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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난황유를 뿌리다_140911, 목

연휴가 길어도 리듬이 깨진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추석 명절은 어제 저녁의 돔회 회식으로 끝났다. 술을 조금만 먹으려 했는데, 명절 음식이 온통 술 안주이기에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몸이 힘들었다. 특히, 지난 금요일 저녁은 네 명의 선후배와 어울려 새벽 두 시까지 달렸더니 집에 돌아와서 온갖 주태를 부렸다. 아들들이 한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아서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흠, 역시 술이 웬수고, 술을 이기지 못하는 몸이 웬수고,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거절 못하는 내 정신이 또한 웬수다. 거의 삼십년 만에 만난 선후배지간이니 술로 몸은 상했을지언정 기분은 좋았고, 다들 무사히 술 뒤끝을 해결했다고 하니 다행이다.


김장용 배추와 무가 제법 잘 자랐다. 벌써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것을 보면 나비와 나방은 물론 온갖 벌레들이 배추밭을 점령해 가고 있는 모양이다. 배추밭을 만들 때 가루 형태의 토양살충제를 섞었는데도 그 효과가 2주를 넘지 못한다. 언젠가는 모기장을 씌워서 김장용 채소밭을 만들 생각이다. 어설프게 농약을 쓰는 것 보다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말라리아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기약을 뿌리거나 기피제를 바르는 것이아니라 모기장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집에서도 살충제 냄새가 실어서 항상 모기장을 치고 생활한다. 김장 채소는 나비와 나방이 알을 낳지 못하도록 나비나방장을 씌우면 농약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


정농께서도 농약 쓰시기를 꺼려하셔서 친환경 병해충 방지제라고 하는 난황유를 만들어 뿌리기로 했다. 난황유가 만일 제대로 작동한다면 나비나방장을 치는 것 보다는 훨씬 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마침 천재가 선물로 받아온 카놀라유가 있어서 좋았다. 카놀라유는 GMO 농산물로 만든 대표 기름이다. 정농께서는 그동안 모르고 계셨는데, 이제 아시게 되어서 앞으로 집안에서 카놀라유 먹기 힘들게 생겼다. 먹기는 찝찝하고 버릴 수는 없으니 난황유를 만드는데 쓰면 제일 좋을 것이다. 계란과 식용유와 물을 섞어서 만드는 난황유는 비교적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물 뿌리개나 살포기로 손쉽게 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어깨에 한 말의 난황유를 지고 배추밭을 왔다갔다 했더니 어깨가 아팠다. 작년에 탄저병을 잡겠다고 고추밭에 식초액을 뿌리던 기억이 나면서 씁쓸했다. 사서 고생을 할 것이 아니라 반 말씩만 지고 다니면서 뿌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어깨가 훨씬 수월해지면서 일 하는 여유가 생겼다.


처음에는 살포기를 가장 강하게 하고 뿌렸더니 금방 난황유가 떨어져 버리고 만다. 예상은 3말이면 모두 뿌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많이 살포가 되는 바람에 부족해져서 다시 두 말을 더 만들었다. 살포기는 중간 속도로 중간 양으로 뿌리는 것이 적당하고, 네 말 정도면 채소밭을 전부 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다섯 말을 만들었더니 두 시간에 걸쳐서 다 뿌리고도 남아서 다시 물 뿌리개에 담아 배추밭을 달려 다니며 한 번씩 더 뿌려 주었다. 너무 많이 뿌리면 작물도 숨이 막혀서 잘 자라지 않는다고 정농께서 걱정을 하신다. 잎의 뒷면에는 기공이 있어서 식물도 호흡을 하는데, 난황유가 기름인지라 그 숨구멍을 막게 되면 광합성에 필요한 산소를 얻지 못하여 생육에 지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3일 후에 상태를 보아서 5일에서 7일 간격으로 더 뿌려야 한다. 난황유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수천의 강력한 요구로 다시 농약을 뿌려야 할 지도 모른다. 제발 우렁이처럼 난황유가 효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고추밭은 식초액 두 어 번 뿌린 것으로 아직 농약을 쓰지 않고 있다. 우박으로 늦게 열린 고추들이 탄저병을 피해 가고 있는 것이라면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고추들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탄저병만 없다면 약을 치지 않고도 평년 수준의 수확은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