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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중국 운남성 여행

극적인 너무나도 극적인 하루_110116, 일

따리 상화호텔은 4성급이다.

물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나고, 침대시트에서는 담배 냄새가 난다.


 

계속되는 '속의 전쟁'으로 아침식사를 못하고 누워있다.

식사를 하고 올라 온 그리미는 맛있다고 난리다.

특히, 무일에게 좋은 쌀죽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짐을 꾸려 호텔 카운터에 맡기고,

기념사진도 찍고, 창산으로 향한다.

 

호텔 앞에서 근사한 차를 소유한 부부가

창산 케이블카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그런데,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다 보니 답답하다.

 

결국 택시를 잡았는데,

50위안을 부르는 아저씨에게 40위안으로 하자고 협상했다.

협상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협상이 끝나면,

금방 얼굴이 순박해지면서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정말로 반가워하고

우리가 아무리 알아 듣지 못한다고 해도

끝없이 설명을 해준다.


 

창산의 매표소에서 광저우에서 여행을 왔다는 두명의 여대생을 만났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표를 쉽게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의 계획과는 틀어져 버렸다.

계획은 창산의 봉우리를 도는 2시간 트래킹을 할 계획이었는데,

이 학생들의 통역에 의하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에서 확인해 본 결과,

아름다운 정상의 산책로가 참 예쁘게 닦여 있고,

반대편 입구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미가 너무나 안타까워 한다.



멀리 얼하이의 드넓은 호수를 보면서

산 정상을 구비구비 돌아 닦여진 산책로는 훌륭하다.

왕복 1시간의 산책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호젓한 산길을 이렇게 편안한 기분으로 산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국땅에서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안전하게 길을 개척해 놓았다.

게다가 곳곳에 소방용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어서

창산의 울창한 잣나무 숲을 지키려는 정부의 정성이 보인다.

 

명인림이라는 곳이 있어서 내려가 보았는데,

놀랍게도 한글과 중국어로 바둑 명인들의 이름이 쓰여진 비석이 있다.

조훈현, 이창호, 최철한이 오청원, 임해봉과 나란히....


 

원래 우리의 계획은 충분하게 관광을 하고

버스를 타고 리짱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기차가 편안하면서도 시간도 1시간 30분 정도로

절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차표가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돈을 주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현지 학생들의 판단이 옳을 것이라 생각하고,

학생들과 기차역에서 3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호텔로 학생들은 창산에서 더 놀겠다고 한다.

 

짐을 싸기 전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얼하이 호변으로 간다.

이번에는 다마스와 비슷한 차에서 기사아저씨가 호객 행위를 한다.

호텔보다 가까운 곳으로 가는데, 여전히 50위안을 부른다.

또 40위안으로 협상을 한다.

금방 받아들인다.

 

그런데, 차에 타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펴고 위치를 가르치니

그곳은 자기가 생각한 곳과 다르므로 50위안에 가야 한단다.

이번에는 내가 졌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담배를 꺼달라고 부탁하자

창너머로 휙 던져 버린다.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관광객을 대하는 기본 자세인 모양이다.

 

얼하이를 따라 작은 산책로가 꾸며져 있어서

그길을 따라 산책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시간 여유가 없어졌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여러 가지 야채를 쌓아놓고 맛이 있어 보이는 매운탕을 먹는 가족들을 보고

우리도 그것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천재아들은 이번 여행이야말로 오리지날 배낭여행이라고 한다.

일단 말도 통하지 않는 가운데,

현지인들의 신기한 눈길을 받으며,

현지인들의 음식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먹음직스러운 찌게와 야채탕이었는데,

막상 입에는 맞지 않아 쌀밥과 함께 어렵게 또 한끼를 떼운다.

 

들어올 때는 택시가 많았는데, 호텔로 돌아가려니 차가 없다.

열차시간을 맞추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지나가는 삼륜차를 세웠다.

잠시 망설이는듯 싶더니 태워준다. 7위안.

시속 20km 남짓으로 위태하게 우리 네식구를 태우고 호텔로 간다.

마음은 불안했지만 정말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재미가 있다.

무사히 호텔에 도착한 기념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10위안을 드렸다.

 

 

호텔에서 짐을 싸서 천천히 걸어 기차역으로 갔다.

4시 26분 기차가 있다.

학생들은 4시 15분이 다 되어서 천천히 왔다.

 

그런데, 표를 사고 나니 기차가 연착이 되어 6시 12분에야 도착한단다.

학생들과 커피숍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 기차역 1층에 있는 휴게소로 들어갔다.

 

 

1인당 5위안에 차와 마작판을 제공해 준다.

와, 학생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을까?

게다가 학생들에게 마작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미 루미큐브라는 보드게임을 통해

마작의 기본 규칙과 비슷한 규칙을 알고 있어서 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미가 첫승을 따내고 이어서 우주신,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니

우리를 가르쳐 준 학생들이 머쓱해 한다.

도박은 어차피 운인데 뭐.

 

그리미와 아이들, 학생들이 어울려 마작을 하는 동안

나는 잠깐 눈을 부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학생들에게 우리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서

노트북을 찾아 보았다.

 

없었다.



그리미는 어제 배낭에서 빼놓은 뒤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여행사에 전화해서 호텔에 확인을 요청했는데,

역시 없다고 한다.

 

보험도 들어 놓았으니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리미가 호텔에 가보자고 한다.

 

기차시간은 40분 남짓 남아있다.

호텔로 가는 빠른 걸음 속에서도 마음을 비우자고 다독였다.

 


 

호텔에는 그나마 영어가 되는 매니저가 있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물어보니 알아보겠다고 하며,

전화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없다고 한다.

 

그럴리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분명히 의자 위에 올려 놓고 나왔다고 하면서

CCTV를 보자고 하자 

매니저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청소를 담당했던 아가씨 두 명이 

책상 밑에서 노트북을 찾았다고 하면서 들고 나온다.

 

만세!!!!

 

고맙다고 돌아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손이 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심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중에 노트북을 켜 보니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였다.

누군가 열심히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생을 만나고, 열차를 타게 되고,

열차가 연착하여 마작을 배우고,

그 사이에 노트북을 잃어 버렸다 다시 찾는

극적인 너무나 극적인 하루였다.

 


 

 

열차에 오르니 사람들로 빼곡하다.

학생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찾아서 배치해 준다.

 

무일과 그리미는 3주째 사천성에서부터 여행을 하고 있는

중국인 가족과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잘 정리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참 재주가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2년 쯤 후에 한국에 오고 싶다고 하고,

언제가 여행하기에 제일 좋은 달이냐고 묻기에

4월말에서 5월말까지가 꽃도 피고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알려 주었다.

 

1시간 반 가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역시 기차 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버스로는 거의 4시간이 걸리고,

요금도 훨신 비싸다고 한다. 와우 --

 

샤이너 호텔은 리짱 역에서 50위안을 주고

합승을 해서 - 묻지도 않고 무조건 합승을 한다 - 도착했는데,

벨보이들이 문앞까지 나와서 환대를 해 준다.

 

안그래도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환대를 받고 나니 모두들 즐거워 한다.

 


 

 

내친김에 준비해 온 라면과 햇반을 먹기로 하고,

벨보이에게 부탁을 했더니

레스토랑에서 햇반을 따뜻하게 덮혀 준다.

그것을 덮히면서도 매우 신기해 한다.

아직 이곳에는 햇반이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햇반을 덮혀달라는 사람이 없었던지.

 

네 식구가 둘러 앉아 김, 멸치볶음, 고추장, 라면, 햇반을 먹으며

그래 바로 이맛이야, 즐거운 파티를 한다.

 

깨끗한 화장실에서 뜨끈한 목욕물로 몸을 녹이니

몸도 거의 낳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