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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걷기가 힘들다_140902, 화

주말에 고향 진도로 성묘를 다녀왔다. 부모님과 우리 네 식구, 사촌형까지 해서 일곱 명이 용산에서 출발했고, 광주에서 두 분, 목포에서 두 분, 진도에서 두 분. 총 열 한명이 참여했다. 성묘에 참여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걱정이고, 우리 아들 세대들이 참여하지 않는 것과 딸들이나 며느리들이 참여하기 싫어하는 것도 또한 문제다. 오직 우리만이 온가족이 성묘를 다녀왔다. 재미있는 성묘가 된다면 너도나도 참여하겠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깨끗한 호텔에서 재우고 맛있는 것 사먹이면서 비행기 태워 다니면 다들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성묘를 마치고 하루 푹 쉬었다. 그런데도 저녁에 향악당에 가서 설성문화제 길놀이 행사 준비로 북을 메고 진짜기 연습을 90분 가량 하고 났더니 오늘 아침 온 몸이 뻐근하다. 좌우치기 연습을 하다가 왼쪽 발목도 살짝 삐끗한 모양이다. 환갑을 전후한 나이에 장구 메고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면 오랜 연습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부터 논에 가서 피살이를 했다. 800평 가량의 메벼 논은 금영벼라는 조생종을 처음으로 심어 보았다. 벌써 누렇게 익어가는데, 우렁이들이 살뜰하게 제초를 해 준 덕분에 그리 많지는 않지만 피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정농께서 한 차례 피사리를 하셨으니 이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우렁이들에게 고맙다. 벼들이 고개 숙인 논에서의 피사리는 수행이다.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띄엄띄엄 나 있는 피들을 제거하려면 벼 이삭들을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앞으로 나가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데,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벼 포기 하나라도 살짝 밟게 되면 지난 5개월 동안 우박까지 맞으며 견뎌낸 세월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작년에 비해 벼포기들이 눈에 띄게 작은 데도 온 몸이 걸리적거린다. 걸리적거린다고 성내지 마라,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천천히 나아가라.

 

낫질도 조심해야 한다. 벼포기와 피포기가 서로 엉켜 있으니 잘 풀어내고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댕겅' 벼 이삭도 함께 잘려 나간다. 작업하는 세 시간은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수양의 시간이었다. 온갓 것들의 간섭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꽉 부여잡고, 혹시 실수로 벼 모가지를 날렸어도 후욱 올라오는 짜증을 가라 앉히며 논을 정리한다. 고작 800평에서도 이러고 있으니, 100마지기 이만 평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어찌할까. 휘익,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삭이 이만큼 커 버리고 나서는 피사리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모를 심고 5일 만에 우렁이를 넣고, 다시 열흘을 보내고 나서부터 제초작업을 시작해서 사흘 정도 논을 정리하면 벼가 자라기에 충분한 환경이 된다. 그 후로는 벼 꽃이 피기 전까지 가끔 들러 풀을 뽑아주고 논둑에 풀이나 베고 콩이나 키우면서 우렁이에게 온전히 논을 맡기는 것이다. 그래도 논농사는 충분할 것이다.

 

오후에는 하우스에 널어놓은 참깨도 두드리고, 앞마당에 풀도 메고, 옥수수밭 정리도 했다. 봄에 옥수수를 심고 그 옆에 돈부를 심어 함께 자라라고 했는데, 매번 보면 수북하게 자라는 풀 때문에 돈부는 옥수수가 아닌 잡풀과 뒤엉켜 자란다. 그러다보니 관리하기도 힘들고 풀메기도 힘들다. 봄에 옥수수와 돈부를 심으면서 주변을 비료포대로 둘러놓으면 잡풀의 번식을 막고 풀메기도 좋으며, 돈부가 줄기를 뻗기에도 좋아서 훨씬 관리가 쉬울 것 같다. 꼭 그리 해 보자.

 

마당에 채송화가 그득하게 자라면 풀메느라 이렇게 힘들지 않을텐데, 풀의 힘이 워낙 강하다 보니 채송화가 번식하지를 못한다. 채송화도 심고 포대로 덮어두어야겠다. 올 봄에 싹을 틔웠던 많은 꽃씨들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앵두나무도 올해 마지막 앵두를 맛 보이고 봄 가뭄에 말라 죽은 모양이다. 내년 봄에 다시 보아야겠다.

 

비가 내려 샤워를 하고 쉬고 있는데, 미생물 용액을 뿌리자 하신다. 한 시간 여 추가 노동을 하고, 저녁에 향악당에 가서 쇠를 치는데, 혼란스럽다. 들리는 소리가 모두 엉터리처럼 들리고 내 소리도 만들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