국이 4:3으로 역전승을 했다는 소식이 다음에 떴다. 부랴부랴 다시 TV를 켜고 짜릿한 역전의 순간을 확인했다. 독서는 그런 것이다.

 

"나의 아버지 피터 롤랜즈에게 바칩니다.

당신은 가셨지만,

우리가 함께 한 달리기는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참 아름다운 문장이다. 아내와 아들과 추억에 남을 달리기와 자전거 여행을 해 보고 싶다.

 

"달리기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효용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도구적 가치는 달리기의 주된 가치도 아닐뿐더러 사실이 아니다. (중략) 하이데거(1889~1976)는 현대사회의 본질이 '닦달(Gestell)', 즉 강요라고 주장했다. (중략) 현대사회의 닦달은 모든 것이 다른 것을 위한 자원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효용성이라는 기준에서 보고 이해한다.

 

(중략) 나에게 주는 효용이나 해악을 기준으로 대상을 판단하고 보니 그 대상의 다른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간과하고 마는 것이다. (중략) 달리기에는 다양한 도구적 가치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절정의 상태에서 달리기는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가치인 본질적 혹은 내재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중략)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중략) 우리의 삶은 목적을 위해 수단이 되는 일을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또 다른 목적의 수단일 뿐이다. 평생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목적과 수단의 쳇바퀴를 돌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가치를 좇아 달린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무엇인가를 만날 때 비로소 잠시나마 그 좇음은 끝이 날 것이다. (중략) 나는 달리기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나는 근본적으로 달리기에는 일종의 앎이 체화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다. 달릴 때 나는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비록 여러 해 동안 나는 내가 그랬다는 사실조차 몰랐지만 말이다. 이것은 새로이 얻은 앎이라기보다는 되찾은 앎에 가깝다. (중략)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가장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란 것은 인생 최대의 모순이다. 결국에 가서 나는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과 내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달리기는 남이 아닌 나의 삶의 초기에 내가 알았지만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서 잊기를 강요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는 장소이다. 누구나 그것을 아는 줄도 몰랐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달기기는 기억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달리기의 의미를 찾는다." (8~19쪽)

 

길게 인용해야 할 정도로 잘 짜여진 구조의 글이다. 생활의 한 가지와 철학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언제고 이런 식의 틀을 가진 글을 한 번 써 봐야겠다. 베껴보는거지. 수단과 목적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것이 과연 있을까, 수단에서 목적으로 다시 수단으로 변화되는 과정이 과연 인간을 그렇게 닦달하는 것일까. 동의하기 어려운데, 그래도 이것은 중요하다. 수단과 목적을 벗어나서 바라보고 실천하고 사유하면 그 행위의 내재된 가치 본질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어쨌든 달리기를 통해서 '삶에서 중요한 것', '삶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즐거운 기대감이 마구 차오른다.

 

- 철학자가 달린다 / 마크 롤렌즈 지음 / 강수희 옮김 / 추수밭(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