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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집짓는 이야기

계약을 해지하다_입주 -41_130315, 금

어차피 오늘은 정농과 일을 해야 한다.

정농의 다치신 손가락은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아주 잘 아물고 있단다. 천만 다행이다.

파상풍 예방 주사를 괜히 맞았나?

3만원인데 앞으로 5년 간은 파상풍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한다.

잘 된 일이다.


차를 마시며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모두 같이 땅콩을 까서 농사 준비를 하고,

심현께서는 하우스 내부를 다시 한 번 청소하시고,

정농께서는 보일러실의 남아있는 서쪽 벽을 철거하시고,

무일은 작은 방 내부에 남아있는 폐기물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장갑만 끼고 일을 했더니

손톱밑이 새카맣게 때가 끼었다.

손을 쳐다보기도 싫었고, 잿물 때문에 붓기까지 했다.


어제부터는 유리섬유와 같은 위험 물질이 많아서

고무장갑을 끼고 그 위에 반코팅 장갑을 끼었더니

손은 약간 답답하고 둔하지만

다칠 염려도 없고 손도 깨끗해져서

밥을 먹을 때 기분이 참 좋았다.


두 시간 정도 했더니 모든 일이 끝나서

정농과 함께 지붕으로 올라가 아스팔트 슁글을 걷어내기로 했다.

지붕을 올라가는 높은 사다리에서부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불편한 지붕 위에서 힘을 주어 일하다가 균형이라도 잃으면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같아 다리가 후들거린다.


슁글을 뜯어내면서 발생하는 조그만 알갱이들이 지붕 위를 덮으니 더 미끄럽다.

너무 무서워서, 안전한 지점에서만 두 시간 가량 작업하고 내려왔다.

아무래도 내일은 목수 한 분을 초청해서 같이 일하면서 요령을 배워야겠다.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붕을 타면서 일을 하니 스릴이 넘친다. 

놀이와 일의 통합이라고나 할까. 

떨어질까봐 반쯤 누워서 작업을 했는데, 

아래서 보면 매우 웃기는 자세였을 것이다.

그래도 겁이 나니 몸을 세우기가 힘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내 손으로 내가 살 집을 지어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비록 반토막이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돈 주고 사도 아깝지 않은 기쁨이다. 


돈은 벌지 못하면서 돈 쓰는 일만 생겨서 무지무지 아깝기는 하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철거를 하다보니 일머리도 잡히고,

집이 완성되는 모습도 희미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지붕 작업을 하고 있는데,

우체부가 와서 법원 등기문서를 주고 간다.

수염목수에게 지불할 공사비를 가압류한다는 내용이었다.

무려 1,500만원.

수염목수 큰일났구나.




수염목수는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돌아갔는데, 왠 채권?

어차피 자금집행과 관련해서 이견이 생겨서 더 이상은 계약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이쯤에서 계약을 해지하고 정농과 함께 집짓기를 끝내기로 했다.

온 가족을 불러서 도움을 받고 배워가면서 멋있지는 않지만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수염목수에게 전화했더니 계약을 해지하는데 동의한다.

빚을 갚으려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테니,

언제든지 와서 일하라고 했다. 

그럴 생각은 없다고 한다. 


계약해지에는 합의했지만,

계약금은 어떻게 돌려받아야 할까?

일단 계좌번호를 보내줬는데, 언제 보낸다는 말이 없다.

아무래도 계약금 반환 소송을 나도 해야 할 모양이다.


수염목수에게 계약 해지와 함께 

철거공사도 무일이 직접 목수를 불러 시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서울의 동생도 내려 오라고 하고, 

목수 두 사람을 불러서 내일 중으로 철거를 마무리해 보자.

이장님은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해 달라고 미리부터 부탁을 해 두었다.

저녁 6시까지 오늘 철거한 폐기물들을 야적장으로 옮겨놓고 나니 온 몸이 뻐근하다.


내일 목수들이 오니 점심과 저녁거리를 사러 장에도 다녀오고

목수들에게 줄 임금과 폐기물 차량에 지불할 비용도 찾아왔다.

카톡으로 가족들에게 현재까지 진행된 사항을 알려 주었다.

다들 걱정이 크다. 

그렇지만 잘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오늘도 잿더미 속에서 수확을 했다.

장갑 한 켤레, 후레쉬, 모기장, 머리빗, 침 한통.

그리고, 작은 방의 장판도 두 군데에 불자국이 있을 뿐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천막을 깔아 두었다.

10만원이 조금 넘을 정도로 재산이 늘었다.


일이 잘 풀리던 안 풀리던 할 일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