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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두바이의 사치_130124, 목

두바이 공항에 새벽에 도착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난감했다. 먼저 두바이 현지 화폐를 인출하기로 했다. 시티 은행을 찾지 못할 경우 쓰려고 가져 온 카드로 현금을 인출해 보았더니 무난하게 잘 된다. 금융시스템은 참으로 놀랄만큼 발전했다. 2003년 이후로 여행자 수표는 사용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현금카드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다. 군사정권에는 한푼의 세금도 주지 않겠다는 현금을 너무 좋아하는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새벽 4시. 공항의 기온은 적당했으나 몸을 누이고 편안하게 눈일 붙일만한 장소가 없었다. 짐을 보관하려고 했다가 워낙 가격이 비싸서 그냥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어차피 편안한 숙소에 넣어두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짐 보관소의 소파가 편안해서 다리 쭈욱 뻗고 쉬고 있는데, 직원이 오더니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로비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택시기사는 파키스탄에서 온 여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행 중에 여자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여자 기사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매우 친절해 보이고 영어도 잘 하는 모양이다. 무일은 못알아 듣겠다. 친척께 전화를 드려서 집의 위치를 확인하고 운전기사와 통화를 하게 해 주었는데도 한참 뺑뺑이를 돈다. 같은 곳을 몇 번이나 돌더니 이제 도리어 우리에게 화를 낸다. 성질이 나서 차를 세우라고 했다. 첫날부터 아주 기분을 망쳐 놓는다. 도로와 정원은 잘 정비가 되어있어서 걷기에는 좋았다. 한겨울인데도 온도는 꽤 높았다. 큰 길을 걷다가 마중 나온 친척 형을 만났다. 짐을 풀고 한숨 푹 자고 났더니 기분이 개운하다.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김치찌게와 돼지갈비를 푸짐하게 차려먹었다. 오징어 젓갈을 이 머나먼 오지에서 먹게 되는 행운도 누렸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리미와 무일의 활약으로 다양한 한식을 즐겼지만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배가 그득해졌고, 풍요로운 두바이의 식고문이 시작되고 있었다.


두바이는 대도시의 빌딩군들을 보는 것이 관광이다. 비록 지금은 부도가 나서 아부다비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있지만 척박한 사막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시민들을 부유하게 살게 해 주려는 왕실과 정부의 노력은 고개를 숙이게 한다. 60년대에 개발된 석유가 이제는 거의 바닥이 나고 특별히 보여줄 것도 없는 이곳에서 오직 도시 설계를 통해 시민들의 부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보였다. 좋은 정치란 정치인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시키는 것이다. 스위스 은행이다 조세회피처다 해서 자신의 재산만 태산처럼 쌓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지 않고 종교나 윤리의 가르침대로 시민과 더불어 사는 삶을 택한 두바이 왕실의 품성이 부럽고도 부럽다. 의욕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런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살아 있는 한 두바이는 번영할 것이다.


좋은 정치가가 되려면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명심하자.

 


와우, 높구나. 어휴 더워라. 이런 말들을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거대한 수족관 앞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쇼핑센터 '더 돔(The Dome)에 오는 손님들에게 살아있는 거대한 바다 속을 들여다 보게 해준다. 상어, 가오리, 곰치를 비롯한 엄청난 크기의 바다 생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감동이다. 63빌딩 수족관을 몇 만원 씩이나 내고 가서 구경했다는 것이 한심할 지경이다. 정말 훌륭하다. 거대한 몸집에 하얀색 전통 복장을 한 아랍 사람들이 까만 색 옷을 뒤집어 쓴 서너 명의 사람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비싼 옷을 사기도 한다. 우리도 두바이 음식을 먹어 보았다. 샐러드와 빵, 스프를 시켜서 먹었는데, 아침을 워낙 잘 먹어서 그랬는지 특별히 감동할 맛은 아니었다. 서양인들이 많이 들어오는 식당이다 보니 보편화된 음식이었다. 음식값을 계산하면서 비싼지 싼지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숙박비가 들지 않으니 여유 만만.


사막투어를 신청했는데, 그중 최고는 사막 드라이브다. 우리는 두 번을 탔다. 처음에 탔을 때는 함께 탄 어린 여자애가 너무 무섭다고 울어서 제대로 질주를 하지 못했다. 드라이버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저녁에 사막춤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한 번 더 보여주겠다고 해서 우리 네식구만 다시 한 번 사막 드라이브를 즐겼다.


바퀴에 바람을 살짝 뺀 4륜구동 짚차를 타고 사막을 달려나가는데, 금방이라도 차가 뒤집어질 것 같았다. 모래가 만든 낭떠러지 언덕을 번개처럼 내려가니 앞으로 처박히는 것같아 심장이 멎어버렸다가 되살아난다. 사막 드라이버는 별도의 자격증 시험이 있어서 합격을 해야지만 운행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사막에서 제공되는 음식이나 공연은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하루 저녁 즐길만 하기는 했다. 수준 높은 쇼들도 많을텐데, 사막이라는 공간에서는 어린시절 보았던 찬란한 은하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저 그런 도시의 별들이 밤하늘에 희미하게 떠 있었다.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