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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쌀눈이 살아있는 백미는 안됩니다_131024, 목

더 이상 헌 물건을 얻어오지 않기로 했는데도

꼭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헌 물건이라도 덥석 손이 나간다.

이번에도 처남이 처분하는 가게의 여러 물건들을 가져왔다.

스피커와 의자와 탁자 등등.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벌레도 없고 바람도 가볍고 하늘은 아름다워서

아침으로 준비해 주신 팥죽과 사과, 커피를 들고 데크 위의 얻어 온 탁자로 나갔다.

멀리 가볍게 단풍이 드는 산과 고구마를 캐는 사람들의 바쁜 몸놀림을 보면서

천천히 자연 속에서 아침을 먹는다.

얻어 온 탁자와 의자도 괜찮군.


이렇게 산다.



몸을 좀 풀고 나서 밭에 남겨둔 부직포를 걷으러 간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것들을 슬슬 털어가며 걷는다.

부직포의 두터운 벽을 뚫고 뿌리를 내린 풀들의 생명력은 얄밉다.

데크로 가져가서 시원하게 빨아냈으면 좋겠는데,

모두 합치면 이백미터도 넘는 것을 빨아서 말릴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일을 줄여야 한다.


찰벼와 흑미를 베기 위해 낫으로 베는 작업을 하러 논으로 갔다.

잘 익은 벼들이 누렇고 고소하게 가벼운 바람을 타며 춤을 춘다.

지난 여름의 험한 전쟁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고 넘실넘실 아름답게 흔들린다.


낮잠 한숨 자고 어제 실어둔 벼가마를 싣고 읍내 정미소로 향한다.

쌀눈을 살리기 위해 6분도 도정도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불가능하단다.

잘려나가는 쌀눈이 아깝지만 맡기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쳐서 세시간 만에 정미는 깜끔하게 끝났다.


하얀 백미 8가마(640kg) 현미 반가마(40kg) 도정료 12만 5천원.

정미하지 않은 벼 260kg이 있으니 약 850kg의 멥쌀을 수확했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가마당 30만원으로 계산해서 350만원 정도 된다.

쌀가격은 농사지은 이래로 13년째 가마당 30만원이다.


쌀눈을 살려서 온전한 쌀을 먹기 위해 가정용 정미기를 이용해 도정을 해 봤는데,

돌과 뉘가 제대로 골라지지 않아서 밥을 해 먹을 때 너무 불편하다.

게다가 기계의 잦은 고장으로 정미하는데만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새 기계를 사면 괜찮다고 말을 하는데 믿음이 가지를 않는다.


정미기계들이 발전을 거듭해서 속도도 빠르고 깨끗해졌는데,

가장 중요한 쌀눈이 살아있는 백미는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 할 것이다.

현미를 많이 섞어 먹되 찰벼로 현미를 뽑아 껄끄럽지 않게 하는 것이

기계를 바꾸지 않고 완전미를 먹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다.


스피커가 좋으니 유투브의 음악도 부드럽고 웅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