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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쉬운 농사 공짜 농사는 없다_131023, 수

오늘도 이슬은 잘 말라서 벼들이 잘 마른다.

이 놀라운 자연의 섭리를 깨치신 수천의 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오전 일은 어제 캐낸 고구마밭을 비롯해서 윗밭의 비닐과 부직포를 걷어내는 일.

내년 농사 때까지 올해 씌운 비닐을 그대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

그래야 일도 줄고, 비용도 줄고, 환경에도 도움이 될텐데 말이다.


수천께서는 그리하면 좋겠으나 퇴비가 부족해서 내년 농사가 걱정된다 하시며

무조건 걷어버리라 하신다. 밭에 대한 지휘권한은 수천께 있고, 일단 의견은 내어보았으니

더 이상 말하면 목소리만 높아질 뿐이다.



풀이 나지 않게 덮어둔 부직포는 여름 내내 제역할을 충실이 했는데,

장마비에 쓸려내려온 흙에 망신창이가 되었다.

제법 비싼 재료이기 때문에 5년은 사용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로 보관해서 다시 쓰면 과연 5년을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무조건 쓰자.


비닐을 벗기려고 보니, 흙이 부드러워서 잘 벗겨지기는 하는데,

이랑 사이에 심었던 들깨를 베어내고 남은 그루터기에 걸려 일이 쉽지가 않다.

쪼그려 앉아서 일일이 그루터기를 제거해 가다보니 힘들고 더디다.

두 시간이면 끝낼 일을 세 시간 꼬박 열심히 쉬지 않고 해서 끝낼 수 있었다.


그루터기를 뽑으며 다시 한 번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다.

모든 일에는 더욱이 농사일에는 쉬운 것이 없고 공짜도 없다.

들깨를 더 심어서 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그만큼 새로운 일을 더 해야 하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밥 먹고 푹 쉬자고 했는데,

포천에 사시는 이모부 내외가 놀러 오셨다.

먼 길 나서서 오신 두 분과 함께 막걸리잔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전원생활의 즐거움, 농사의 고단함, 한국 사회의 현실.

이모부는 철저하게 보수지만 정치에 대한 이야기만 조심하면

참 좋은 보수주의자다.


세금 잘 내고, 국방의 의무를 다 했으며, 공공질서를 지키는데 앞장서고,

주변 이웃들과 사랑을 나누는 분이니 보수다운 보수라 할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참다운 보수다.

그러고 보면 우리야말로 철저하게 보수다.

환경까지 아끼고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모부가 떠나시고 벼의 상태를 보니 방아를 찧어도 될 정도로 잘 말랐다.

포대에 담아서 트럭에 실어 두기로 했다.

드디어 올해 벼농사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네 시간에 걸쳐서 벼를 모두 포대에 담았다.

30kg의 포대가 전부 40개가 나왔다.

작년에 45개가 나왔으니 올해는 10%가 덜 나온 것이다.


오리도 넣지 않고 순전히 기는농법으로 이룬 성과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다는 자연농법을 시험하느라고 20평 정도의 논을 망친데다가

논 매는 기계를 구입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느라 모를 많이 죽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반면에 태풍도 없고 비도 많이 내려서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오늘도 아침저녁으로 일 많이 했다.

가을 수확기는 기계없이 맨몸으로 농사짓는 무일농원의 힘든 시기다.

다행이 기쁨의 시기이기도 해서 체력단련 한다 생각하고 견디고 있다.


내일은 찰벼와 검정쌀을 베어 와서 말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