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에게 있어서 가뭄은 정말 힘든 조건이다. 작물이 말라죽어간다. 고구마 모종을 두 번이나 사다 심었는데도 두 이랑에서 절반 정도만 살아 남았다. 우박으로 1차 피해를 본 고추도 다시 모종을 사다가 심었지만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있다. 너무 더우니 지쳐서 일의 진척도 되지 않는다. 때로는 흠뻑 내리는 비를 맞으며 몸의 열기를 식혀줘야 가뿐하게 일을 할 수 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비를 핑계로 육체 노동을 쉬면서 책을 읽든 음악을 하든 휴식의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일이야 주말마다 가족을 만나러 가기 때문에 주 5일을 일하지만 연로하신 두 분은 비가 내려 일을 할 수 없지 않는 한 손에서 일을 놓으시지 못한다.
일요일에는 충주 충일중학교에서 유기농업기능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필기시험이 있었다. 지난 5개월 동안 음성의 농업기술센터에서 주 3시간씩 농업교육을 받았는데, 오늘 교육 내용을 시험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총 60문제가 출제가 되었고, 그중에서 자신을 갖고 푼 문제는 40문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 문제가 열 두 문제, 나머지는 아예 알지 못한다. 푼 문제 중에서 두 개가 틀렸고, 찍은 문제 중에서 9문제가 맞아서 총 47문제를 맞춰서 합격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3월초에 문제를 풀어보면 보통 23문제가 맞았으니까 그 사이에 공부한 효과 두 배 정도의 지식이 쌓였다고 할 것이다. 2학기에는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유기농기능사는 친환경농업을 하는 농부의 좋은 간판이 될 것이다. 먼 곳까지 그리미가 동행하여 문제도 불러주고 해설도 해 주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난 월요일은 고추밭에 부직포를 덮고 2단째 줄을 잡아주었다. 부직포를 잘 덮어두면 풀이 나지를 않아서 일이 확 줄어든다. 빗물도 잘 스며들고 가뭄이 들어도 습기가 덜 증발하기 때문에 흙에 모관수를 더 많이 남겨둘 수가 있어서 작물들이 자라기에 좋다. 부직포가 가격이 비싸고 설치하고 걷는 작업이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쪼그려 앉아서 며칠씩 풀을 매는 것보다는 훨씬 편안한 일이다. 농약도 아니니 생태계에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 좋지 않은 점은 밭의 모양이 보기 싫어진다는 것이다. 햇볕이 땅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시커먼 색깔인 부직포가 골마다 깔아져 있으니 녹색이 쫘악 펼쳐진 밭의 풍경을 망쳐버린다. 3년 정도 사용하면 버려야 하는데, 흙과 풀이 잔뜩 묻어있는 부직포는 재활용이 안되기 때문에 폐기물이 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어제 오전에는 땀을 뻘뻘흘리며 고추밭에 줄을 매었다. 쪼그려 앉아서 일일이 고추 한 주 한 주에 줄을 매다 보니 진도도 잘 나가지 않고 일도 짜증이 날 정도로 귀찮다. 조금 요령이 생겨서 일의 속도는 붙었으나 세 시간동안 허리가 아프게 줄을 매었는데도 고작 300주 정도의 고추에 줄을 맬 수가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고추가 쓰러질려고 하는 것들만 찾아서 줄을 매주는 방식으로 작업 방식을 바꿨다. 그랬더니 한결 진도가 잘 나가고 일도 수월하다. 아직도 700주 정도의 고추나무를 보살피지 않았는데, 밤부터 비가 내려서 쓰러진 나무들의 피해가 클 것이다. 고추들이 피해를 본 만큼 무일의 농사기술도 늘어난다.
하루 내내 구름이 잔뜩끼어 있고 날이 습해서 일하기는 좋았다. 오후에는 지난 번에 철거한 비닐 하우스와 콘테이너 자리를 삽과 괭이로 다듬어서 벌통 놓을 자리를 마련하였다. 처음에 빈터를 바라보려니 한숨이 나왔다. 저 넓은 벌판을 어떻게 다듬을 수 있을까. 굴삭기라도 한 대 있으면 이리저리 연습하면서 작업할 수 있을텐데. 일단 커다란 나무 쪼가리들을 옮겨서 불에 태웠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비닐들도 전부 수거해서 재활용 포대에 담았다. 엉망이 된 부직포들은 한쪽에 모아서 가지런히 펴 두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닥이 제법 깨끗해지고 편평해진 모습이 드러났다. 세 사람이 세 시간을 부지런히 움직였더닌 50평 남짓의 벌판도 정리가 된다. 역시 눈은 게으르고 손발은 부지런하다. 중간중간 한 숨을 쉬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은 끝나야 끝나고, 한숨을 쉬는 것은 일을 마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일의 진척이 보이면 소리없는 웃음으로 스스로를 격려했다.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씻고 더러워진 옷을 빨아놓으니 오늘도 인생고의 한 고비를 잘 넘긴 뿌듯함이 밀려온다. 옛동료가 안부를 묻는 문자와 함께 두 번째 아이로 딸을 갖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딸이 생겨서 좋겠다고 축하를 해 주고, 목소리 높이지 말고 조단조단 자세히 대화하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답장을 하였다.
좋은 일이 많으니 흥에 겨워 신나게 쇠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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