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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_131009, 수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아직도 콩잎도 들깨잎도 푸른기가 많아 수확을 늦추고 있다.

잘 자라고 있는 배추밭을 가 보았다.

벌레나 몇 마리 잡아 보자는 생각이었다.


참으로 놀랍다.

약 300개의 배추 중에 대부분이 벌레를 먹고 있었고,

그 중에 여섯 통은 완전히 벌집처럼 뻥뻥뻥 구멍이 뚫렸다.

너무 기가 막히고 놀라서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 배추들도 농약 없이는 도저히 키울 수 없다고 하셔서

벌써 두 번이나 농약을 쳤었는데 이런 상황이다.


쓰린 속이지만 수천이라도 모르시게 하려고

아무런 내색도 안하고 집으로 돌아가 하우스를 정리했다.

이런 저런 물건들을 치우면서도 머리 속은 내내 배추 생각이다.


한 번 농약을 주기 시작하니 두 번도 칠 수 있게 되었고,

오늘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세번째로 약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배추 모종을 심고 그 위를 흰색 그물을 치는 방법이다.

그러면 나방과 나비가 배추밭에 앉지를 못해서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늦여름에 열무를 심어서 흰그물을 치고 길러 보았더니 벌레가 먹지 않았었다.

농약을 쓰느니 돈이 더 들고 일손이 더 많이 들어가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짓는 방법이 이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두 평 남짓 밭을 골라 양파를 심어 보기로 했다.

1년 내내 없어서는 안되는 채소가 양파인데,

우리 밭에서는 제대로 된 양파를 수확해 보지 못했다.

퇴비 한 포 뿌리고 쇠스랑으로 땅을 뒤집었다.

비온 뒤라 땅이 부드러워 일하기는 쉬웠다.


앞마당의 토마토밭도 정리했다.

여름 내내 방울토마토는 잘 먹었는데,

찰 토마토는 몇 개 먹지를 못했다.

이곳도 퇴비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짐승을 기르지 않고, 재래식 화장실도 없으며,

퇴비를 만드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도 싫어서 퇴비가 없다.

농협에서 공급되는 축분퇴비나 유기농 비료를 쓰기는 하지만

최소량을 쓰면서 땅심이 살아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여전히 작물들은 자라지 못한다.

게다가 풀들이 워낙 성하다 보니 더욱 열매맺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듬성듬성 심어놓은 감나무와 매화나무가 얼어죽지 않고 잘만 커 준다면

마당이 더 예뻐질텐데, 묘목만 사다 심으면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만다.

최근 5년 동안 겨울 추위가 너무 매서웠다.


풀 숲에서 숨도 못 쉬고 있던 나팔꽃들이

풀들이 숨이 죽으니 반짝반짝 빛나며 꽃을 피워낸다.

살아 숨쉬어 주는 것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