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유럽캠핑카여행

에펠탑이 포근하게 안아주다_060812, 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처음으로 잠을 잤다. 밤새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만 없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는 소음 조차도 위로가 된다. 우리가 죽을 곳에 와 있는 것은 아니구나. 화장실, 샤워실, 매점, 테이블, 오수 처리시설 등 모든 시설이 갖춰진 휴게소는 무료 캠핑 사이트다. 화장실이 참 깨끗하고 좋았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아 있으려니 무릎이 아팠다. 우리나라 휴게소는 이용객들도 많고 워낙 지저분하게 사용하다 보니 십 년도 못되어 개보수를 해야 하지만 유럽은 건물 뿐만 아니라 화장실의 변기 조차도 오래도록 사용하기 위해 깨끗하게 사용하고 잘 관리한다. 그런 물건들 조차 골동품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침은 휴게소에서 산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다시 파리로 향해 출발했다.


도로 양쪽으로 넓은 밭이 거대한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다. 이렇게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오리농법이나 유기농법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기계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옥수수와 해바라기, 밀과 포도가 가득한 프랑스의 농촌은 아름다웠다. 색색으로 양탄자처럼 펼쳐진 곳도 있다. 그러나, 도로가 마을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니 낭만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의 시골마을들처럼 프랑스의 마을들도 낡고 쇠락해 있었다. 그것이 선진 농업국가 프랑스 농부들의 가난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넓은 들에서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예전의 마을 공동체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도록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주거지역으로 이동하여 예쁜 집들과 편리한 공공시설들을 이용하며 살고 있는 것일게다. 


시골 주변에 산뜻하면서도 제법 규모가 큰 도시들이 존재하는데, 단독주택들이 개성있게 늘어서 있고 아파트 같은 집단 주거시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농부들도 대부분 운수노동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농촌의 일터와 사는 곳도 이제는 분리될 수 있다. 언제든 뛰어나가 일할 수 있는 문전옥답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잘 가꿔진 마을 정원, 체육관과 문화교실, 운동장과 골프장, 쇼핑센터와 병원, 관공서와 은행 등의 시설이 골고루 잘 갖춰진 농촌마을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꿈은 멀기만 하다. 낡아빠진 농가 주택들 속에서 가난한 우리 농부들은 쓰러져가는 몸뚱아리들을 서로 의지하며 간신히 서 있다.


들이 너무 넓어서 프랑스는 볼 것이 없다. 게다가 비까지 쏟아진다. 열나게 운전을 한다.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푸른 들판에 모든 것을 내던져버렸다






여행은 새로운 경험이다. 주유원이 아니고서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기름을 직접 넣어볼 수 없었던 우리로서는 냄새나는 기름을 차에 채우는 일도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나. 좋아서.




샹파니 캠핑장에 짐을 풀고, 사흘 짜리 파리 방문 카드를 사서 파리 시내 구경에 나섰다. 제일 처음 방문한 곳은 개선문. 멀리서 바라보니 그저 그런 자그마한 문인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청나게 커진다.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Etoile)은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나 장군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커다란 아치 하나로 구성된 파리의 에뚜알 개선문과 좌우에 작은 아치를 거느리고 세 개의 아치로 구성된 터키 안탈리야의 하아드리아누스 개선문과 같은 방식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공화정은, 영국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황제들의 반프랑스동맹으로 위기를 맞는다. 왕정 체제와 식민 체제를 유지하려는 유럽 각국들이 공화정을 압박한 것이다. 혁명의 열기에 넘친 시민들이 모두 나서고(국민 개병제의 시초), 나폴레옹이라는 군사 전략가가 등장하여 프랑스는 유럽 전체를 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체제를 정착시키지 못한 공화정부가 공포정치와 테르미도르 반동 쿠데타로 위기에 빠지자 전쟁 영웅으로 인기를 얻은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황제에 오른다. 그가 황제의 관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관을 쓴 것은 멋있는 일이었지만 시민 혁명은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유럽 각국과 평화를 유지하기 원했지만 불가능했다. 1806년 아우스테를리치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동맹군(제3차 반프랑스 동맹)을 격파하고 승리한 것을 기념해 이 문을 세웠다. 이 때까지 그는 좋아 보였다. 대혁명의 순수성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프랑스의 시민들도 좋았다. 


저 멀리 반대편으로 신 개선문도 보인다. '그랑 다르쉬(신 개선문 : La Grande Arche)'는 1989년에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독재자 나폴레옹은 너무나 멋지게 남아있고, 프랑스 대혁명은 면면히 흐르고 있지만 위대한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나폴레옹 전쟁이 과연 대혁명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전쟁의 결과로 신성로마제국은 해체되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황제들이 난장이로 전락했으니, 결국은 혁명을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현대적이고 계단에 앉아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수 있기는 하지만 상업용 건물이다. 전시장과 회의실을 갖춘 거대한 빌딩이지 문이라고 생각되어지지가 않는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든다는 것이지 문이라는 건축물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한다. 












샹젤리제 거리를 비옷을 입고 걸었다. 온갖 사치품들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출입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출입자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옷 입은 우리들은 사치품 매장에는 들어갈 수 없다. 오래된 건물들이 이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에펠탑은 마치 돌로 조각된 듯하다. 철탑이라는 차가운 인상이 전혀 없다. 파리의 평원에 비해 너무 육중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저기 길게 늘어선 줄이 그 인공의 아름다움에 안기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대로 무시해 버린다. 그저 바라보니 아름다울 뿐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느꼈다. 앞으로 파리에 있는 짧지만 긴 시간 동안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파리 지하철은 악명이 높은 것에 비해서는 그다지 지저분하지 않았다.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코를 감쌀 정도는 아니었고 시커멓게 무엇이 묻은 자국이 있기는 했지만 자리에 앉기가 무서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이면 100년 역사의 파리 지하철이 최선을 다해서 반겨준 것이 아닐까 싶다. 잘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