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이 없는 환자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읽는 책이니 이리저리 정리해 보자. 생각도 이리저리 떠돌 것이고, 무슨 책에서 받은 느낌인지도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는 읽은 기억조차 나지 않은 것이다. 엠페도클레스가 화산에 빠져 죽었다는 글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말이다.
(240803_이 책을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세월인 10년이 흘렀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이오니아의 세마학자scientist 중 한사람으로 엠페도클레스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의사로서, 빛이 무척 빠르지만 무한히 빠른 것은 아니고, 공기는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로 물도둑의 물을 조절할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의사였던 그는, 진화론의 싹에 해당하는 주장을 하는데, 많은 생물들이 자손을 잇지 못하고 멸종했고, 그들은 특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칼 세이건은 엠페도클레스가 지구물리학자로서, 에트나화산을 실제로 관측하러 갔다가 실족한 것을, 후대의 사람들이 화산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에빛진공)
동유럽에서 작가가 쓰는 모든 어휘들이 마음을 흔들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덮어버리지 않을 정도는 되어서 천천히 읽는다. '토지'를 읽지 못하는 한계가 반영된 것일까. 문체에서 느껴지는 답답함 때문인데, 작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그러나, 토지처럼 읽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갖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묻어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고 살고 있어도 또 살고 싶은, 이 간절한 기분." (150쪽)
굳이 우울함을 감출 필요는 없겠지만 계속되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들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나열하는 것이 멋있는 글쓰기일까. 외로움에서 빠져 나오려고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하는 50대에게 이런 글들은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있는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저 높은 곳에서 성곽 일주를 하는 사람들이 건포도 할 알 같은 나를 내려다보며 쓸쓸해보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점 하나는 불안해 보인다. 또 다른 점 하나를 찾아 선분을 만들려 하지 않으니 불온하고 오만하다. 어서 빨리 선분이 되어 도형을 이루고, 도형을 이루어 아늑한 내부를 형성하고 싶은 욕망이 지금 내게는 아주 멀리 달아나버린 것만 같다. 점 하나의 가능성. 혹은 영원히 아무것도 아닌....." (162쪽)
인간에게 삶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끊임없이 살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죽기 위해 노력한다. 살고 싶어도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쉽게 죽지를 못한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고, 눈이 떠지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게 살고, 눈이 감기면 누워 자거나 아파 눕거나 죽음의 긴 잠으로 빠져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죽음이 두려우면, 죽은 뒤에 벌어지는 온갖 즐거운 일들을 상상하면서, 죽음을 즐겁게 맞이 하기 위해 세뇌를 시켜야 한다. 삶이 괴로우면, 괴롭지 않은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전쟁이 없는 곳으로 피해 다니는 난민들처럼, 괴로운 삶을 피해 평화와 와아happiness를 찾아다녀야 한다. 그럴수도 없다면, 견디거나 웃어야 한다.
"내전기의 유고슬라비아는 거대한 휴지통과 같았다. 사람들의 목숨과 양심, 최소한의 사람다움이 마구잡이로 버려졌다. (중략,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사람들'이 유머가 있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유머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유머는 지우개처럼, 아프지 않을 만큼만 상처를 문질러서 조금씩 희미해지게 만들어주니까" (16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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