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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제초제와 풀 중에서_131110, 일

오늘도 느지막하게 움직인다. 커피 믹스까지 다 타서 먹고 대금도 잠깐 불어서 상태 유지시키고 9시가 다 되어 정미기가 있는 하우스로 간다. 총 300kg 중 270kg이 오늘 해야 할 찰벼 정미. 바람은 제법 불었으나 해가 화끈하게 떠 있으니 일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비온 뒤의 맑은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무엇이 부끄러운지 눈을 뜨지 못하겠더라. 오늘은 더 여유있게 해 보자. 15kg 벼를 정미해서 깜부기와 뉘를 골라내는 작업까지 끝내고 다음 벼로 옮겨가는 형태로 일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이니 서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깨끗하고 정돈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2년 동안 농원에서의 삶은 깨끗함과 정돈된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잔듸밭 위에 낙엽이 굴러다니는 것을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기 위해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한 논바닥을 만들기 위해 백일 동안의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탈농할 뻔 했다. 그런 고통 뒤에도 결국 논바닥은 풀들에게 점령되었다. 어쩔 수 없이 벼 이삭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무일은 풀에게 졌지만, 벼는 이삭을 잘 맺어주었음을 뒤늦게 보고 알았다. 풀들에게 이기려는 마음이 더 강했더라면 제초제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정 깨끗한 것은 제초제를 쓰는 일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가기 쉬운 어리석은 도전을 했던 것이다.


정미된 현미가 떨어지기는 하는데, 깜부기와 뉘가 잔뜩 섞여서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야 했다. 5초에 하나씩 골라내도 1분에 12개 한 시간에 720개를 골라 낼 수 있다. 그런데, 깜부기와 뉘는 수도 없이 떨어진다. 이것 또한 무용한 도전이다. 깨끗한 쌀을 원한다면 정미소에 가서 생명이 가득한 쌀들을 배출구로 날려 보내야 한다. 한 번 더 몸살나게 깜부기 먹은 쌀을 골라내더라도 그 푸르뎅뎅한 더러움을 감내함으로써 더욱 건강한 쌀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흘린 땀방울을 고스란히 몸 안으로 순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


꼭 깨끗이 하겠다는 도전정신 없이 1시간에 천 개의 뉘와 깜부기를 골라 내면서 정미소에서는 30분이면 끝낼 일을 5시간 반에 걸쳐서 해냈다. 오후 2시 반이 되어서야 일을 끝내고, 마치 막노동자처럼 유리컵에 소주 반 병을 따라서 반주로 들이켰다. 알딸딸하니 글쓰기가 좋고, 김영동의 음악소리도 더 아름답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