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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집짓는 이야기

신뢰는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_입주 -42_130314, 목

오늘 아침 철거인력을 보내겠다던 수염목수는 7시 반이 다 되었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문자를 보냈더니 같이 일하기로 한 최목수가 연락이 안되고

돌아가신 장인의 49재가 있어서 오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최목수에게 연락을 했더니 오늘 현장에 올 계획이란다.

다시 두 목수가 통화를 하고 나서 오후 1시에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문자가 왔다.

현장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데리고 일을 하러 오시라고 했더니

오늘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하신다.


먼저 도착한 최목수와 현장을 돌아보면서 일머리를 의논하였다.

밀린 임금을 받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무일도 실력 있는 목수와 일을 하게 되어서 좋다고 말씀 드렸다.


잠시 후에 도착한 수염목수와 다시 한 번 일머리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내일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합의하고 나자

수염목수는 다시 착수금 500만원을 입금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무일은 철거 공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야 착수금을 줄 수 있다고 거절했다.

이미 계약금 200만원을 3월 3일에 지불했는데,

철거 공사를 위한 준비금을 또 500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라고 말했다.

내일 인력과 장비가 들어와서 철거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오후에 착수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수염목수는 자신을 믿지 못하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지난 번에 재단을 통해 본인에 대한 조사를 한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데다가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달라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돌아서 버린다.


수염목수는 신뢰하지만 돈의 흐름은 신뢰할 수 없으므로

일을 추진하고 돈을 버시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해 보았으나

무일이 제때에 돈을 줄 수 있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착수금을 받기 전에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돌아서 버린다.


수염목수가 돌아가고 최목수는 매우 곤란해 했다.

밀린 임금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일부터라도 일을 할 것이라는 희망이 깨져 버렸기 때문이다.


수염목수는 내일이라도 일하러 들어올 것이니

마을 회관에서 함께 자면서 기다려 보자고 제안했다.

수염목수와 함께 하기로 한 이상 잘 협의되고 나서 불러주면

틀림없이 달려와서 일을 하겠다고 하신다.




두 분 목수를 보내고 오늘 하기로 한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위험한 부분을 제외하고 무일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은 것을 아신 정농께서도 함께 철거일에 참여하셨다.

단순한 일이라서 그런지 어려움 없이 일은 잘 진행되었다.

일을 하는 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광주 목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다음 주에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필요 인력 중의 한 명은 무일을 쓰시고

그만큼 인건비를 빼고 일을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동의하신다.

우리가 직접 철거를 진행하고 있으니 다음 중에 오셔서

상세한 일정과 견적을 뽑아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지붕 작업은 위험하니 주의해서 하라고 당부하신다.

일단 목수 한 분은 확보를 했다.


이어서 증평에 계신 최목수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수염목수와 일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수염목수가 생각을 바꿔 무일의 자금 집행 계획에 동의하기 전까지는

무일이 직접 최목수와 철거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최목수는 좋다고 하셨다.

다만, 수염목수에게 2, 3일 더 생각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무일은 마을회관을 빌려서 매일같이 전기료와 수도세, 가스비를 내고 있으므로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번 주도 벌써 5일을 그냥 날려버리고 비용만 늘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도 수염목수로부터 일을 하겠다는 의사 표현이 없으면

자체적으로 철거팀을 꾸려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단, 철거를 끝내고 나서 다시 한 번 수염목수를 설득하여

일을 하겠다고 하면 계약을 변경하여 집수리를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수염목수를 실력으로는 신뢰하지만 금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형제들이 7년 동안 꼬박꼬박 모은 돈을

소중하게 관리해서 손실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일의 책임이다.


이미 계약금을 200만원이나 지불한 상태에서 공사를 진척시키지 못한 것은

무일로서는 답답하고 두려운 일이다.

계약이행 보증보험이라도 있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라면 일의 진행 상황을 파악해서 공사비를 지불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라 생각한다.

수염목수가 섭섭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수염목수가 오늘 아침에 아무 조건없이

인부들과 함께 철거작업에 들어 왔다면

무일도 불안하지만 착수금을 지불했을 것이다.

합계 700만원이면 전체 공사금액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신뢰가 차곡차곡 쌓이면 이런 금액도 그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신뢰가 쌓이지 못한 상태라 그렇게 할 수 없다.

수염목수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자금 집행을 못하는 무일도 답답하다.

개인의 신뢰를 믿고 일을 진행하기에는 안전장치가 너무 없다.


보일러실의 두 벽을 모두 철거해 내고

작은 방의 내부에서 폐기물들을 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나니

해가 어둑어둑해진다.

천천히 천천히 하자.

그래도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시간이 흐르면 일도 진행된다.

인간의 눈은 게으르지만 손과 발은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