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여전히 논은 우렁이에게 맡긴다_140716, 수

언제부터 창고를 짓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6월 10일에 우박이 내렸고, 그후부터 정리하기 시작했으니 거의 40일째 창고를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이번 주도 창고를 완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월요일 오후에는 논으로 가서 논둑에 심은 콩 주변의 풀을 낫으로 베었다. 잘 자라던 콩도 우박에 맞아서 거의 전멸을 했기 때문에 다시 심으셨는데, 이제 풀들이 제법 자라서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풀을 베는 틈틈이 논을 들여다 보는데, 우렁이들만 논을 기어 다니고 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하나 있는 풀들은 제법 커서 뽑기도 쉽고 벼의 그늘밑에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기를 펴지 못하는 풀들이 불쌍해 보였다. 흐흐흐~.

 

풀만 매고 일을 끝내려고 했는데 바람이 불지 않고 고요하니 지난 주에 준비해 둔 하우스 골조에 비닐을 씌우자고 하신다. 다른 농부들은 일당 15만원씩 지불해야 하는 사람 3명을 고용해 몇 백만원을 들여서 하우스 한 동을 짓지만 우리는 직접 짓는다. 품질이 좀 떨어지고, 시간이 좀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자본은 없으나 시간이 많은 우리는 일과 경쟁한다. 일이 끝날 것인가 우리가 지칠 것인가. 일의 3/4 지점에서는 우리가 지쳐있다가 막판에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하여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8시가 넘어서 간신히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진이 빠진다. 향악당 청소당번인데 오늘도 청소는 못하겠다. 김선생님 두 분이 열심히 청소를 해 놓으셨다.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화요일은 하우스의 비닐과 차광망을 정리하고 창고 바닥을 골랐다. 땅 모양에 따라 지은 부채꼴 오각형의 하우스가 제법 넓어 보인다. 비가 내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에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어 하루 종일 일을 할 수가 있었다. 바닥에 부직포를 깔고 공사장용 깔개까지 깔아 놓았으니 풀은 올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흙 한덩이 묻어 들어 온 풀씨가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써 싹을 틔우고 있으리라. 일도 많이 진척이 되어 보기에도 좋았다. 풀려버린 눈과 맥이 빠진 손으로 샤워를 하는데, 눈 앞으로 휘익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어, 저것은. 지난 달의 우박 이후로 전혀 볼 수가 없었던 제비가 아닌가. 참새 소리와는 다른 지점귐도 들린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제비 한 마리가 창공을 휘익 가르며 이리저리 나른다. 비가 올 듯 하니 사냥을 나온 모양이다. 새끼들도 무사히 우박의 공격을 견뎌냈다면 내년에는 더 많은 제비들이 찾아와 줄 것이다. 점점 늘어나다 보면 우리 처마밑에도 말벌이 얼씬도 못하게 제비들이 집을 지어줄까. 우리 동네가 정말 깨끗해지기는 한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는 왠지 청소를 하고 싶어서 청소를 하고 하우스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모판도 옮기고 경유와 휘발유, 고추건조기까지 전부 옮기고 쓰레기 정리를 하고 있는데 군산 사시는 외삼촌이 오셨다. 청주까지 화물을 운반하시고 오랜 만에 들르렸다. 건강한 모습을 뵈니 참 좋다. 내 어린 시절에 소년중앙을 매달 끊기지 않고 사주신 분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먼지같은 월급을 받아 모아서 변번히 읽을 거리도 없었던 우리에게는 큰 기쁨을 선물해 주셨다. 소년중앙을 통해 상식을 키운 것은 물론 야구를 접하고 나서 참 건강해졌다. 성암여상 앞 놀이터에서 학원 못 나가는 가난한 친구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짬뽕공과 플라스틱 배트로 야구를 했었다. 3년 동안 그렇게 놀았다. 정말 즐거운 기억이다.

 

오후에 지게차 기사분이 오셔서 컨테이너 이동을 위한 작업환경을 의논하고 갔다. 내일 아침에 콘테이너 이동까지 마치고 정리를 하게 되면 창고 짓기는 끝나게 될 것이다. 이번 주까지 마무리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고, 여유를 가지고 다음 주에는 꼭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내일이 아마도 창고 짓기의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내에 약 19%의 농부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희망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흠. 참 좋은 직업이지만 돈을 벌기 어렵고, 유기농이 아니라면 온갖 농약과 제초제에 둘러싸여 살아가니 결코 좋은 직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돈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농약과 제초제는 생명을 다루는 농부와 어울리는 물건들이 아니다. 화학약품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깨끗한 농사를 짓는다면 농부도 참 좋은 직업이다. 나와 가족을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