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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가을 밤이슬은 맞혀도 된다_131022, 화

서둘러 출근을 했어도 아침의 고속도로는 잘 움직이지를 않는다.

정체의 시간이 아까워서 시원한 그늘에서 책을 한 시간 가량 읽다가 출발했더니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무일농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 저녁에 느닷없이 이장님의 기계가 큰 논으로 출동하여 벼를 베었다고 한다.

부랴부랴 천막을 깔고 벼를 받아놓으셨다.

세 사람이 달려들어 넓다랗게 천막을 펴고 벼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 눈에 보아도 작년에 비해 수량이 많이 줄어 보인 느낌이었는데,

막상 펼쳐놓고 보니 아주 적어 보이지도 않았다.


올해는 새로운 방식으로 벼를 말려보기로 했다.

비가 오지 않는 한 벼를 펼쳐놓은 채 밤이슬을 맞히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은 아침에 펼쳤다가 저녁에 모아서 비닐을 덮는 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침저녁으로 벼를 모았다 펼쳤다 하는 일이 큰 일이 되어 버렸다.

힘들었다. 


수천께서 들깨가 말라가는 것을 보시면서

벼도 밤이슬을 맞혀도 말리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같다는 제안을 내놓으셨다.

정농께서는 은근히 걱정을 내비치시면서도 일거리가 줄어드니 찬성을 하셨고,

일을 줄이는 것이 삶의 목표인 무일은 무조건 찬성을 표시했다.


어제의 걱정과 달리 아침 이슬은 9시가 지나자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벼들을 쥐어 보아도 이슬 때문에 특별히 습해지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벼들을 손댈 일이 없으니 다시 일손이 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40% 정도 남겨둔 고구마밭으로 달려가서 정농께서는 예취기로

무일은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고구마 캐기에 들어갔다.


무일이 맡은 고랑은 밤고구마라 아주 깊이 박힌 것들을 제외하고는 쉽게 캘 수가 있었는데, 

정농께서 맡으신 고랑은 호박고구마라 캐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깊이도 깊고 형태도 불규칙하게 자라서 조금만 호미를 잘못대어도 흠집이 생겼다.


내년부터는 밤고구만 심도록 하지요. 

농약과 비료와 제초제 뿌리지 않고 지을 수 있는 작물이라 기쁘게 짓고 있지만, 

캘 때 이렇게 손실이 나고 힘들면 재미가 적어지지요.

아, 서울서 먹는 사람들이 호박고구마가 맛있다고 하니 힘들어도 어쩌겠어.

입맛이 단맛에 너무 길들여져서 그래요.

우리 농사는 그런 입맛까지 고려해서 지을 필요는 없지요.

이런 의논을 했지만 내년 봄이면 또 꽤 많은 호박고구마를 심어야 할지도 모른다.


고구마밭에서 오전 일이 한창 진행되는 시기에 수천께서는 달랑무를 다듬고 계셨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시더니 제법 많은 양이 되었나 보다.

고구마와 함께 달랑무도 여기저기 보내시고 싶으신지 부지런히 포장을 하신다.

여섯 개의 상자를 만들어 택배회사에 가져 갔더니 한 개당 6천원이라고 한다.


농사야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것을 나눌 수 없지만 대략 열 가구 정도가 나눠먹을 수 있다.

가구당 네 명만 잡으면 40명 정도가 한 계절 고구마와 김치를 즐길 수 있다.

나눠주고 나시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두부도 한 모 사고, 수천께서 좋아하시는 빵도 한 봉지 가득 사 가지고 돌아와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