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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기억도 안나는 시작_140904, 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렁이가 논을 잘 지켜줘서 남는 시간을 이용해 비닐하우스 창고를 짓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완성을 못했다. 두 달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보일러실을 포위하고 쌓여있는 짐들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어제 하루 잘 쉬었더니 일할 기운이 불쑥 솟았다. 세 시간에 걸쳐서 짐을 옮기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치우면서 농기계도 점검을 해 보았다. 관리기는 이상 없이 잘 돌아간다. 논 제초기는 시동은 걸리는데, 제초 바퀴가 돌지 않는다. 작년에 사용하고 올해는 전혀 사용하지를 않았더니 오일이 말라붙었을 수도 있다. 경운기도 고장이니 수리하려면 왔다갔다 큰 일을 한 번 치러야 할 모양이다.

 

다 치우고 났더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무슨 심정으로 저 짐들을 방치해 두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아마도 날이 더워서 무겁고 허접한 짐을 나르기가 실었던 모양이다. 다 정리하고 났는데도 땀이 별로 나지 않는다. 확실히 날은 시원해졌다. 9월 초의 추석이라 너무 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런 일이다. 동생이 추석 선물로 소파를 보내 왔다. 소파가 하나면 허전한데 거실이 깔끔해서 편안하고, 둘이 되면 편리하게 이용은 하는데, 거실이 답답해 진다. 둘로 쓰다가 하나로 썼으니 다시 또 둘로 써보자.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오랜 만에 농업대학을 나갔다. 유기농기능사 실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강의를 세 시간 들었다. 다른 내용들은 다 이해가 가는데, 소금물로 볍씨를 고르는 과정을 공부하면서 왜 수분 흡수율을 계산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강사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한다. 아무런 이유없이 수분 흡수율을 계산하지는 않을텐데.

 

돌아왔더니 5시다. 일을 접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작업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서 옥수수 밭에 풀을 맸다. 모기에 뜯기면서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며 일하는 것도 그렇고, 잡풀에 엉킨 돈부 줄기를 발견하지 못해서 낫으로 베어 버리는 등 일이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한 수레의 풀을 정리할 수 있었다. 수천께서 고추를 따 놓으신 것을 옮겼다. 두 번째 고추 수확으로 네 바구니가 나왔으니 좋아해야 할 지 모르겠다. 모종값으로 10만원씩 두 번을 지출했으니 최소한 20만원 정도의 수확은 거두어야 하는데, 고추가루를 사지 않을 정도로만 수확을 해도 금년 고추 농사는 성공이라고 할 것이다. 우박으로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고추와 참깨와 보리다. 보리는 한 주먹 정도의 씨앗만 건질 수 있었다. 정농께서 우박이 쏟아지기 몇 시간 전에 보리를 베시려다가 하루만 더 두었다가 베자고 미루었는데, 우박에 맞아 전부 못쓰게 되고 말았다. 땅을 칠 일이었다.

 

향악당에 가서 장구를 친다. 비가 그쳐서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이동했다. 하루에 5시간 정도를 일하면 자전거를 타도 큰 무리가 없는데, 그 이상 일을 하게 되면 자전거를 탈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 농번기의 며칠을 제외하고는 5시간 이내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농사계획을 잘 짜야겠다. 9월 29일에 수료 시험을 봐야 하기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연습을 한다. 뒤늦게 강습에 참여하신 분들이 연습이 부족해서 과연 수료가 가능할지 걱정이다. 몇 번 열심히 함께 해 보았는데, 집에서 연습을 하지 못하시니 진척이 없다. 오늘도 몇 번이나 개인 교습을 망설이다가 겨우 참았다. 본인의 의지가 강해야 하고 여건이 허락해야 하는데, 두 가지 모두 갖춰져 있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단계를 졸업하고 2단계로 넘어가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