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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터키-그리스-두바이] 으흐랄라계곡, 의젓한 고양이의 배웅을 받으며_130103, 수

 

어제 밤 추위를 견디며 테라스로 올라갔으나 온 세상이 하얗게 서리로 덮여서 별은커녕 달도 보이지 않았다. 
6시 반에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해와 벌룬이 뜨는 장면을 보러 선셋 포인트로 올라갔다. 길이며 나무, 집, 모든 세상이 하얗게 서리꽃이 폈다. 산책로를 걸으며 보이는 풍경 역시 글이나 사진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매우 가파른 벼랑 중간에 걸린, 폭 50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산책로가 이렇게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은 괴뢰메 마을의 소박한 아름다움 때문인 모양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 기온은 낮아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데도 머리끝에는 어느덧 서리꽃이 피었다.

마을의 일부는 폐허가 되어 있었고, 숙박시설을 차리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한 줌의 흙이라도 마련해서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새벽길 학교로 가는 아이는 너무 수줍어서 눈도 들지 못하고 지나간다. 호주머니를 뒤졌으나 콩사탕이 없다. 손이라도 잡아줄 것을 그냥 보낸 것이 자꾸 생각난다.

 

괴뢰메 마을의 자미는 신발을 벗었어도 바닥에 두툼하게 깔린 카펫 때문에 차가움을 느낄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모든 자미의 바닥이 그랬는데, 첫 자미다 보니 이곳 터키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카펫의 두께는 정말 두꺼웠다. 아마도 내륙지방의 추위 때문이었으리라. 

 

교회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이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칼리그라피로만 장식된 교회는 참 소박하다. 그러므로 이슬람은 소박하다.







아침을 먹었다. 어제와 똑같은 메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차이 한 잔을 더 마셨고, 커피와 차이에 설탕을 듬뿍 넣어 충분한 열량을 섭취했다. 오늘도 좁은 테라스의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린투어(1인당 75리라. 60리라로 알고 예산을 짰는데 90리라를 불렀고, 협상을 거듭했어도 75리라에서 멈췄다. 여행사에서 직접 협상을 했으면 더 낮출 수 있었을까?)를 신청하고 내복을 입었다. 아무래도 오늘 날씨는 어제보다 춥다.


투어를 떠나는 우리들을 고양이가 의젓하게 배웅한다. 투어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린다. 겨울이라 신청자가 별로 없어서 여기저기 호텔에서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가이드가 아들 둘이 있는 무일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엄지를 치켜 세운다. 한국에서는 별로 그렇지 않고, 딸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아들은 군인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두려워하게 하며, 대를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자식이라고 한다. 게다가 딸들은 결혼을 하면 남의 집 식구가 되니 가족의 주요 구성원이 아니라고 한다. 어쩜 그렇게 한국과 똑같은지. 요즘 한국의 아들들은 기대에 못미친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영어가 짧아서. 
바로 그 때 천재가 치고 들어왔다. ‘나는 아들이 더 좋아.’ 가이드가 끄덕거린다. 
일본 오사까에서 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교토의 옛모습과 오사까의 타꼬야끼,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쯔루하시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독일, 불가리아,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터키까지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린투어를 떠났다. 첫 번째 포인트는 피죤 밸리(비둘기계곡)의 파노라마 전경을 보는 곳인데, 어제밤부터 새벽까지 내린 된서리와 짙은 안개 때문에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카파도키아가 화산활동에 의해서 생겨났고, ‘카파투큐?(아름다운 말 / 아침 산책 중에 이런 간판의 레스토랑을 보았는데, 카파도키아의 오타인 줄 알았다. 모르면서도 고집이 세진다.)’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설명을 들었다. 
멋진 장관을 보기 위해서 마호멧에게라도 기도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가이드에게 슬쩍 물었다. 기도는 신에게 드릴 뿐 마호멧에게는 드리지 않으며, 그는 단순히 선지자로서 메신저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한다. 맞다, 그렇지. 그래도 기도는 드려도 됩니다. 한민족은 조상들에게도 기도를 드리며, 로마인들은 사람조차 신처럼 숭배했어요. 중국도 제갈량과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얼마나 많은데. 기도를 드리는 대상은 꼭 신일 필요는 없어요. 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역시 영어가 짧아서.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데린쿠유 지하도시. 400개 이상 되는 굉장히 많은 지하도시가 건설되어있지만 주민들이 아직도 사용하거나 규모가 작기도 해서 개발이 되지 않고 있고, 약 9군데 정도가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총 8개층의 65미터 깊이로 건설된 지하도시는, 이동통로는 작게 내부의 공간은 비교적 넓게 건설되어 있어서 적으로부터 거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라고 한다. 다만, 아무리 공기순환시스템이 좋아도 자연순환시스템이기 때문에 오래 머물면 산소부족으로 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만 생활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기원전 히타이트 제국 시절부터 2개 층의 공간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그 중간에 기독교인들도 이용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이슬람의 폭력성과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으로만 기억되니 걱정이다. 

 

천재의 통역은 세세하고도 훌륭했다. 결국 컴퓨터 가방을 무일이 메기로 했다. 짐이라도 메야지.


세 번째로는 으흐랄라 계곡 트랙킹이다. 마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거대하고 단단한 계곡처럼 보이는데, 기독교도들이 명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들을 보면 카파도키아의 다른 지역과 같은 부드러운 돌인 모양이다. 
사람들 속에서 신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위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서 신의 소리를 듣는다. 많은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약 4km의 거리를 거대한 두 개의 암벽병풍이 작고 깨끗한 계곡물과 함께 계속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부드러운 흙을 밟으며 이런 곳을 산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한겨울이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이렇게 자연 상태로는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놀랍다.

네 번째로 점심식사.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메우고 있었다. 스프와 샐러드, 메인디쉬와 오렌지로 구성된 코스 음식이다. 우리는 각각 미트볼, 치킨, 비프, 피쉬를 주문했다. 생선요리가 걱정되었는데, 막상 구워져 나온 생선은 냄새도 나지 않고 가시도 잘 골라져서 먹기에 좋았다. 성공이다. 골고루 나눠 먹으며 네 배의 만족감을 느꼈다. 무료로 제공되는 에크맥(빵)은 잘 발효된 밀가루를 화덕에 직접 구워서 갖다 주는 것인데 무한 리필이다. 따뜻했으면 훨씬 더 맛이 있었을 정도로 담백하다. 샐러드와 에크맥 만으로도 충분히 식사가 될 것이다.


다섯 번째로 카멜리 대성당. 스타워즈의 배경 화면을 촬영했던 장소. 이슬람의 나라이므로 초기 기독교나 비잔틴의 기독교 문명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보이지 않았던 때문인지 카테드랄의 보존 상태는 좋지 못했다. 천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지형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거대한 아름다움도 있다.

 


여섯 번째로 다시 피죤 계곡. 아침에 보지 못한 파노라믹한 풍경을 감상하는 곳. 해가 거의 지고 있어서 사진으로 담기가 어려웠다. 우리 가족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가이드의 제안에 ‘사으 올룬’.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짧고 길고 길고 짧고’하며 유쾌하게 포즈를 취해 준다. 멀리 위치히사르의 모습이 아름답다.  날이 저무니 인공조명으로 빛나는 우치히사르의 최전방 방어선이 더 빛난다.


일곱 번째로 돌을 가공하는 공장. 모든 투어와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를 하는 곳. 

안내하는 아가씨가 돌을 가공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문제를 낸다. ‘카파도키아’는 무슨 뜻인가? 허 참. ‘beautiful horse’요. 축하해요. 선물 드립니다. 이틀 동안 시험공부를 한 보람이 있었다. 

 

상점의 사람들은 장사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더 좋아한다. 애플티를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무일은 술탄 슐레이만의 블루 모스크와 톱카프 궁전에 대해, 천재는 또 다른 사람과 한국의 싸이와 2NE1에 대해 이야기 한다. 

 

투어가 끝나고 바라보는 우치히사르의 야경은 곱기도 하다. 두고 온 삼각대가 간절한 순간이다.





괴뢰메 오토갈(otogar)에서 내려 안탈리아행 버스표를 알아 보았더니 Metro와 Süha가 있었다. 다른 차들도 많았으나 두 군데를 비교해 보았더니 메트로는 9시 반 출발해서 9시간 걸리고 직원이 불친절 했다. 쉬하는 친절하신 무스타파 아저씨가 한국인이라 50리라로 5리라 할인해 주며 저녁 10시에 출발해서 9시간 걸리며 와이파이도 되는 완전 신형 버스라고 자랑한다. 그래서 12,000원을 절약하기 위해 메트로의 버스표를 구매했다.
가는 길에 주점에 들러 에페스 맥주와 물, 과자, 소시지를 샀다. 저녁 준비는 어제와 같이 그리미는 찌개를 끓이고 무일이 밥을 하기로 했다. 밥은 충분히 해서 남을 경우 내일 돌아다닐 때 간식으로 먹을 김밥을 싸기로 했다. 총 2kg의 쌀로 우리 가족 4명의 3끼 식사를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리미의 찌개는 순두부 양념과 고추참치, 호박을 넣어 함께 끓인다. 반찬이 참 거하고 건강하다.


저녁을 먹으며 그리미가 계속 불만을 표시한다. 투어 동안 내내 마음 졸였던 것이 표출되는 모양이다. 무일과 우주신이 계속 사진을 찍으며 느지막하게 팀을 쫓아다니는 것이 그리미의 눈에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놀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까지 피해를 주었을까? 너무 많은 배려로 인해 오히려 가족인 우리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달라고 항변했다. 그 말에 더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흐음. 역시 여행은 힘들어. 짜증 유발자는 우주신이 아니라 다 큰 무일이란다.

 

저녁을 먹고 순번에 의해 우주신이 설거지를 했다. 천재는 처음으로 면도기를 사용해서 면도를 해 보겠다고 한다. 약 5분간에 걸쳐서 면도 강의를 해 주었더니 무난하게 면도를 끝냈다.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으나 면도는 깔끔하게 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술 향상이 좀 더 필요하군. 

 

오늘 저녁의 된서리로 내일도 역시 벌룬투어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 5만원 정도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텐데. 어쨌든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더 고민할 것은 없어졌다.

 

하루 한 번씩 사고를 만들어 달라는 처제들의 요구에 잘 부응하고 있다. 현재 시각 9시 11분 모두 잠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들어 갈 준비를 해야 할 우주신까지도 수학책을 팽개치고. 다시 별을 보러 나갈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