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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두바퀴 이야기

쉽게 오르려다 부상을 입고_아들과의 동해안 자전거길 여행_150715, 수

알람 소리가 울린다. 덜 피곤해서 늦게까지 TV를 보다 잠을 설쳤더니 눈이 깔깔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짐을 싸고 샤워를 하고 출발. 모텔 사장님께 아들과의 출발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자전거 도로는 정말 잘 만들어져 있다. 언덕 하나를 가볍게 넘고 내리막을 달리니 기분이 상쾌하다. 바닷가로만 달리면 질릴 것을 염려했는지 기사문항을 우회해서 산골의 작은 마을로 유도되어 있었다. 일부러 만든 비포장도로이지만 넓어서 좋았다. 저 멀리 언덕이 보이기에 헤르메스를 이용한 언덕 오르기를 연습했다. 오른손으로는 엘파마의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는 헤르메스 위에 앉은 천재의 배낭끈을 잡고 타게 되면 언덕길을 좀 편하게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생각한 방법이다.

 

 

 

 

 

 

 

출발하자마자 앞바퀴에 헤르메스 옆에 걸어둔 페니어가 걸려서 가볍게 넘어졌다. 다친 곳이 없어서 두려움 없이 다시 시도. 쉽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언덕길을 편안하게 잘 오르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피하려다 그만 넘어져 버렸다. 다행이 천재는 다치지 않았고, 무릎과 팔꿈치에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 물로 대충 소독을 했다. 통증이 약간 있었다. 소화제만 챙겨오고 다른 구급약은 챙겨오지를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다치고 낫더니 상쾌한 아침 공기가 갑자기 가라앉는다. 다시 길은 바닷가로 이어져 작은 항구로 들어갔더니 해양 경찰서가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약국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스런 일이었다. 구급약을 요청해서 치료를 했더니 통증도 사라지고 상태도 괜찮았다.

 

하조대와 양양공항을 지나고 30km 정도 탔더니 어느덧 9시. 파리 바켓트에서 커피와 고로께, 초코 머핀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푸욱 쉬다가 점심시간까지 달리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며 부탁해서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고 9시 20분 출발. 제과점 사장님이 잘 생긴 아들과 여행을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며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빈다고 덕담을 해 주신다. 거의 한 시간가량을 아침 식사를 겸해서 휴식을 취한다. 제과점을 지나자 바닷가가 다시 나오고 멋진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원래 계획이 저런 카페에서 브런치 메뉴를 먹으려고 했던 것인데.

 

 

 

 

우리나라 동해안은 참 아름답다. 바다가 깊어서 수영이 자유롭지 않아서 그렇지 잘 발달된 모래와 해안, 시원한 수평선, 방풍림으로 심어진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의 웅장한 모습까지 제대로 갖춰진 바닷가다. 게다가 해변에 마련된 휴게시설들을 보고 있노라면 맑은 바닷물과 함께 최고의 휴양지를 찾은 느낌이다. 지난 겨울에 들렀던 청간정에 다시 올랐다.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까지는 아니었지만 시원하게 뚫린 바다의 모습이 멋스런 정자와 잘 어울려 좋았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전혀 찾지 않았던 외옹치항 해변의 모습도 정말 아름다웠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바다 경치를 구경하느라 제대로 달리지를 못하고 있다. 해가 잠깐 나는 듯 하더니 먼 산 위로 먹구름이 가볍게 끼어 있고 바람이 강하게 분다. 파도가 치는 동해바다는 평화로울 때하고는 달리 매우 무섭다.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데도 물보라가 일면 사람을 빨아들일 것처럼 보이다.

 

 

 

 

 

 

 

 

 

 

중간에 좀 무섭기는 했지만 넓은 오르막길에서 헤르메스 붙잡고 오르기를 다시 연습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안전한 길이라며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무릎 깨지며 배운 기술이니 반드시 써 먹어야 할 것이다. 천재도 헤르메스로 언덕길을 오르는 즐거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 즐거움에 더해 헤르메스에 매달려 엘파마를 타는 즐거움도 크다.

 

 

 

 

 

 

 

 

 

 

 

 

화진포 항을 눈앞에 두고 반암 해변의 횟집에서 물회와 회덮밥으로 늦은 점심 해결. 거진항에 도착했던 한 시경에 밥을 먹었어야 했는데, 좀 더 좀 더 하다가 늦어져 버렸다. 논밭길을 달리는 한 시간 동안 천재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 좌절했다고 한다. 맥도 빠지고 허벅지 근육도 뻐근하고. 헤르메스가 되었든 엘파마가 되었든 자전거의 성질을 잘 알면 한결 달리기가 쉬운데, 젊은 체력으로 버티며 달리니 70km 정도 달렸는데 벌써 체력이 방전된 모양이다. 먹자마자 드러누워 잠이 들어 버린다. 그리미는 아들이 아플까봐 노심초사다. 이제 그만 타고 집으로 왔으면 좋겠는지 전화기의 목소리가 아들 걱정에 살짝 떨린다.

 

피곤한 천재가 3시 20분에 눈을 떴다. 배터리는 절반 정도 충전되었다. 앞으로 24km 정도만 달리면 되니 큰 문제는 없으리라. 거진항에서 화진포로 넘어가는 고개가 제법 길었다. 천재는 터질 것 같은 허벅지로 열심히 고개를 넘는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수온이 차서 그런지 바다색이 시퍼렇고 위협적이다. 파도가 치면 옥색의 물보라가 일어서 멋지면서도 빨려들 듯한 두려움이 생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나 걷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아서 심심치 않게 인사를 나눈다. 친구를 의지해서 외롭고 험한 길을 걷는 젊은이들은 보기에 좋았다. 내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도시의 높은 빌딩에서 시원하게 앉아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20여 년 전에 왔었던 금강산 콘도를 지나자 바로 안보교육장이다. 여기서부터 약 800미터의 오르막이다. 잘 올라가던 500미터 지점에서 천재가 다리가 아프다고 걷는다. 힘든데도 굳이 헤르메스를 애비에게 주고 헉헉대며 오른다. 과연 전망대까지 왕복 10km를 무사히 탈 수 있을지 걱정인 모양이다. 배터리가 나가려고 해서 시속 8키로로 천천히 조심조심 오른다. 정상에서부터 민통선 통제선까지는 약 2km. 통일전망대는 허가증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한다. 아, 다행이다. 더 간다면 가겠지만 너무 힘들다. 오늘 목표했던 지점까지는 다 왔다. 천재와 뜨거운 포옹을 하고 음료수를 나눠 마신 뒤 되돌아 왔다.

 

그렇지만 끝이 아니다. 그대로 돌아오는 언덕 800미터는 생각보다 힘겹지 않았다. 정상을 50미터 남겨두고 천재가 걷는다. 아무런 연습 없이 오늘 하루 100키로를 넘게 탔으니 힘들만도 하다. 무사히 목표를 달성한 것이 기뻐서 고개마루에서 그리미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안보교육장을 지나 금강산콘도 옆 마차진지 정류장에서는 시내버스밖에 없어서 자전거를 실을 수가 없다. 당황스럽다. 2키로 정도 떨어진 대진버스정류장으로 갔지만 역시 차가 없다. 다시 거진항으로 더 가기로 했다. 김일성 별장 앞에서 잠깐 길을 헤매다가 거진항으로 가는 고개를 넘는다. 정상에서 거진 터미널에 전화를 했더니 6시 50분 강릉행 버스가 있다고 한다. 15분이고 4키로가 남았으니 버스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신나게 달려서 도착했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서 정성들여 가꾼 정원을 보았다. 전문가의 솜씨가 아니라 정원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이 잘 표현된 아기자기한 정원이다. 무일농원의 정원을 생각하며 반성을 한다.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정원은 그대로 풀속에 묻혀있다. 꽃을 심고 가꿔서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를 바랐었는데 마음과는 달리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세세한 것은 가꾸지 못하더라도 자라는데 시간이 걸리는 꽃나무들은 미리 심어 놓아야 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인생은 길게 남아 있으니 서두를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열심히 공을 들인 모습을 보면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된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꿔주신 분께 고맙다. 힘든 자전거 길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만나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물회집 주인 아주머니는 내 상처를 보시더니 종이 테이프를 가져 오신다. 당신께서 다치실 때마다 약을 바르고 나서 부쳐 놓으면 상처가 잘 나으니 한 번 사용해 보라고 하신다.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어서 무시하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을 바르고 부쳐 보았다. 다리를 움직이는데 훨씬 좋았다. 게다가 바지를 걷지 않고 움직일 수 있어서 보기 싫은 상처도 가릴 수 있었다. 화상을 입으면 치약을 바르시고, 칼에 베이면 연고를 바르고 종이 테이프로 감싸 치료하시며 사신다. 이틀 동안 상처를 바라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생각보다 작은 버스의 짐칸에 자전거를 싣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엘파마의 앞바퀴를 분해하고 헤르메스의 배터리와 안장을 분리해서 어렵게 실었다. 강릉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편안한 좌석의 버스라 그런지 가격도 비싸다. 10,400원. 버스에 타서 그리미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일 동해안 지역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바람도 심하게 불 예정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나저나 오늘 저녁도 또 늦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가 쉽지 않구나.

 

정말로 멀리 오기는 했구나. 두 시간이 넘도록 달려서 9시가 되어서야 강릉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내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모텔은 많은데 먹을 것은 닭갈비가 전부다. 1박에 4만원 하는 모텔에 짐을 풀고 바로 내려와서 소주 한 잔을 하며 '잔혹동시'를 쓴 아이에 대한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학원가기 싫은 날’이라는 시의 끔찍한 시구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예술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실었다고 한다. 이해는 가지 않지만 받아 들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시에 맞는 그림을 그린 화가도 그림을 수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역시 예술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도 온 가족이 아이들의 행복과 가능성을 위해 즐겁게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아름답게 보인다. 아름답고 독창성 있는 시를 많이 쓰게 되기를 바란다.

 

배가 고프니 음식이 꿀맛이다. 소주 한 병을 순식간에 후루룩 마셔 버리고 한 공기 볶은 밥도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어서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며 이류 음식점을 특급호텔 레스토랑처럼 즐겼다. 천재의 허벅지는 거의 터져 버릴 것 같은 상황인 모양이다. 오후에 약국에 들러서 멘소레담을 산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내일이 걱정된다. 시원하게 씻고 나서 TV를 켰더니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라디오 스타가 방영된다. 조금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천재는 늦게까지 웃으며 본데다가 잠자리가 까다로운 아이라 깊이 잠들지도 못했다고 한다. 뭐든지 대가는 치러야 한다.

 

[ 오늘 116 / 누적 138 / 헤르메스 누적 2,070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