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가 넘었는데도 눈이 잘 떠지지를 않는다. 부엌 창문으로 어스름한 태양빛이 올라오는 것이 곧 해가 뜰 것 같았는데도 옥상으로 올라가지를 않았다. 어제의 가라앉은 모습 그대로 오늘 그것이 떠오를 것이다. 자자.
눈을 뜨자마자 그리미는 카톡과 뉴스를 확인한다. 그리스의 어디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3천년 된 올리브 나무를 하루 밤 사이에 땔감으로 베어갔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한다. 친절하고 조용하며 진지했던 그리스인들도 무능한 정부 아래서는 역사에 흠집을 만들 수밖에 없다. 뭐, 그래 보았자 나무 한 그루니 큰일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면서도, 온갖 훌륭한 말들을 뱉어내는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그리스든 터키든 버스 정류장이든 공항이든 어디서나 페이스북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다 떨고 구경하고 글 쓰고 자랑하고 등등의 일을 할 것이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무일도 좋다. 오프라인의 수다 보다 온라인 수다가 훨씬 절제가 쉽고, 언제든 수다에서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려 70유로나 주고 이틀 밤을 잔 산토리니 피에로스테파니의 카피에리스 아파트 호텔은 방 하나에 더블베드 2개, 작은 발코니, 작은 부엌, 작은 욕실이 갖춰져 있다. 이틀 밤을 잔다고 하니까 청소를 해 주지 않아서 떠나는 날 아침은 침실 바닥이 머리카락과 흙과 과자 찌꺼기로 지저분해진다. 난방이 없어도 충분히 따뜻하지만 샤워를 하고 나서를 생각해서 온풍기를 작동시켰더니 따뜻한 바람이 힘차게 잘 나온다. 매트리스는 돌로 만든 침대 위에 튼튼하게 얹혀져 있다.
부엌의 전기레인지는 화력이 좋아서 생선 누룽지를 만들기에 좋았고, 접시, 국 그릇, 칼, 커피 잔 등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다. 음, 한 50리라의 가치는 있다고 할 것이다. 시설이야 50리라(18유로 이하)에 잤던 부메랑 호텔 보다 못했지만, 경관을 즐길 수 있었던 위치와 생선누룽지를 마음껏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부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묵을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주변 호텔들의 가격을 알 수 없어서 뭐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비슷한 가격이라면 묵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큰 어려움이나 더러움이나 불편함은 없었다. 한 가지가 있기는 하다. 빗물을 모아 정화해서 쓴다고 하는데, 가끔 물이 끊겨서 3~5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써야 했다. 물론 마셔서도 안 된다고 해서 깨끗한 물을 사서 먹어야 하는데, 까르푸에서 6병을 2유로도 안되게 주고 샀으니 큰 어려움도 아니다.
작은 산토리니 공항에서부터 아테네 공항까지 비행시간 25분, 활주로 이동시간 15분. 물도 주고 과자도 주고. 그렇지만 수퍼 세이브를 사지 않았다면 억울할 뻔 했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을 나갈까 했는데, 메트로의 파업이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망설여졌다. 가족회의 끝에 비록 공항이기는 하지만 여유 있게 쉬는게 좋다는 의견이 다수여서 그냥 공항에서 5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공항에서 보내게 되는 모양이다. 사진과 동영상 파일도 백업을 하고 졸려서 다 못 쓴 일기도 저장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촌에까지 모니터를 판매한 LG 디스플레이의 주가는 왜 이 모양이지? 어디를 가나 LG 디스플레이와 LG 에어컨이던데, 덤핑해서 파느라 수익이 안나는 것인가?
깔끔한 식사 장소가 있어서 가격을 보았더니 버거와 오믈렛, 음료까지 포함해서 5유로이고 버거는 꽤 푸짐하다. 맥도널드를 가 보았다. 5유로 정도면 감자튀김까지 먹을 수 있겠다. 푸드코트를 갔다. 아시아 음식이 있었는데, 먹고 싶었던 뜨거운 쌀국수는 먹을 수가 없고 음식은 10유로가 기본이다. 제일 처음의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시켰는데, 푸짐했던 버거는 몇 개를 겹쳐 두었던 것이었다. 허 참, 이런 눈속임(?)도 가능하구나. 그래도 맥버거 보다는 좋았다. 샐러드 하나를 추가해 먹었더니 먹은 것처럼 먹었다.
괴뢰메 야외박물관 입구의 버스정류장에서 산 15센트짜리 엽서에 편지를 쓴다.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집 어머니 아버지 조카 등등의 앞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전하고 걱정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드렸다는 것을 구구절절하게 적었다. 4명이 7장의 엽서를 완성하고 우체국에를 갔더니 5유로라고 한다. 우표가 큼지막해서 이리저리 빈 공간을 찾아 부쳤다. 집에 가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리라. 우리와 가족들 모두에게.
현재 시각 4시 10분. 비행기 타는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다. 어디 누워서 잠을 좀 자야겠다. 아테네 공항은 무료로 이용하는 와이파이가 많다고 했는데, 현재의 위치에서는 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만 있다. 아직 노트북의 충전이 완료되지 않아서 자리를 옮길 수 없다. 아들들은 아테네 공항 구석구석을 다 쓸고 다니자고 한다. 그런 후에 ‘아테네 공항 사랑 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두바이를 제외한 모든 호텔들을 평가해 보자. 4인 1실 기준인데, 더블룸 두 개를 동일한 가격에 준 호텔도 있다. 비수기라서 방의 여유가 있었다. 부킹 닷컴에서 예약한 귈테킨 펜션, 베누스, 캔디아는 협상을 하지 못한 가격이기도 하다. 협상이 있었다면 더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측이지만.
1위 사바흐 펜션(안탈리야) 65유로 2개 층 전체, 세탁기, 넓은 부엌, 거실, 화장실
2위 귈테킨 펜션(카파도키아) 60유로 5개의 침대가 있는 넓고 깨끗한 공간, 라디에이터
3위 하네단 호텔(이스탄불) 65유로 깨끗한 공간, 요리가 가능하도록 한 쿨한 주인
4위 캔디아 호텔(아테네) 65유로 두 개의 더블룸, 넓고 깨끗한 공간
5위 베누스 호텔(파묵칼레) 60유로 깨끗한 공간
6위 부메랑 호텔(셀축) 42유로(100리라) 추울 때는 문제, 저렴하지만 깨끗한 공간
7위 칼레이치 호텔(안탈리야) 50유로 깨끗하나 좁고 약한 수압, 친절하고 유용한 정보
8위 귀네스 호텔(부르사) 34유로(80리라) 넓고 편한 공간, 쿨한 안내, 뜨거운 물
9위 카피에리스 아파트 호텔(산토리니 피에로스테파니) 70유로 친절, 좋은 위치, 부엌
이 모든 호텔들은 하루 이틀 묵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좋았다. 어느 호텔을 선택하더라도 최고는 아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가격을 고려한 평가이므로 반드시 가격을 참고해야 한다. 9위를 차지한 아파트는 괜찮았지만 가격이 너무 높아 꼴찌를 했다. 가격이 60유로 정도였다면 순위는 7, 8위 정도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8위인 귀네스는 저렴한 가격과 허름한 시설에 비해 많은 즐거움을 준 곳이다. 적극 추천한다. 부르사의 다른 호텔들은 너무 비싸다. 귀네스와 같은 오텔들이 뒷골목에 더 있었으니 조금 찾아보면 비슷한 것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격 협상은 언제나 하자. 부킹 닷컴의 가격을 참고해서.
이스탄불공항에 도착하니 얼굴 표정부터 밝아지기 시작한다. 왠진 터키는 유쾌한 곳이다. 페르게 투어의 가이드분 말대로 유럽연합에 가입했던 많은 나라들이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아직까지 터키는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원래 낙천적인 사람들이고, 정치 폭력이나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사상의 억압이 없었다는 것이 커다란 장점일 것이다. 그들은 술탄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술탄을 사형에 처했고, 그리스를 비롯한 연합군과의 독립 전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세웠다.
또한, 아타튀르크는 자신에 의한 독재가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해서 결혼은 했으나 이혼을 했고 자식도 낳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군부는 아직도 사회의 존경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길(예를 들면 종교에 편향된 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세속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아타튀르크의 원칙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켜 종교 정당을 해산시키고 정국이 안정된 2, 3년만에 민정이양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과정도 좋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터키의 군부 쿠데타는 대항할 무력이 없어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단언할 수는 없다)로 나아갈 때 방향타의 구실을 하였다.
정말 오랜만에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터키로 오는 동안의 기류가 장난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비행기가 떨어질 것처럼 흔들린다. 한 시간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여행을 했다. 무사히 착륙했다. 만세 ~
공항으로 픽업을 나온 기사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psy를 안다고 한다. 싸이라고 해도 모두들 '피에스와이'라고 한다. champion이라는 노래도 좋다고 알려 주었다. 술탄아흐멧의 하네단 호텔의 형제들은 우리 식구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2층 방으로 올라가자 마자 물을 끓여 햇반을 덮히고, 라면을 끓였다. 파묵칼레에서 살짝 비닐을 찢었다가 먹지 않고 보관해 온 햇반 하나에 곰팡이가 피었다. 음, 햇반은 이렇게 상하는군, 좋은 일이다. 잘 먹고 다녔더니 라면에 대한 반응은 평범했다. 역시 좋은 일이다. 같은 동양권인 중국을 여행할 때에는 일정도 짧았는데, 라면과 햇반에 열광했었는데 지금은 왜 이럴까? 미소 된장국과 순두부 양념, 고추참치를 이용한 찌개가 모든 한식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해 준 모양이다.
양말 네 켤레를 누가 빨 것인가를 정하는 가위바위보. 천재의 희생과 봉사로 나머지 식구들은 즐거운 휴식을 취했다. 다 빨아가지고 나온 양말을 탈수할 차례. 깨끗한 수건에 양말을 쫘악 펴서 둘둘 말아서 수건을 비틀어 짜면 완전히 탈수가 된다. 내일이며 다시 깨끗한 양말을 신을 수 있게 된다. 12시가 다 되어간다. 날씨도 내일은 해가 잘 나고, 비가 예보되었던 모레는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부는 정도로 바뀌는 모양이다. 역시 여러 신들과 조상님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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