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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터키는 마지막까지 즐겁게 만들어준다_130123, 수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 밤새 비가 가볍게 내리고, 우중충하게 검은 구름이 내려 앉아있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하늘에는 하얗게 또는 까맣게 갈매기와 까마귀들이 날고 있다. 멀리 마르마라 해가 흐린 날씨 덕분에 수평선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아침 식사라서 열심히 먹어야 하는데, 다들 그저 그렇다. 헤어짐이 아쉬워서겠지.




먼저 톱카프 궁전의 제1정원(매표소가 있는 정원)을 지나 옆길로 빠지면 나타나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Istanbul Archeological Museum)을 보기로 했다. 유명한 미술품이나 조각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우 터키의 박물관에 무슨 대단한 것이 있을까 싶어서 한 두 시간 만에 돌아서 나올 생각을 했다. 우리 가족을 환영하는 아이들의 웃음과 손짓을 보니 발걸음에 힘이 난다.


착각이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소아시아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의 박물관이었으며, 터키의 국립박물관이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도 하루에 다 보기 어려운 규모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다리가 끊어지게 아프고 너무 많은 유물들을 보느라 피곤해져서 저절로 사탕을 찾게 되었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와 힛타이트의 왕 하투실리 사이에 맺어진 카데쉬 조약의 쐐기문자 기록판을 직접 본 것은 영광스런 일이었다. 겨우 손바닥만한 점토판에 빽빽하게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잔뜩 기록되어 있었다. 이집트 문명의 융성기를 이끌었고, 아부심벨 신전을 세우는 등 대단한 문명을 남겨놓은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와의 전쟁에서 실제로는 패배해서 대부분의 병사를 잃고 퇴각했는데도, 이 평화조약으로 자신의 업적을 과시했다는 것은 또한 재미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지하궁전을 보기로 했다. 영어로 바실리카 시스턴(Basilica Cistern / 바실리카 양식의 저수지 / 영어 발음이 bəsílikə여서 바실리카라고 하면 못 알아들을 것 같다. 우리는 그냥 찾을 수 있어서 물어 보지는 않았다)이라고 하고, 터키어로는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 Caraii / 지하 궁전)라고 한다. 로마시대에 건설한 거대한 수로를 프랑스의 님에서 보았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깨끗한 물 관리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각 가정으로 어떻게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땅만 파면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고, 여기저기 실개천이 흐르는 나라에는 전혀 필요 없는 시설이었겠지만 거대한 지하 물탱크를 만들고, 놀라운 규모의 상수도 시설을 건설한 로마인들의 안목에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 님 Nimes / 서기 50년을 전후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사위인 아그리파가 기획하고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에 완성한 수도교를 뽕 뒤 가르(Pont du Gard)라고 하는데, 고도차가 17m 밖에 나지 않는 수원지에서 Nimes으로 자연낙차를 이용한 방법으로 물을 보내기 위해 약 50km의 수로를 건설했다고 한다. 로마의 놀라운 토목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보아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큰 기대를 하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예상외로 느낌이 좋았다. 예상보다 규모가 커서 그랬는지, 조명이 은은하고 예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맑은 물속에 여유 있게 놀고 있는 물고기들이 좋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하여튼 사진도 좋았고, 기분도 좋았다. 거꾸로 있고, 옆으로 있는 메두사의 머리도 좋았다. 왜 그랬는지를 역사학자들이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무일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저수지에 침입해서 물에다 나쁜 짓을 해서 로마시민들을 괴롭히려고 했다고 해 보자. 그자는 작은 횃불에 의지해 물 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때, 저 쪽 한 귀퉁이에서 사람 얼굴이 거꾸로 나타났다가 옆으로 나타났다가 한다면 겁이 나서 어떻게 감히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로마인들은 아마도 그런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지하 저수지라면, 지붕 쪽은 전혀 쳐다 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까를로스가 추천한 쾨프테를 먹으러 갔다. 식당 안은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꽤 붐빈다. 1 샐러드, 2 스프, 3  , 4 쾨프테(미트볼과 양고기를 각각 두 개씩)를 시켜서 먹었다. 빵과 함께 먹었더니 맛도 좋았고 양도 꽤 많았다. 스프는 안탈리야에서 먹었던 스프 보다는 맛이 덜했다. 포만감을 느끼며 호텔로 향했다. 트램길을 건너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를 다시 한 번 바라보는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시간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다시 한 번 모스크 안을 거닐고 싶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가니 셔틀이 도착해 있었다. 빠짐없이 짐을 챙기고 총 6일 동안 마음 편안하게 식사를 해 먹었던 하네단 호텔을 떠난다. 이스탄불의 로마 성벽과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공항에 도착해 주니 아쉬움을 달래주는 길이다. 도착하자마자 전광판을 보니 두바이행 에미레이트 항공은 90분 지연 운항된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스크 들려서 감사 기도를 한 번 더 올리고 오는 것인데. 


업무에 처음으로 배치된 직원인지 인천을 모른다. 서울, 코리아까지 알려주면서 여권을 내밀었더니 아주 여유 있고도 귀엽게 적당히 실수를 섞어가면서 짐을 부쳐준다. 마지막으로 지연 운항에 따르는 무료 식사권(meal boucher)과 게이트를 알려 주더니 벌떡 일어나서 귀엽게 손을 흔들며 ‘Have a nice trip’한다. 비행기 몇 번 타보지는 못했지만 짐 부치고 나서 이렇게 즐겁고 귀엽게 인사해 주는 분은 처음이다. 아, 터키는 마지막까지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