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1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도 에미레이트 항공이다. 좌석이 텅텅 비어서 이렇게 계속 운항하면 적자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장사는 잘 되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잘 살 수 있다.
양고기와 닭고기를 쌀과 함께 비벼주는 음식이 기내식으로 나왔다. 인터라켄의 중국집에서 먹었던 민트향이 강하게 배어있던 중국음식과 비슷하다. 양고기는 맛있게 먹었는데, 닭고기는 향신료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버릴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나서 술안주로 먹어 보았다. 오, 향신료 맛이 사라지면서 먹을 만했다. 역시 술맛이 가장 강하다.
‘도둑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열심히 만든 모습이 보였다. 두 번 보고 싶을 정도의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자동차 키를 잊어버린 것같다. 어제 비행기 탈 때 분명히 바지 호주머니에 있었었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야 바지 주머니가 개운한 것을 발견했다. 어제 밤 두바이행 비행기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자다가 빠진 모양이다. 바지 주머니가 깊지 않다. 이스탄불에 내려서 항공사에 문의를 해야겠다. 자동차 열쇠야 발견만 된다면 누가 가져가지는 않을 것이다.
두바이 시간으로 11시에 출발해서 역시 두바이 시간으로 4시에 도착했으니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이는 거리인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부천 – 인천 – 두바이에 이은 네 번째 도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밖을 내다보니 가벼운 옷차림이라 겨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원에는 장미꽃이 피어 있다. 비가 오지 않으니 날은 좀 흐리지만 춥지 않아서 여행하기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시티은행 ATM기를 찾았다. 처남댁의 시티은행 카드를 빌려 왔는데, 비밀번호를 묻지 않았다. 출발 전에 돈도 입금을 했어야 했는데, 연말 송년회 하면서 노느라 생각만 하고 처리하지 못했다. 처남한테 문자를 날렸더니 입금을 하고 비밀번호를 보내준다.
ATM에 가서 1,500리라를 인출하려고 했더니 소수 둘째자리부터 입력이 된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소수를 입력하라고? 할 수 없이 제시된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인 480리라를 먼저 인출해 보았다. 잘 되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소수점 이하 두 자리로 인정하고 과감하게 1,000리라를 입력했다. 맞았다. 아, 뭐 이런 것까지 고민을 해야 하나? 익숙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함이 후욱 밀려온다.
900달러를 가져 갔으니 리라로 환전해도 되었을텐데, 꼭 이런 수선을 떤다. 이렇게 하는 것이 환전하는데 가장 유리한 방법이라고 한다. 리라를 찾은 뒤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했다. 매점이 보이길래 국제전화 카드를 한 장 샀다. 15리라. 한 달 동안 충분히 쓸 수 있으리라.
터키 항공 카운터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네브세히르’를 간다고 하니 바로 티켓이 출력된다. 마지막 순간에 추가한 전기밥솥까지 짐 무게는 정확하게 58kg.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이 편리하기는 하다. 짐을 부치고 나서 눈앞에 '마도'라는 가게에서 '돈두르마' 아이스크림 레몬맛과 초코릿 맛을 샀다. 개당 2.5리라의 작은 아이스크림 콘. 쫀득쫀득한 것이 달달하면서도 차지 않아 겨울에 먹기 좋았다.
공항은 좁은 데 사람은 많으니 앉아 있을 자리가 없다. 게이트 배정은 안됐지만 들어가서 기다리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앞으로 또 3시간은 터미널에서 기다려야 한다. 참으로 긴 1월 1일이다. 어쨌든 좋다. 밥도 많이 먹고 잠도 잘 자고 도시도 많이 거치면서 오늘의 마지막 도시 카파도키야의 괴뢰메 마을로 간다.
자동차 열쇠를 찾았다. 그리미가 무일이 잠자며 흘린 열쇠를 주워서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고 한다. 열쇠와 돈을 찾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날이 춥지 않아서 기분은 좋다. 천재아들은 외국 여행을 왔는데, 외국에 온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무난히 흐르니 그런 것이다. 게다가 좋은 나라들을 여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기분이 아닐까?
네브세히르로 가는 터키항공의 간식은 초코무스와 토마토 치즈 샌드위치, 간단한 샐러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아주 가볍고 신선한 맛이었다. 졸려서 먹지 않겠다던 천재아들도 다 먹으며 흐뭇해했다. 체리 쥬스를 처음 먹어 보았는데 달지 않아 좋았다. 다만 무일이 알던 체리향과는 달랐다.
작은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갔더니 우리와 함께 가는 일행들로 그득하다. 나중에 보니 이쪽 저쪽의 펜션들을 전부 들려서 마지막으로 우리 펜션에 도착했다. 그 자리에서 기사에게 4명 68리라를 계산했다. 유로와 리라를 같은 지갑에 넣었다가 실수로 유로화를 꺼내 주었다. 기사분이 이상하다고 해서 확인했더니 유로였다. 고마운 분이다. 그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2.3배를 지불할 뻔했다.
다섯명이 잘 수 있는 우리 방은 반지하에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따뜻하게 난방을 해 놓아서 침낭이 필요 없었다. 여권 확인을 하고 투어에 대한 안내를 듣고 나니 11시가 넘었다. 예정했던 신년 만찬은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다들 눕자마자 잠이 든다. 꼭 31시간만에 침대에 몸을 누이는 것이다. 힘들게 움직였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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