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월 7일 밤. 사흘 동안 늦은 가을비가 내린다. 이틀 째인데도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자급형 소농들은 농사짓기가 어렵다. 기계를 가질 수도 없고 일손을 살 돈도 없다. 몸으로 뗴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기계를 빌려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래도 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기계를 임대해 주고 도움을 주고 있으니 숨통이 트인다. 젊은 담당자들이 자기일처럼 도와주어 고마웠다.
파란만장했던 벼베기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10월 초부터 콤바인을 예약하려 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시기인 20일에서 27일 사이에는 임대가 불가능했다. 음성군 전체에 3대가 있었던 임대용 콤바인이 작년에 한 대가 화재로 소실되어 두 대만으로 운영되고 있고, 귀농자도 꾸준히 늘고 있어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양이다. 군에서는 비싼 콤바인이 가을철에 한 두달 정도만 운영되고 있어 효율이 낮을 뿐만아니라 기계를 빌려서 다른 사람 일까지 함께 하여 수익을 올리는 농민들도 있어서 더 이상 추가 투자를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군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자립형 소농들을 위한 제도이니만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대안으로 26일 월요일에 단장님과 품앗이 벼베기를 하기로 했다. 단장님의 시간을 뺏는 것도 미안하고, 사흘 동안의 품앗이가 부담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10월 중에 벼베기를 해야 한다. 11월로 넘어가게 되면 급격하게 해가 짧아지면서 추워지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비 맞은 벼를 닦아가며 마당에서 벼를 말려야 하는 불쌍한 노동에 열흘을 매달여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예상대로 10월 27일부터 징검다리 형태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다. 헛된 노동으로 고통받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다행이 29일에 콤바인을 예약할 수 있었다.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걱정들이 밀려온다. 기계는 어떻게 운반을 하고, 과연 올해는 제대로 작동을 시켜 벼베기를 마칠 수 있을까. 콤바인을 운반하려면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빌려서 같이 끌고 와야 한다. 돈도 9만원이 더 들고, 벼 베는 동안 트랙터와 트레일러는 놀고 있다. 콤바인의 운반을 위한 것이니 저렴한 비용으로 편의를 봐 주면 좋겠지만 세워놓고 놀리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치 임대료를 전부 청구한다. 기술고문 김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일이 끝나고 저녁에 가서 콤바인을 실어다 주겠다고 하신다. 가장 큰 문제는 해결했다.
27일에 제법 많은 비가 내려서 걱정을 했지만 논은 심하게 질지 않았다. 26일 오후와 28일 하루 내내 콤바인 작업이 편하도록 낫으로 논의 가장자리를 베어 두었다. 오랜 만에 하는 낫질이라 손가락이 아프다. 간간이 쇠를 치면서 휴식을 취했다. 쇠가락도 봄철 모내기 때보다 훨씬 듣기 좋아졌다. 논둑 여기저기에 잔뜩 벼를 베어두는 것은 그만큼 콤바인을 원활하게 작동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리 베어둔 벼포기들은 콤바인 작업이 끝난 후 다시 콤바인에 집어 넣어 탈곡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많이 베어두면 시간이 제법 걸리고 그만큼 힘이 들 것이다. 힘든 줄 알면서도 미리 해 둔 이 작업이 결국은 콤바인 작업을 한층 쉽게 해 주었다. 특히 찰벼논은 수확이 적을 것에 대비해 논둑에 붙여서 한 줄을 손으로 더 심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28일 저녁에 기술고문의 2.5톤 트럭에 콤바인을 실러갔다. 4조식에 불과한 콤바인인데도 2.5톤 트럭에 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덩치가 컸다.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급경사의 사다리를 올라 트럭에 무사히 올릴 수 있었다. 연약해 보이는 사다리를 오르는 콤바인이 금방이라도 엎어져 버릴 것같았다. 나에게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것인데, 담당자가 세심하게 살피며 실어 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시골길을 구비구비 돌아 무사히 논에 도착했다. 지면의 경사를 이용했더니 아까 보다는 사다리의 경사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저 거대한 기계를 운전해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그러난 이곳에서는 아무도 대신해 줄 사람이 없다. 숨을 깊이 쉬고 용기를 내어 콤바인에 앉았다. 천천히 후진했다. 기술고문이 천천히 내려오면 괜찮겠다고 신호를 보낸다. 가자. 천천히.
무사히 내려 놓았다. 마당에서 논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작업 위치에 놓기 위해 이리저리 운전을 하는데, 굉음이 울린다. 콤바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경고음이다. 어두운 밤에 하다 보니 전봇대를 보지 못했다. 콤바인에 가려 있던 전봇대에 후진하면서 부딪힌 모양이다. 워낙 속도가 느리게 운전을 하다 보니 충돌하는 소리가 나지 않아 몰랐다. 뒷부분의 철판이 휘어지기는 했지만 볏짚을 절단하는 칼날들은 이상 없이 작동이 되었다. 그래도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역시 콤바인은 만만한 기계가 아니다.
일찍 아침을 먹고 다시 한 번 콤바인의 상태를 살핀다. 역시 이상이 없어 보인다. 시동을 걸고 작동을 해 보니 이상이 없다. 그래 해 보자. 천천히 움직여 본다. 벼가 잘 잘린다. 그런데, 볏짚이 배출되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뒷부분에 걸려있는 볏짚들을 빼어내고 다시 작동해 보았다. 역시 벼는 잘 베어 지는데 볏짚은 조금 배출되다가 만다. 이상하다. 아직 이슬이 마르지 않아서 그런가. 벼들을 만져 보았지만 심하게 젖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속도가 너무 늦어서 그러는 것일까. rpm을 최대로 올리고 약간 빠르게 작업을 해 보았다.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번에는 톱니 바퀴에 벼들이 잔뜩 끼어 있어서 제대로 빼 내지를 못해 더 이상의 작업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작업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었는데, 한 바퀴도 돌지 못하고 기계는 서 버렸다.
아무리 보아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기술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담당 직원들이 나와서 상태를 보았다. 원인은 간단했다. 4조식 콤바인이라서 4포기의 벼들을 작업해야 하는데, 너무 정확하게 조정을 하다 보니 5포기의 벼들이 한꺼번에 작업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작업에 과부하가 걸려서 볏짚이 낀다는 것이다. 한 시간 여를 기계에 낀 벼를 빼내고 다시 작업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4포기만 작업할 수 있도록 조정을 했다. 10여 분 만에 반 바퀴를 돌았다. 기계가 힘이 없는 것이었지 이상은 아니었었다. 두 바퀴를 더 돌았더니 벼 수확통이 꽉 찼다는 신호가 들어왔다. 트럭으로 옮겨 실어서 마당으로 옮기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송장치가 작동이 되지 않는다.
기술센터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농기계 회사의 수리 담당자를 보내겠다고 한다. 그들을 기다리면서 차디 차게 식은 콩나물 비빔밥을 논둑에 서서 씹어 삼켰다.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메벼논 작업은 벌써 끝나고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텐데. 수리 담당자들이 와서 보더니 배선 불량이란다. 누군가가 배선 커버를 벗겨 두었고, 쥐들이 배선 주위에 떨어진 벼들을 먹으며 전선을 건드려서 접촉 불량이 생겼다는 것이다. 잠깐 손을 보자 잘 작동이 된다. 임시로 손을 본 것이니 혹시 이상이 있으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한다. 흠.
결국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아무 이상없이 작동되는 콤바인을 만날 수 있었다. 조정하는 방법도 익숙해져서 쥐 뜯어 먹듯 벼를 잘랐던 작년과는 달리 일정하게 낮은 높이로 벼들을 베어냈다. 가끔 가다가 볏짚이 걸리는 것들은 쉽게 제거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절대 시간이 부족했다. 5시가 되어서야 메벼 논이 끝나고 찰벼 논으로 이동했다. 기술센터에 전화를 해서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작업을 끝낼 수 없다고 했더니 내일 오전 중으로 반납해 달라고 한다. 흠, 좋다.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다.
몸이 몹시 피곤해졌다. 그렇지만 찰벼논은 바싹 말라 있어서 콤바인의 운행이 원활하고 벼베는 속도도 제법 빨랐다. 네모 반듯한 논이 아니라 이리저리 돌아가며 작업하느라 깔끔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앞 뒤 라이트를 켜고 야간 작업을 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작업을 내일로 미룰 수도 없었다. 천천히 침착하게를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외치며 작업을 해 나갔다. 8시가 넘어서야 찰벼논이 끝나고 마지막 흑미논이 남았다.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기 시작한다.
흑미논은 100여 평 남짓 작지만 네 귀퉁이가 모두 있는 논이라 작업이 쉽지 않았다. 결국 9시 반이 다 되어서야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야간 작업을 했는데도 기계는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논둑에 가득 베어 둔 벼들까지 모두 탈곡을 끝냈더니 비가 쏟아진다. 흑미는 탈곡통에 그대로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가 인삼주를 한 잔 하며 축하했다. 작년보다 훨씬 잘 했다. 내년에는 더욱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업하는 사진도 한 장을 찍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할 정도로 시간이 없었다. 내년부터는 사진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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