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에 일어나서 8시에 출발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밥을 먹고 김밥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10시 15분 버스를 타고 캠핑장을 떠났다. 아이들도 지쳐 쓰러져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캠핑카 뒤의 침대에서 자다 놀다가를 반복하면서 돌아다녔는데도 잠이 잠을 부르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버린 모양이다. 저녁마다 성대하게 차려지는 식탁 때문에 늦게까지 먹고 마시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노뜨르담성당에 도착했다. 규모도 크지만 각각의 벽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들이 매우 아름다웠다. 하얀 대리석으로 단순함과 세밀함이 잘 뒤섞여 있어서 대충 보아도 멋이 있고,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아름답다. 가톨릭은 영생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느님을 떠받드는 인간의 세계를 이땅에 건설하였으니 누가 그 세계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전에 노동과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는다. 1163년에 초석을 놓고 성전(聖殿) 건설을 시작하여 1345년에 성전(聖戰)을 끝내 183년이 걸렸다. 몽골과의 항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았던 고려의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 파리의 시민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하루를 쉬어 갔을 것이다. 참 부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 예쁜 성당은 장대한 그림의 무대가 된다. 섬 출신의 미천한 인간이, 감히 신의 대리자이며 예수님의 오른팔인 베드로의 법통을 잇는 교황을 시켜 사회를 보게 하고, 직접 황제에 등극하는 불경을 저지른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바로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이 성당에서 열렸다고 한다. 1804년 12월 2일의 일이다. 나중에 이혼하게 되지만 그의 아내 조세핀과 함께. 가톨릭 교회는 이 사건을 아마도 이렇게 정리할 것이다. 황제는 신께서 특별히 아끼시는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이므로 다소 무례했지만 비례는 아니다.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피신한 명동성당에서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고 하며 나갈 것을 요청한 것도 함께 떠오른다.
퐁네프의 다리로 향한다. '퐁네프의 연인들'에 등장하는 거지같은 연인들의 다리는 정말 별 기대 없이 갔다. 그런데, 몹시 아름다웠다. 웅장한 규모가 아니면서도 육중한 돌에서 원석의 은은한 아름다움이 보이고, 섬세한 조각과 편안한 보이는 돌벤치를 위에 얹고 잔잔히 흐르는 세느강도 한 폭의 그림이다. 멀리 보이는 에펠탑 금발머리의 아이들과 처녀들 등 영화에서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이 다리에는 있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 걸인처럼 살아가는 화가 미쉘과 곡예사 알렉스가 파리 세느강의 9번째 다리인 퐁네프에서 거지처럼 살다가 사랑에 빠진다. 알렉스의 미쉘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어지는지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다시 보면 감동이 생길까 하여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았지만 걸인에서 정상인으로 돌아온 여주인공 줄리엣 비노쉬의 예쁜 모습만 인상적이다. 세느강의 모래 운반선 뱃머리에서의 두 연인의 자유와 여행에 대한 환희가 끝장면이다. 역시 별로 인상적이지 못하다. 여배우의 선택만 빼고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상이 훨씬 훌륭하다. 제대로 잘 베껴서 멋있게 발전시켰다.
시간이 휘익 흘러가는 것이 아까워 서두르다가 전철을 바꿔타면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버렸다. 서두르면 망치기 쉽다. 그래도 여행자의 긴장이 전철 방향이 바뀐 것을 금방 알아채고 두 세 정거장 만에 다시 바꿔탈 수 있었다. 시간을 허비했어도 무사히 오르세에 도착을 했는데 기다리는 줄이 장난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 질색이다.
빡빡한 경비원이 불친절하게 우리를 응대하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가랑비가 살짝 내리는 긴 줄 속에서 김밥을 - 아이들은 삼각 김밥 - 꺼내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는 사이에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경비원 친구가 어린이를 동반한 사람들은 줄에서 기다리지 말고 예약 입구로 가서 먼저 입장을 하란다. 오, 고마워~.
너무 좋아했는데, 김밥을 머저 먹는 잠깐 사이에 빡빡한 그 친구가 다시 눈을 부라리며 나타나서는 어린이가 있어도 안된다고 버틴다. 우리가 항의하자 다시 그 친절한 친구에게 무전을 날려 확인을 해 보더니 어쩔 수 없이 입장을 시킨다. 역시 여행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이어야 한다.
반고호의 그림이 참 인상적이다. 불행하게 살다간 사람이라 연민의 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림의 강렬함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강렬함보다는 열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을 지배하는 듯한 강렬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뜨거운 정열이 고호의 그림에서 느껴진다.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두 명의 구도자가 바람을 맞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모습으로 가는 그림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림 자체가 좋아서 한참을 보았는데, 나중에 와서 찾아보니 외젠느 뷔르낭(Eugene Burnand, 1850-1921)이 그린 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한다. 시신이 없어졌다는 소식에 놀라서 쫓아가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폭풍우 속에서도 진리를 찾으려는 구도자의 안타까운 시선으로 해석하고 싶다.
까미유 끌로델의 떠나는 연인을 향한 애틋한 손짓의 안타까움이 절절이 베어나는 조각 작품은 최고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로뎅의 자극적인 사랑의 조각들도 괜찮았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가 그의 제자들을 이용해 그 많은 작품들을 생산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사진에 비친 그의 모습은 그저 인자할 뿐이다.
앵그르의 사진과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아름답다. 모네의 모자를 쓴 동양적인 모습이 혼합된 서양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미술책에서 본 것과 같은 모습이다.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는 여인들은 그림의 크기나 색채, 구도, 주제 모두 소박하고 평범하고 투박하여 편안했다. 책 보다 덜 강렬한 소박함이 매력적인 원화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랑쥬리 미술관은 작은 규모이다. 모네의 8점의 수련 연작이 두 개의 큰 방안에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다. 별로 그림답지 않은 그림이었다. 아래 층에 피카소나 마티스의 그림이 훨씬 재미있다. 마티스는 어린이들의 그림을 어른이 그린 것과 같아 순진무구하나 깊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 피카소는 매우 풍만한고 표정이 있는 그림이었으나 아름답거나 창조적이라는 느낌은 가질 수 없었다.
로뎅 미술관은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의 수많은 작품들과 고호의 작품까지 일부 전시되어 있어서 돌아 다니기에 지루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작은 소품인데 손에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창조되고 있는 조각이다. 신의 손으로 창조되는 아담과 이브를 표현한 것이라는 데 대단히 환상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랑을 나누며 창조되는 인간. 작은 작품이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감동이다.
까미유끌로델(1864~1943)의 버려지는 여인도 놀라웠다. 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연인의 손을 잡으려는 한 여인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지막 30년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야 했던 까미유끌로델의 로뎅에 대한 사랑과 실연이 그대로 표현된 듯 하다. The age of maturity 라고 한다는데, 실연을 해야 여자는 성숙하는 모양이다. '다나이드'라는 작품에서의 여성의 몸은 너무 아름다워서 욕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첫 날 밤 남편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평생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채워야만 하는 벌을 받는 다나이드의 신화를 표현했다고 한다. 콩쥐와 같은 계열이다. 훌륭한 예술가다.
벼룩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했다. 역시 영어가 조금되는 친구가 주문을 받는다. 나중에 감자 튀김을 시켰는데, 향기로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동안에 잊어버렸다고 한다. 영수증을 영어로 써줄 까 불어로 써줄까를 묻는다. 기념이 되게 불어로 써 달라고 했더니 좋아한다. 벼룩시장은 비가 와서 폐장 분위기다.
터키산 싸구려 옷들을 파는 노점상 앞에서 우주신에게 줄 옷을 샀다. 아래 위 한 벌에 5유로니까 6천원에 산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인도의 청년들로부터 옥수수 4개를 2유로에 사서 먹었다. 자기네가 장사의 끝물이니 반값에 할인한다고 한다.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활달한 표정에 2유로 동전을 선뜻 내 주었다. 옥수수는 맛이 있었는데, 다만 많이 타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저녁은 중국 뷔페에서 어른은 14유로, 아이들은 7유로에 제법 푸짐하게 먹었다. 54도의 독한 술에 목구멍이 타 들어간다. 기차 시간이 딱딱 맞아 들어 비교적 빨리 캠핑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냥 잠들 수 없어 다시 포도주 한 잔으로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대단한 것들을 보고 나니 감동에 겨워 무엇을 감동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 한가하게 하나씩 감동할 수 있을까. 그동안 미술전람회를 한다고 하면 몇 만원씩 들여가며 뭘하러 그림을 보러 다닐까 생각했다. 나중에 여행하면서도 볼 수 있으니 그 때 가서 보면 되지.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좋은 그림이나 조각들은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즐기자. 단 돈 몇 만원이면 하루밤 숙박비도 안되는 돈으로 명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이 국내 미술관 관람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다리는 아프고 눈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행복으로 그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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