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다쳤다는 아내의 긴급구호 요청에도 달려가지 못한 이유는 3년 만에 하는 논둑 보수작업 때문이다. 마당에 산수유가 활짝 폈다. 첫 꽃소식이다.
어제는 에나멜 페인트와 광명단, 그라인더용 사포(60번, 40번)를 사다 넝마가 되어가는 마음이의 외장을 단장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내내 찬바람 맞으며 그라인더로 녹이 슨 철판을 갈아냈더니 팔이 아프다. 몇 년이라도 더 마음이를 이용하려면 이렇게 외장을 정비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1년 동안 1,000km도 타지 않는 마음이에게 보험료를 포함해서 백만원은 들여야 유지가 된다. 전기자전거와 결합해서 출퇴근용으로까지 확장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비용 대비 효용이 너무 없다. 꼼꼼하게 한다고 열심히 갈아냈더니 녹방지용 광명단을 칠하지도 못하고 해가 저물었다.
7시부터 움직이려 했으나 밖의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아침 느긋하게 챙겨먹고 8시가 넘어서 논으로 나간다. 천봉사는 망해서 떠나고 집을 짓는 회사가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집짓는 학교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수강생들이 대부분이다. 사장님을 만나서 입구에 있는 관정과 전기에 대해 협조를 부탁했더니 흔쾌하게 동의해 준다.
기술고문 미스터 김이 4톤짜리 굴삭기를 가지고 오셨다. 찰벼논의 논둑 누르기 작업부터 시작한다. 한 시간 쯤 하시다가 해 보겠느냐고 하셔서 아버님이 나오시기 전까지 일이 진척이 되어 있어야 하니 아버님 다녀 가시고 실습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중년의 목수가 옆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아버님 생각을 하시니 효자십니다."
아버님 오시면 일이 늦다고 걱정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위험하다고 잔소리 하실까봐 그런 것인데 엉뚱하게 효자가 되어버렸다.
굴삭기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어렵다. 단 두 개의 회전봉을 조종해서 사람이 손으로 일하는 것처럼 세밀한 작업까지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스터김의 교육에 따라 이리 저리 굴삭기를 조종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차근차근 한다면 못할 것도 없는데, 일의 양이 많으니 마음이 급해서다. 작년에 농기계 교육을 받으면서 한 시간 정도, 0.5톤 굴삭기를 빌려서 8시간 등 제법 오랜 시간을 조정해 보았는데도 몸에 익지를 않는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동작 한 동작 끊어서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 더뎠지만 완벽하게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기술고문의 말로는 적어도 3년 정도는 작업을 해야 돈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갖게 된다고 한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실습을 한 덕분에 자신감은 생겼는데, 일이 늦어져서 서둘러서 끝마무리를 했다. 하루 일당은 45만원이다.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으니 다음부터는 직접 굴삭기를 빌려서 천천히 작업을 하면 품질은 떨어지더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장난감이다.
굴삭기가 일하는 동안 무료하기도 해서 삽질을 서너 시간 하고 났더니 온몸이 아프다. 어제 세시간의 그라인더 작업에 이어 삽질까지 했으니 몸살이 안나면 다행이다. 햇살은 좋았지만 바람은 여전히 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 종일 논바닥을 밟고 다녔더니 해가 지면서 몸이 선득하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사계지에 비친 지는 햇살이 아름다웠다. 가방 안에 카메라가 있었지만 꺼내 들 힘도 없어서 그저 바라보다 돌아왔다.
저녁을 잘 먹고 예방 차원에서 몸살약을 먹고 잤다. 큰 일 하나 해냈다고 두 분 모두 좋아하신다.
'사는이야기 > 농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신경쓰지 않는다_150407, 화 (0) | 2015.04.07 |
---|---|
모종들이 위기를 맞이하다_150329, 일 (0) | 2015.03.31 |
아름다운 초원을 포기하다_150317, 화 (0) | 2015.03.18 |
아파트는 농부에게 내려진 축복이다_140313, 금 (0) | 2015.03.14 |
좋은 농부 한 사람을 잃을 것이다_141127, 목 (0) | 201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