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향악당에서 북을 걸쳐메고 90분을 뛰고 났더니 온 몸에 기운이 빠져 잠에 떨어졌다. 8시가 넘어서 간신히 눈을 떴는데, 정농께서 벌써 풀베러 나가셨다. 어제까지 콩이 심어져 있는 논둑을 낫질을 했으니 나머지 논둑의 풀을 예초기로 베어야 하는 것이다. 해가 났는데도 구름이 많아서 그렇게 뜨거운 줄 모르고 두 시간을 일했다. 거의 키높이까지 자란 풀은 길고도 억세서 예초기에 휙휘 감긴다. 예초기 날을 아끼느라 새 날을 끼우지 않았더니 더더욱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기름을 조금만 채웠다. 삼십 분을 베고 예초기 날에 감긴 풀을 벗겨 내고, 삼십 분을 베고 기름을 채우고, 삼십 분 일하고고 풀 벗기고, 삼십 분을 더 일했더니 어깨도 아프고 기름도 떨어졌다. 정농께서 먼저 들어가시면서 기름통을 들고 가버리셨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어차피 일이 남았으니 걸어 가서 물도 한 잔 마시고 오기로 했다.
여름의 아름다움은 잘 발달한 구름이다. 웅장하기도 하고 새털 같기도 하고, 시커멓기도 하고 하얀 솜털 같기도 해서 그 변화하는 모습이 다양하다. 계속되는 장마로 변화무쌍한 아름다운 구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물을 마시러 거실로 들어가려는데, 복잡하게 매여있는 물장화를 벗기가 싫다. 수도물을 그냥 마시기로 했다. 이곳에 살면서도 한 번도 수도물을 마셔보지 않았다. 마을 공동으로 지하수를 파서 군보건소에서 수질 관리를 해 주는 물이다. 어쩔 수 없이 입안에 몇 번을 머금다다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에 두 어 모금을 마셨는데, 물 맛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논두렁으로 돌아와 다시 두 시간을 더 풀을 베는데, 갑자기 등짝이 뜨거워지고 얼굴이 따가워진다. 풀 베기 작업을 하려면 보안경을 반드시 써야 하는데, 버프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게 되면 안경에 서리가 껴서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버프를 내리고 보안경을 끼고 작업을 하는데, 구름이 걷히면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그러니 얼굴은 햇살에 익어서 뜨겁고 무거운 예초기를 맨 등짝은 불붙은 난로를 맨 듯 뜨거웠다. 일단 그늘로 대피해서 몸의 열을 식혀야 했다. 아침부터 세 시간 째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 시간은 더 풀을 베야 한다. 천천히 하자.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멍하니 흐르는 물과 구름을 보며 무념무상으로 휴식을 취한다. 조금 기운이 나는 것같다. 햇살은 강하지만 견뎌야 한다.
일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났더니 2시가 넘었다. 잠깐 앉아서 졸다가 장구 연습을 했다. 장구채가 가볍게 날지 못하게 둔탁하게 떨어진다. 그동안 쇠연습을 하느라 장구를 꾸준히 하지 않았더니 바로 퇴보해 버렸다. 네 시간을 넘게 예초기를 돌렸던 어깨와 팔의 근육도 정상이 아니어서 더욱 힘겨웠다. 한 시간 여 두드리다가 그만 두었다. 모처럼 강한 햇살에 다섯 시가 되도록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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