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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가을 일은 끝이 있다_131109, 토

주말에는 일 안하고 놀지만 그리미의 근육 파열 때문에 

주중에 일을 하지 못해서 주말에 일을 한다.

느지막하게 햇살이 비출듯 말듯 할 때, 마지못해 일어나서 움직인다. 

잠 깬다는 핑계로 먼저 책부터 몇 쪽 뒤적인다. 

수천께서 한 마디 하시고 나가신다. 얼른 움직이라고.


무엇부터 할까. 논에 가서 볏짚 묶어 놓은 것 가져오라 하신다.

옳거니. 가자.

가을 일은 끝이 있다. 지난 여름 논 김매다가 탈농할 뻔 했는데,

가을 일을 하면서 다시 자신감이 생긴다. 

별로 한 일이 없는데도 일이 자꾸 끝이 난다.


찰벼 논에 꼼꼼하게 정농께서 묶어놓으신 볏단이 제법 된다.

마늘밭 보온 덮개로 나무 얼어죽지 말라고 옷처럼 입혀줄 때, 

메주 매달기와 제사 때 술상에 쓰기 위해서 볏짚을 잘 보관해 두어야 한다.

턱 하니 늦가을의 단풍을 한 번 즐겨본다.

수목원의 나무들이 제법 예쁜 색을 뽐내고 있어서 바라보기에 좋다.

어쨋든 일은 끝날테니 느긋하게 경치 구경을 한 번 하고 시작한다.


한 손에 한 단씩 두 단을 들고 푹신한 논 위를 슬슬 걸어 나온다.

두 단씩 두 단씩 슬슬 마음이의 등짝 위로 올려 놓으니 어느덧 한 차 가득이다.

먼저 마늘밭에 보온용으로 깔 수 있도록 내려놓고 

다시 논으로 가서 두 단씩 두 단씩 슬슬 옮기고 나니 볏짚 옮기기는 끝이났다.


그 사이 정농께서 정미기의 가동 상태를 점검하셨다.

돈은 들지만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어서 읍내 정미소에서 정미를 끝내려했지만

흑미는 안된다 찹쌀은 날자를 맞춰서 가져와야 한다 등등 요구 조건이 많다.

작년 가을에 20만원 주고 산 중고 정미기로 남아있는 흑미와 찰벼를 도정하기로 했다.


설렁설렁. 끝없이 걸어다니며 기계도 쉬게 하고 정미를 한다.

온 몸을 정미기에서 날리는 먼지로 허옇게 뒤짚어썼다.

그래도 이상 없이 잘 돌아가 주는 정미기가 고맙다.

깜부기도 섞이고 뉘도 섞이지만 돌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번에 벼를 말리면서 바닥에 부직포를 깔았더니 흙이 튀지를 않아서 그렇다.


그래, 깨끗한 쌀을 먹겠다는 사람에게는 읍내 정미소에서 쌀눈까지 다 밀어낸

깨끗한 쌀을 먹게 하자. 바쁜데 언제 깜부기 일어내고 쌀을 씻겠는가.

그대신 우리는 깜부기 일어내고 쌀눈 살아있는 쌀을 먹자.


오후 내내 설렁설렁 흑미 210kg, 찰벼 30kg을 현미로 정미하는데 성공했다.

이 정미소 저 정미소에 전화해서 정미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비도 간간이 내려 호박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나니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