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시간에 걸친 하루 일정을 끝내고 잠을 잤으니 시차고 뭐고 없는 모양이다. 7시가 넘으니 눈이 떠진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호텔의 옥상 테라스로 올라갔더니 제법 많은 벌룬들이 주변을 수놓고 있다. 생각보다 그리 춥지도 않고 화창한 날씨가 벌룬들을 더욱 상쾌하게 보여준다.
Kappadokya는 페르시아 사람들이 이곳의 말을 보고 ‘아름다운 말’이라고 부르면서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에르시에스(Erciyes Dagl / 해발 3,916m) 화산이 폭발하면서 약 20만㎢의 면적에 서로 다른 성질의 화산재 퇴적층을 형성시켰는데, 이 지층들이 오랜 동안의 빗물과 풍화작용을 거쳐 만들어진 지형이라고 한다.
아침을 먹으려고 작은 식당에 올라갔는데 온통 한국인들이다.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빵과 석류 쥬스와 커피, 치즈, 토마토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먹었다. 특별하지 않은 차림인데, 먹을만하다. 빵은 구수하고 개운해서 토마토와 치즈, 오이를 잔뜩 채워 먹었더니 깔끔하다. 꿀도 매우 진하고 향기로워서 시리얼을 먹을 때 넣어서 먹었더니 매우 달콤하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식사이겠지만 사흘은 먹을 수 있으리라. 따끈한 음식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오로지 커피다.
로즈밸리투어는 돈 내고 할 필요 없이 피죤밸리에서 시작하여 화이트밸리, 그리고 러브밸리까지 5시간에 걸쳐 지도와 안내판을 참고하여 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남들 다하니 우리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의욕을 갖고 로즈밸리 투어에 나섰다. 오토가르 앞의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어 슬슬 걸어갔다. 작지만 시장이 있기에 말린 과일(살구라는 그리미의 주장)도 사고 커다란 양배추 사진도 찍었다. 날씨 좋고 경치가 근사한 곳을 걷고 있자니 신이 난다. 양치는 아저씨에게도 괜히 인사를 건넨다.
작은 언덕을 오르자 눈앞에 펼쳐진 관경은 글이나 사진으로 전달하기 힘들다. 아름다웠다. 가능한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보고 또 본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또 슬슬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표지판이 잘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주 올레를 할 때와 같은 그런 표지판들은 보이지 않는다. 뭔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말을 타고 차우신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로즈밸리는 되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던 길을 되돌아 갈 생각을 하니 짜증이 밀려와서 막연히 핑크빛 바위들이 있는 계곡으로 무작정 발길을 돌렸다. 아무런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 들어간 계곡은 막혀있다. 돌아서 옆의 계곡으로 다시 들어갔다. 다행이도 화살표와 ROSE와 RED라는 글자가 바위에 쓰여져 있다. 이제 맞는 길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여유로워진다. 좀 더 신중한 태도로 나타나는 화살표를 반갑게 바라보며 기암들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카를로스라는 스페인 청년이 저 멀리서부터 우리와 비슷한 동선으로 따라오더니 교회에서 드디어 만났다. 어깨에 꽤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잘도 쫓아온다. 저 멀리에서는 마치 기도하는 사람처럼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서 매우 궁금했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우리는 오렌지, 석류, 자몽 쥬스를 시키고(4잔에 15리라 / 5리라 할인) 카를로스는 차이를 한 잔 마셨다. 가족들과 함께 이스탄불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가족들은 스페인의 마드리드로 돌아갔다고 한다. 본인은 그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전에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홀로 남았다고 한다.
카페의 주인은 ‘맛있어요’ ‘석류 주스 좋아요’ ‘감사합니다’ ‘한국사람 좋아해요’ '강남스타일' 하면서 싱글벙글 분위기를 띄워준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의 사장과 친구라면서 한국 사람들이 그 호텔을 좋아한다고 한다.
마침 카를로스의 전공이 항공우주공학이라고 한다. 우주신이 전공하고 싶다던 분야다. 대화를 좀 나눠보라고 했는데 우주신은 아무 것도 묻지를 않는다. 수줍어서 그러는지 입이 안 떨어지는지. 어쨌든, 카를로스의 말이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하고 졸업하더라도 스페인에서는 취업하지 말란다. 독일에 취업을 하게 되면 똑같은 종류의 회사에 똑같은 지위라도 급여를 두 배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슬프고 불공정한 일이지만 스페인의 기업 현황이 그렇다고 한다. 여행 틈틈이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8키로나 짊어지고 다닌단다.
지금은 투어의 마지막 지점의 정류소에서 일기를 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해지는 언덕을 찾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펄럭이는 빨간 깃발을 꽂고 있는 꼭대기가 포인트로 보이는데, 지나는 사람들 누구도 모른다고 한다. 현재 시각 2시 30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떤 경치를 보아도 아름답다. 동굴 교회에서 합류한 스페인 청년과 함께 다섯 명이 걷고 있다.
카를로스는 친구로부터 빌린 카이세리의 숙소로 가기 위해 차를 얻어 타고 떠났다. 터벅터벅 걷는데 발바닥이 아프고 멋진 경치가 사라져 버려 재미도 없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차 한 대를 세웠다. 아주 낡은 차량이었지만 거대한 우리 넷을 넉넉하게 태워주었다. ‘사으 올룬(감사합니다)’.
Dia와 시장에서 장을 보았다.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 호박 한 개와 오이를 사고 나서 고추 세 개를 집었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신다. 사으 올룬. 올리브도 한 삽에 3리라. 맛이 제법 괜찮다. 그리미와 천재가 좋아하니 실컷 먹고 가겠다.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사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 살라미와 요구르트, 아이란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주점에 들려 물과 술과 과자를 샀다. 1.5리터 한 병의 물이 1리라. 어제 아타튀르크 공항에서는 500미리 한 병에 2리라. 맛이 있다던 에페스 맥주 병과 캔을 각 두 병씩 샀다. 500cc에 4리라니까 오히려 우리나라 병맥주 보다 비싸다. 다만 캔맥주나 병맥주 모두 가격이 같다.
숙소에 돌아왔더니 오후 4시다. 짐만 내려놓고 다시 전망대로 오른다. 혹시나 멋진 석양을 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저곳에 한국 사람들이 참 많다. 어른이나 학생이나 꽃 좋고 날씨 좋을 때는 휴가를 내지 못하고, 찌는 듯한 여름과 얼어붙는 날씨의 겨울에만 휴가를 낼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한 상 거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전기밭솥을 가져오기 잘했다. 다들 잘 먹고 나더니 금방 침대에 누워 버린다.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공부를 하기로 했던 우주신도 좀 하는가 싶더니 금방 코고는 소리가 난다. 오랜만에 여섯 시간을 걸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0시가 되어 간다. 혹시 모르니까 밤하늘의 별을 보러 가보자.
'호기심천국 > 터키 그리이스 두바이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 괴뢰메 야외박물관_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_130104, 금 (0) | 2013.01.10 |
---|---|
[터키-그리스-두바이] 으흐랄라계곡, 의젓한 고양이의 배웅을 받으며_130103, 수 (0) | 2013.01.09 |
익숙하지 않으니 불편하다_130101, 화 (0) | 2013.01.06 |
불행은 일부 사람들의 일인 모양이다_130101, 화 (0) | 2013.01.05 |
떠나보내면서 떠난다, 출발이다_121231, 월 (0) | 2013.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