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달리기의 본질적 가치가 필요한가_철학자가 달린다 3_151125

책은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달리기의 본질적 가치는 나오지 않는다. 궁금하다. 혹시 벌써 나왔는데, 내가 이해를 못한 것인가. 아니겠지. 끝까지 가보자. 본질로.

 

"비트겐슈타인은 놀이라는 단어는 정의할 수 없다고 했다. 정의를 하려면 모든 놀이에 공통된, 그리고 놀이에만 국한된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중략, 캐나다 철학자 버나드 슈츠는) 놀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덜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활동이며, (중략) 놀이를 할 때 우리는 쉬운 길을 놔두고 일부러 힘든 방법을 택한다. 그래야만 놀이가 된다." (133~5쪽)

 

바둑에서 중요한 것은 맛보기다. 두 가지 이상의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착점을 찾아내야 한다. 오목에서 삼삼이나 사삼을 만들어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바둑도 마찬가지다. 두 배 또는 세 배의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도 그러면 좋지 않을까.

 

전거를 타는 이유는 이동을 하면서 즐겁기 때문이다. 운전은 두 시간을 하고 나면 몸이 뻣뻣해지고 몸살이 날 정도인데, 자전거는 그 두 배인 네 시간을 타고 나도 샤워만 하고 나면 개운하다. 돈도 들지 않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며, 아름다운 자연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주면서 교통 수단의 기능도 하니 어떻게 자전거를 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전거 타기의 본질적 가치가 꼭 필요한 것일까. 갑자기 마크 롤랜즈의 의문이, 철학자가 달리면서 떠올린 사유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는 느낌이 든다. 과연 그는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아니다.

 

"(움직이기를 넘어서서, 달리기의 고통을 넘어서서) 사유가 춤추는 곳인 달리기의 심장박동에 도달하면, 이런 목표들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중략, 슐리크는) 일을 놀이로 바꾸는 것은 순수한 창조의 기쁨, 활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움직임에 대한 몰두이다. 거의 언제나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위대한 마법이 있으니, 바로 리듬이다." (141쪽)

 

몰두와 창조의 기쁨. 모든 놀이의 기반이다. 놀이를 통해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카리나, 대금, 꽹과리, 장구 등등 뭐 하나 들고 가서 하루 벌어 하루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연습을 하자. 레파토리도 더 만들고.

 

"(쇼펜하우어) 의지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은 결코 깨닫거나 인식하지 않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특성이다. 인식이라는 것을 하려면 의지에 반하거나 (중략)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중략)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우리를 자극(하는 것을 통해야 한다. 중략)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만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관용, 인내, 관심과 사랑이기에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이를 빚지고 있(다.)" (166~170쪽)

 

사람은 근본적으로 불쾌한 것을 주로 인식하는 존재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은 훌륭하구나. 넓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듯이 열심히 서로를 사랑해 주라는 것이다. 그나저나 달리기의 본질은 언제나 나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