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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두바퀴 이야기

아름다운 송림의 위로를 받다_아들과의 동해안 자전거길 여행_150716, 목

어제에 이어 오늘도 6시 반 알람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유가 있다. 씻고 짐을 차분하게 쌌다. 배터리는 충분하게 충전되어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천재를 다독여 정동진을 향해 출발. 일반 도로가 제법 길다. 자동차들도 자전거에 대한 배려는 별로 없어 보인다. 어쨌든 열심히 달린다. 경포호를 향해 일단 달리고 보는데 왜 이렇게 먼지. 어서 자동차들의 행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동해안 자전거 도로를 만났는데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뭔가 이상하다. 어정사거리에서 마을 안쪽 메이플 비치 GC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구글 지도의 도움으로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거꾸로 달리는 길로 접어들었다. 바다 방향이니 당연히 맞는 길이라 생각했다. 강릉 비행장을 돌아 바다가 슬쩍 보일 듯한 산골 마을로 접어들자 멋진 송림숲이 2km 정도 이어진다. 곧 해안도로와 만날 것이라 생각하는 지점에서 천재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멋진 경치가 아니었다면 돌아갈 힘이 없을 뻔 했다.

 

 

 

 

 

 

돌아가자. 아침도 먹지 않은 채 35km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비상식량으로 준비한 양갱과 과자와 게토레이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열심히 달린다. 넓은 논이 좌우로 펼쳐져 있는 사이로 시원하게 자전거도로를 설치해 놓았다. 비록 한쪽에서 농약을 뿌려대고 있기는 하지만. 메이플 비치 호텔의 앞길은 시원하게 바다와 맞닿아 있고 깨끗하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연결되는 수산생물연구소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지저분하게 녹슬어 있다. 천재가 힘들다고 쉴 것을 제안한다. 다시 과자를 나눠 먹으며 피곤한 몸을 쉰다.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몸 상태는 말이 아닐 것이다. 내 어깨도 제법 묵직하다. 고개를 넘고 넘어서 안보전시관을 지나 시원한 휴게소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정말 아름답게 잘  가꿔놓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경치를 즐겼으면 좋겠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다는 거칠다. 저 멀리 수평선까지 선명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성난 파도도 옥빛으로 부셔지며 아름답다. 시 한 수 읊어야 하는데 뱃속에서 우러나오지 않는다.

 

 

 

 

 

 

 

 

정동진역 앞에는 많은 가게들이 있는데, 교동짬뽕으로 들어가서 짬뽕밥을 시켜 먹는다. 화끈하게 맵다. 어제 점심에 먹다 남긴 소주를 반주 삼아 천천히 점심을 즐긴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사이에 역에 가서 삼척까지 자전거를 싣고 갈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안된다고 한다. 접이식 자전거 한 대 정도는 가능하다고 한다. 흠. 추암까지는 35km, 임원까지는 75km. 음, 일단 추암역까지 가서 숙소를 잡아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임원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해야겠다. 천재가 체력이 된다고 하면 그대로 임원까지 달린 다음에 버스를 타고 올라오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보면 보이지 않는 자외선에 많이 손상이 된 모양이다.

카페에 앉아 지금까지의 경로를 정리하고 두 시까지 더 휴식을 취하면서 배터리를 충전해서 이동하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은 계속해서 이동을 하려니 특별한 에피소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괜히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면 피곤하다. 에피소드가 없는 것이 좋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편안하게 쉰다. 천재는 열심히 무언가를 들여다 보더니 엎드려서 잠깐 눈을 부친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처음 시작해서 상황이 좋아질 듯하니 긴장이 풀리고 흥분이 되어서 실수가 벌어졌다. 남은 일정은 별로 없지만 평상심을 유지하며 뜨뜻미지근하게 여행을 즐겨야겠다. 무일의 스타일은 아니지만 입대해야 하는 아들을 안전하게 여행하게 하는 것도 내 책임이다. 천천히 가라앉은 상태에서.

 

정동진 앞 크루즈 리조트의 언덕은 차로 오르고 내릴 때도 겁나는 곳이다. 엘파마를 이용해서 슬슬 올라본다. 4단 - 2단 - 1단 드디어 오르는데 성공이다. 잘하면 북악스카이웨이도 오를 수 있겠다. 다행인 것은 천재의 몸상태가 많이 회복된 것이다. 역시 잠이 부족했었나 보다. 카페에서 한 시간 가량 졸고 일어나더니 금방 회복한다. 내리막길의 경사는 미시령을 내려가는 기분이다.

 

 

 

옥계로 내려갔더니 비가 제법 내린다. 망상 해수욕장까지 계속해서 내린다. 중간에 버스정류장에서 비를 잠시 피하면서 의논을 했다. 촛대바위까지 35km가 남았는데, 4시까지 도착하면 한 시간 정도 휴식하면서 더 내려갈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시멘트 공장들이 많아서 풍경도 길 상태도 공기도 좋지 않은데다가 비까지 내리니 어떻게 할까 계속 망설여진다. 일단 10키로만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다행이 도착하기 전에 비가 그친다. 계속 가자.

 

헌화로는 두 번째인데 여전히 아름답다. 옥계까지 이어지는 길이 짧지만 굽이치는 흐름과 깎아지른 절벽이 빚어내는 자연의 아름다움, 거센 파도에 부셔지는 해안가의 모습 등 모든 것이 인상깊다.

 

묵호항 주변은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엄청난 숫자의 횟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회를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안타깝다. 길이 평탄해서 좋기는 하다. 먼 바다는 잔잔해 보이는데 방파제 주변은 커다란 파도들이 계속해서 들이치고 있다. 기온이 22도 정도여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긴팔을 입어야 할 정도다. 바람도 제법 불고. 비가 제법 내릴 때는 차갑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루즈 언덕을 넘어서인지 몇 차례의 고개가 나왔는데도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넘을 수 있었다. 본격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여행자도 적당하다. 심심할 만하면 한 두 사람씩 지나다니니 인사를 나누기도 좋다.

 

 

 

 

 

 

 

 

 

 

 

 

 

천재를 앞세우고 자전거를 탔더니 외롭지 않아서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면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말을 시키면 금방 대답을 하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몸짓이 내 에너지를 채워주는 느낌이다. 길 찾는 부담이 있어서 다시 앞장을 서게 되면 왠지 모르게 외롭다. 바로 뒤에서 또는 조금 떨어져서라도 나를 주시하며 따라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바로 외로워진다. 고개를 돌려 천재가 다가오는 것을 슬쩍 바라본다. 위로가 된다. 누군가를 앞장서게 하고 뒤에서 느긋하게 경치도 즐기고 길도 찾으며 달리는 자전거가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다. 앞으로도 자주 뒤에서 타야 할 모양이다. 세월 탓일까.

 

동해시의 벽화마을과 함께 70년대의 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 가운데를 지나며 아련한 어린시절의 골목길을 떠올린다. 축구, 야구, 딱지치기, 말타기, 망까기, 공기, 술레잡기 등등 모든 놀이가 행해지던 곳이다. 언제까지 이런 골목들이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계속되는 공단길이 피곤하다. 길은 편안한데 주변의 삭막한 경치가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다. 중간에서 양갱과 과자로 잠깐 휴식을 하고 내쳐 달렸다. 추암해변까지 5km 정도 남았다고 한다. 강변길을 타면서 길이 이상한 듯해서 아주머니들에게 길을 물었더니 공단 쪽이 길이 좋지 않으니 시내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럴까 하다가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아 강변길로 해서 가기로 했다. 강변이 끝나자 산을 올라야 한다. 제법 높은 고개다. 헤르메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올랐다.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났더니 공단이 나오는데 매우 삭막하다. 삭막함 뒤에 추암해변이다. 오늘의 목표는 일단 끝냈다. 반갑게 포옹하고 전복죽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까지 대략 80km를 탔으니까 앞으로 20km 정도는 더 탈 수 있는데, 최종 목적지인 임원까지는 약 40km가 남아있다. 게다가 마지막 10km는 매우 험한 코스라고 한다. 적당히 타다가 민박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6시까지는 쉬자.

 

5시 50분이 되어서 출발했다. 계속되는 시멘트 공장들은 삼척 시내를 지나야 끝났다. 시내 끝부분에서 시작하는 한재라는 1km가 넘는 고개에 오르자 저 멀리 맹방 해수욕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삼척에서부터 함께 온 분이 임원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계속 도전해 보라며 격려한다. 그러나 길은 쉽지 않다고 한다. 벌써 6시 25분이다.

 

 

 

 

 

 

 

 

 

맹방에서 시작된 5개의 고개는 한재 못지않다. 첫 번째 고개는 천재가 넘었다. 삼척에서 출발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황영조 기념공원까지 오른다. 당신도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늘 아쉬웠고,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 참 부럽다고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고개는 내가 넘고 네 번째는 천재가 넘었다. 모든 고개의 길이가 1km는 넘었고, 마지막 고개는 2km 가까운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느 덧 해가 진다. 마지막 내리막길이 위험해 보였지만 무사히 내려왔고, 작은 마을 임원에 도착한다.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천재의 생각대로 삼겹살과 소주로 무사히 완주한 기쁨을 나누었다. 천재가 말한다. 호주 뉴질랜드 이후로 다시 한 번 추억할만한 여행을 했다고. 다시 또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리자고 하면 안할 것이라고 웃으며.

[ 오늘 123 / 누적 261 / 헤르메스 누적 2,193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