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된서리는 내리지 않았으나 별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여행 중 가장 촌구석으로 온 것 같은데. 어디로 가 버렸을까, 그 많은 별들이. 언덕 위든 뒷간 가는 길이든 언제나 볼 수 있었던 그 찬란한 은하수는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어제처럼 춥지는 않았지만 우주신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 개 한 마리가 계속 우리 앞을 안내해 준다.
어느 덧 세 번째 날이 밝았다. 아침을 먹고 다시 머리를 감고 짐을 싸서 호텔을 나갈 준비를 했다. 참 인터넷으로 짐작한 것과 실제의 차이는? 생각보다 넓었다. 식탁이 없어서 불편했다. 따뜻해서 좋았고, 샤워실이 제일 따뜻하고 뜨거운 물이 잘 나와서 행복했다. 식사는 특별하지 않았지만 3끼 아침식사로 먹기에는 충분했다. 스탭들에게는 큰 도움을 받지 못했으나 차분히 자기 할 일들을 잘 해 주니 불편함이 없었다. 야외 공간이 없어지는 겨울이라 식사 공간이 비좁아서 식사하며 수다 떨 시간이 부족했다. 벽이 계속 흙이 떨어져 내려 더 있다가는 건강을 헤치지 않을까 싶었고, 벽걸이에 옷을 걸 수 없었다. 침구는 구겨져 있었지만 깨끗했다. 와이파이는 거실에서만 가능했다. 커피와 쥬스가 모두 인스턴트여서 아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많아서 잘 조직하면 단체 할인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일째 똑같은 아침식사를 하는데도 여전히 빵은 맛이 있고 차이는 구수했다. 벌꿀과 우유, 뜨거운 물을 타서 만든 시리얼도 여전히 좋았다. 그리미는 삼일 만에 처음으로 많이 먹고 싶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빠져 나갔는지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짐을 빼야 하니 보온병에 뜨거운 차를 좀 받아가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한다. 전화를 빌려서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산 국제전화 카드로 수유리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도착한지 3일만이다. 반갑게 하실 말씀만 하시고 끊으신다.
식사를 마치고 어제 남은 밥에 고추장과 참깨를 뿌려서 비빈 다음 김으로 주먹밥을 만들었다. 오랜 경험으로 만들어내는 그리미의 주먹밥은 매우 맛있는 간식이다. 워낙 먼 거리를 걸어야 하고 식당들이 많지 않아 혹시 점심을 거르게 될 경우 비상식량으로 쓸 계획이다. 주먹밥까지 만들고 나서 마지막 짐을 쌌다. 원래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관광을 하고 나서 오토가르(otogar)로 갈 예정이었으나 옥상까지 50kg의 가방을 옮겨야 해서 메트로 사무실에 맡기는 것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천재아들이 가방 하나를 메고 예매한 버스표를 들고 사무실에 가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괴뢰메 야외박물관으로 걸어간다. 로즈밸리 걷기를 마치고 차를 얻어타고 내려오다 그리미가 자꾸 걸어가자고 한 곳이다. 사람도 많고 볼 것도 많다. 그 사이에 무일이 정산을 하고. 호텔비는 1박에 60유로(140리라)니까 420리라고 투어비는 300리라(18만원)이니 총 720리라(432,000원)이다. 달러로 계산하자고 했더니 환율을 열심히 계산해서 400달러를 달라고 한다. 잘 쉬었다. 잠시 후에 천재가 돌아왔는데, 짐을 맡아 주겠다고 한다. 울퉁불퉁한 보도를 따라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이렇게 짐을 끌고 다녀야 할까. 자동차가 그립기도 하다.
괴뢰메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큰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를 가면 된다. 약간 다리도 아프고 그럴 것이다. 오늘 새벽 산책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저 앞쪽의 근사한 호텔 옆으로 돌아 간다면 경치도 즐기면서 돈을 내지 않고도 괴뢰메 야외박물관을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벌써 이틀 동안 감탄에 감탄을 하며 새벽부터 밤까지 사암 기둥들을 보았더니 돈 내고 또 비슷한 곳을 구경한다는 것이 조금 아깝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를 좋아하는 가족이다.
오토가르를 지나 저녁 식사를 할 장소를 찾아두고 부지런히 걸었다. 벌써 다리가 힘들다. 그래도 된서리가 얼어붙은 나무들이 마치 벚꽃을 피운 듯 반짝반짝 아름다웠다. 이 황량한 겨울에 된서리는 얼음꽃이라는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 고맙기 그지없다. 얼마나 삭막했겠는가 저들이 없었다면.
멋지게 지어진 투어리스트 호텔 옆을 지나니 트랙킹 코스를 알려주는 간판이 나타난다. 놀랍게도 1번이고 괴뢰메 박물관 쪽을 화살표가 가르키고 있다. 야, 이거 대단한 발견인데, 여기가 시작 지점인 모양이야. 좋았어. 가족들 모두 신이 났다. 언덕 중간에 오랜된 동굴 교회도 나오고 매표소도 나왔다. 너무 이른 시간인지(9시 30분?) 매표소는 닫혀 있었다. 번호를 따라 쭉 이동했다. 마음이 편안했다. 첫 날 로즈밸리에서 시작점을 못 찾고 마지막 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놓친 것이 생각이 나서 좋은 비교가 되었다. 이런 날도 다 있구나.
그나저나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밭둑에 자라고 있는 나무에 사람을 옷을 입혀놓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앞과 뒤 어디를 바라보나 장관이다. 중국의 석림, 베트남의 하롱베이,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 그리고 이곳 카파도키야. 화산이 그려놓은 밑그림을 비와 바람이 완성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예술가들이 수백만 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정성껏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고맙게 즐길 뿐이다.
즐기고 고마워하면서 고원 평탄면에 이르자 화살표는 사라졌지만, 천천히 괴뢰메 박물관으로 진입하면 될 것이었다. 저 멀리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표소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고 뒤에 두고 온 그 모습들보다 월등히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손에 잡힐 듯 사람들의 모습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수백 미터만 가면 박물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길이 나올 것이다. 아, 이렇게 기분 좋은 날도 있구나. 남들은 차량의 매연을 마셔 가며 3리나 되는 길을 걸어야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당히 높은 산을 오르는 운동도 하고, 앞뒤로 아름다운 경관으로 눈을 호강시켰으며, 덤으로 잘 하면 박물관 무료 입장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꼭 그렇지 만은 아닌 것이 세상일이다. 로즈밸리와 으흐랄라계곡은 어디를 막을 수 없어서 사방이 그렇게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물관은 달랐다. 예술 작품들이 손에 가까이 잡힐 듯 다가서면 설수록 우리의 발길을 옆으로 옆으로 돌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계곡이었다. 새벽 산책길의 괴뢰메 마을 해넘이 장소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계곡이다. 저 밑에서부터 올라올 때는 당연히 상상하지 못했던 장벽이었다. 어떻게 할까 속으로 고민했다. 크게 우회를 해 볼까? 이제 한 시간 정도 걷기를 했으니 30분 정도 더 걷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몸에도 좋고 더 많은, 남들은 절대로 보지 않는(?) 그런 경치까지 덤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오늘 새벽 산책길에서도 어디에선지 불쑥 나타난 거대한 개 한 마리가 우리의 앞길을 안내해 주었다. 얼마나 얌전하지 오라는 손짓을 하지 않으면 그냥 1, 2m 앞에서 조용히 길을 안내할 뿐이었다. 다만, 발을 뻗어 안아 달라고 하면 앞발이 무일의 키를 넘겨 버리니 마음이 몹시 불안할 뿐이다. 그래도 그 개는 그저 평범하고 순박한 똥개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른 개였다.
박물관을 제일 가까이 볼 수 있는 그 언덕 위에서 박물관 쪽에 있었던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개소리에 답하여 우리 쪽 언덕에서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두 마리의 거대한 사냥개들이었다. 암수 한 쌍이었던 모양이다. 큰 소리로 짖어대며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1, 2초 동안은 그저 달리는 것으로 이해하려 했었다. 아니었다.
그 녀석은 정확하게 우리가 가려고 한 능선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컹컹 짖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리미가 당황했다. 어떻게 하냐고. 무일이 떨리는 소리로 답했다. 만약 이곳으로 달려오면 소리 지르거나 달아나지 말고 눈을 똑바로 뜨고 사냥개를 노려 보라고. 사실 우리가 걸어 온 언덕길 바로 옆은 온통 포도밭이었다. 지금은 겨울이라 뿌리만 남아 땅을 지키고 있었지만 틀림없는 포도밭이었고 저 녀석들은 틀림없이 이 밭을 지키는 사냥개 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마리는 멀리서 짖고 있고 한 마리만 달려 오고 있었다. 막대기라도 있는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없었다. 일단 두툼하게 껴입은 옷들을 생각하며 심호흡을 했다. 눈에 힘을 주고.
워낙 순식간에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 녀석은 맨 앞에 있는 무일을 향해 달려 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컸다. 암컷이었다. 새끼까지 이 근처에 있다면 더욱 낭패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길은 무일이 서 있는 곳보다 약간 높았는데, 무일을 향해 휘익 몸을 날려 달려 들었다.
다행이었다. 그 큰 덩치의 사냥개가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무일의 몸에 비벼대며 혓바닥으로는 무일의 얼굴을 핥았다.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사냥개의 앞발에 흙 범벅이 되고 있는 등산복은 이곳 터키에서 입으려고 선물 받았던 것을 아껴뒀다가 챙겨온 것이었다. 점점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긴장되었던 근육들이 풀렸다. 그리미는 기절 직전까지 갔다가 정신을 차렸지만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일을 비롯하고 천재아들과 우주신에게 웬만큼 반가움을 표시하고 나더니 이 녀석도 제 정신으로 어느 정도 돌아온 모양이다. 이제 네 발로 기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도저히 앞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저 앞에는 이 녀석 보다 더 큰 컹컹 짖어대는 수컷의 사냥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사 그 녀석이 정말 사람을 따르는 녀석일지라도 이 광막한 고원 위에서 오로지 우리 식구 넷만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어딘가 분명히 계곡을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처음 출발지점으로라도 되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무섭게 달려오던 녀석은 왠일인지 아침의 그 똥개 녀석처럼 차분하게 길 안내를 한다. 놀랍다. 이 녀석의 도움으로 우리는 계곡을 내려와 말 몇 마리가 한가하게 뛰어노는 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로소 살았다는 느낌이었다. 이 귀엽고 무서운 녀석과 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 녀석은 목장에서도 한 참을 걸어가야 하는 박물관 입구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백인 커플에게 가서 애정공세를 펼치더니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다. 그 녀석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그리미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여러 동굴교회들을 보고 야외벤치에서 주먹밥으로 간식을 먹을 때까지도. 결국 박물관을 등지고 건너편 계곡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배고픔을 느낄 수 있었다. 아참 그리고, 괴뢰메 박물관의 동굴교회의 모든 프레스코화는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 몇 개의 동굴 교회를 보고 사진을 찍지 않다가 한 동굴 교회에서는 사진이 안된다는 경고판이 보이지 않기에 허가된 것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진 찍다가 경고를 받았다. 절대로 안된단다.
괴뢰메 박물관의 관람을 끝내고 박물관 앞의 기념품 점에서는 아주 화질 좋은 엽서가 10장에 6리라였다. 집이나 친구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기 위해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화질은 좋은데 그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내려놓고 나왔다. 박물관 밖의 작은 기념품점에서는 놀랍게도 1.5리라에 무려 11장의 카드를 골라 가라고 한다. 물론 화질은 떨어졌다. 그렇지만 그림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고 가격 또한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주먹밥을 마저 먹으며 윌굽으로 가는 돌무쉬를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말로만 듣던 돌무쉬를 처음 타보는 것이다. 돈도 앞사람을 통해 휙휙 전달된다고 하는.
오랜만에 똥싼 바지 스타일도 만났다. 미안하다, 도촬이다.
보이저인지 보이지인지 저 벌룬의 파일럿은 놀라운 조종술을 가지고 있었다. 박물관 사이를 누비며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이런 조종능력을 가진 사람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잔뜩 타서 벌룬 꼭 타보라고 한다. 음, 우리는 흔들림 없이 타지 않았다.
돌무쉬는 우리의 마을버스와 같이 그냥 작은 버스다. 요금을 전달하는 체계와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관광객들이었기 때문이다. 버스는 천천히 덜커덩거리면서 갔지만 놀라운 광경을 선물로 주었다. 사진으로 보았지만 직접 보니 더욱 신기한 광경을. 젤베 계곡은 파샤바흐라는 세 개의 버섯 기둥(요정의 굴뚝, fairy’s chimney)의 기암이 있는 곳이다. 축구장만한 넓이의 면적에 어떻게 저런 돌조각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역시 자연과 세월과 비바람은 끈기 있고 훌륭한 예술가다.
파샤바흐에서 괴뢰메로 돌아오는 돌무쉬를 기다리고 있는데, 참새 한 마리가 기념품점 앞에서 놀고 있다. 마침 과자 조각을 씹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주신이 땅바닥에 작은 과자 조각 한 개를 던졌다. 그 녀석은 잠깐 경계하는 빛을 보이더니 후다닥 과자를 물고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순식간에 수 십 마리의 참새들이 반은 달아날 듯 반은 금방이라도 과자로 달려들 듯 우리를 둘러싸 버린다. 그러고 보니 참새들이 닭둘기들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다.
우치히사르는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버스를 알아보기 위해 서성거리는데, 천재가 왠 뚱뚱한 아저씨와 함께 온다. 이 아저씨 아주 힘차고도 친절하게 우치히사르 가는 방법을 설명해 주신다. 괴뢰메에서 4시에 출발하는 돌무쉬를 타고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며 인당 2.5리라다.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간 챠우신이 정말 예쁜 곳이라고 꼭 가보라고 한다. 음, 이곳에 다시 올 명분이 생겼군. 꽃 피는 괴뢰메 마을과 아름다운 챠우신을 보아야 한다.
돌무쉬에서 내려 한참을 오른다. 벌써 사흘째 하루 다섯 시간 가까이 걷고 있는 다리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지나가던 조그만 꼬마들에게 손짓하자. 헬로하며 인사한다. 참 순박하다. 그리미가 불러서 사탕을 하나씩 쥐어주니 너무 좋아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순박하고 예쁘게 생겼나. 성채를 입장하지 않고 그 주변에 펼쳐진 피죤밸리와 괴뢰메, 에르시에스 산(3,916m)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드디어 삐끼 한 분이 붙으셨다. 초라한 차림의 이 친구는 영어를 매우 잘 한다. 카파도키야가 매우 nice 하다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이리 저리 설명을 해 주신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매표소를 지나가면서 한국 콩사탕 한 개를 드렸다.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감사의 표시로 드릴게 그것 밖에는 없었다. 공항 면세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자고 했더니 다들 반대 하는 바람에 어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분이 우리가 이곳을 떠나려고 하자 애플티나 한 잔 하자면서 가게로 이끈다. 고맙다고 하면서 그냥 돌무쉬를 타러 갔다.
아픈 다리를 끌고 돌무쉬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리미가 가게로 들어가 차시간을 물었다. 20분 정도 걸리니 가게 구경이나 하고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의 할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하신다. 우리는 모두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진과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자신은 돌을 가공하는 기술자로 할아버지대부터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특별히 10리라에 악마의 눈 열쇠고리 10개를 주겠다고 한다. 너무 고마웠다. 할아버지도 그도. 그런데 물건이 너무 허접해서 좋은 물건을 사주고 싶었다. 이것 저것을 고르고 있는데, 밖으로 나갔던 그리미가 빨리 나오란다. 한 젊은이가 괴뢰메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이다. 오래된 차로. 결국 친절한 그의 손아귀에서 가족들이 무일을 구해냈다. 참 어렵다. 친절과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이 고리를 이해하고 잘 끊어내는 것이.
이 친구의 오래된 차에서는 한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 엄청나게 좋은 노래인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운드 시스템은 매우 좋았다. 우치히사르에 살면서 괴뢰메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참 고맙다. 그런데 이번 히치 하이킹은 그리미의 작품인데, 이 친구가 설마 동양 아줌마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겠지. 그냥 아줌마의 힘이겠지?
괴뢰메에 머무는 동안 매일 에페스 맥주와 과자를 사 먹던 가게다. 싸냐고? 병맥주는 우리와 비슷하고 캔맥주는 싸다. 숙소가 가까워서 애용했다.
카파도키아 케밥 센터는 매우 한가했다. 그런데도 사장님인지 종업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분께서는 매우 무뚝뚝했다. 그래도 이것저것 권해서 머리가 아픈 것 보다는 낳았다. 일단 치킨 되네르 케밥을 두 개 주문하고 나서 추천 요리를 묻자 항아리 케밥을 제안한다. 역시 제일 비싼 요리를 추천하는구먼. 좋다. 쇠고기와 닭고기로 주문했다. 쇠고기가 좀 더 비싸다.
음식은 모두 훌륭했다. 쇠고기 항아리 케밥이 약간 거북한 냄새가 나는 듯 했드나 뜨거웠고 매콤해서 좋았다. 언제나처럼 함께 나온 빵도 맛이 있었다. 이 땅에서는 빵에다 조미료를 치나 왜 이렇게 빵맛이 좋은지 모르겠다. 아주 담백하다.
옆 테이블의 젊은 관광객 둘이 영수증을 보석함으로 받더니 계산과 함께 약간의 팁을 주는 모양이다. 그 주고받음이 재미있어서 그냥 나가면서 계산할까 하다가 영수증을 요청했다. 역시 보석함에 담아서 가져 온다. 51유로여서 55유로를 담아 보석함에 전달했다. 아이들과 그리미의 말로는 우리가 들어 온 이후로 처음으로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으음, 형제의 나라 친구에게 너무 심한 해석이 아닌가?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케밥 센터에 앉아 있었던 그리미와 아이들이 커피도키아(coffeedocia)에 들어가면서 편안해졌다. 핫쵸코도 시키고 시원한 오렌지 쥬스도 시켰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공부도 하고 인터넷도 하면서 쉬기로 했다. 오렌지를 쭈욱 짜서 만들어 준 생오렌지 쥬스가 아닌 것만을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안탈리아행 메트로 21시 30분 버스는 완행이었다. 좌석은 좁고 불편해서 잠들기는 쉽지 않았지만 워낙 피곤한 하루였고 친절한 버스 안내원의 마음 씀씀이 때문에 몇 시간은 쉴 수 있었다. 내일 눈을 뜨면 지중해의 따뜻한 바다가 우리를 맞이해 줄 것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별빛은 오늘도 볼 수 없다. 눈송이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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