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해도 8시는 되어야 몸이 일으켜진다. 부지런히 씻으려고 해도 뭉기적대다 보면 식당에 도착하는 시간은 언제나 9시 5분전. 여유있는 여행을 하자. 언제나 출발 전에는 약속한다. 막상 여행지에서 무일은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 비행기값이 아깝다던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둥 하면서.
어제와 똑같은 메뉴이니 똑같은 패턴으로 식사를 한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9시 15분. 우주신이 무일의 쌀국수를 원한다. 비장의 레시피. 국수 한 웅큼 작게, 간장 작은 한 스푼, 넓은 파 큰 한 스푼, 얇게 썬 파 큰 두 스푼, 소금 작은 반 스푼, 기름에 볶은 매운 고추 1/3 작은 스푼. 우주신에 이어 천재도 매료시킨다. 내일은 기필코 두 그릇의 국수를 먹겠다고 한다.
택시를 타려고 차도를 걸어 가는데, 한 20미터쯤 앞의 버스에 동부교통중심으로 간다는 표지가 보인다. 부리나케 뛰어 탔는데, 짐과 사람으로 가득. 우리는 그렇게 짐짝이 되어 한시간을 서서 터미널로 갔다. 그리미는 벌을 서듯 간 것이 분해서 몇 푼 아끼려고 버스를 탄 무일에게 화풀이를 한다. 사실 돈을 아끼려고도 했지만, 버스를 타는 것 자체가 여행이다. 우리에게 쏟아지는 저 무수한 호기심의 눈빛을 언제 받아볼 수 있겠는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친절과 관심을 표현하려는 저 우호에 찬 눈빛들이 무일은 좋다.
10시 반에 호텔을 나와서 11시 50분에 이량가는 버스를 타고(17위안 x 4 = 68위안) 1시 조금 못되어 이량에 도착하니 눈앞에 바로 쥬샹가는 버스가 있다. 기사가 이 차라고 하면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장장 40분 후에 출발을 한다. 이런 사발 로마 사기. 그리고는 거의 2분마다 정차를 하면서 무려 1시간 30분이 걸려서 매표소에 도착한다. 30분이 지나고서부터 내 입에서는 사발 로마 사기가 반복된다. 8위안씩 32위안에 35km를 이동했다. 이런 사발. 여기서 택시를 탈 걸 그랬나보다. 이럴 때는 단체여행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기사는 그 긴 동네들에 사는 사람들을 다 아는 것인지 일일이 아는 체를 한다. 차나 출발시키고 이야기 해도 될텐데. 심지어는 길에 기다리고 서 있던 청년에게 짐도 배달한다. 그러니 시간은 질척거리며 늘어진다. 그 와중에도 동네사람 하나가 차장 노릇까지 한다. 이 비수기에도 꽉 차 있는 버스안이 그저 흥겨운 모양이다.
왠만하면 사진 한장이라도 찍으련만 열이 오를데로 오른 무일은 눈빛만 날카로워진다. 동굴도 보고 다시 되돌아 와야 하는데, 버스라도 끊기는 날이면 호텔비를 이중으로 부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쿤밍에서 이량으로 향하는 동안 많은 시골동네를 지나간다. 12억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이 땅의 오지 운남성 쿤밍하고도 저 먼 외곽의 시골 구석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면 나란 사람은 그저 떠다니는 흙먼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누가 나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위로해 줄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같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 결국 작은 흙무더기에 올라앉은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오직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나의 가족과 친구들일뿐이다.
쥬샹동굴은 기대 이상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준다.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집중되어 있어서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적절한 조명, 다양한 변화, 물의 흐름, 폭포, 50미터 엘리베이터, 사람들, 엉성한 공연, 아름다운 조명 등등. 90위안의 한사람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게다가 입구에서는 물까지 나눠준다. 준비해 간 쌀과자, 핫브레이크, 치즈, 바나나 등으로 허기를 달래며 열심히 관광을 하고 등산을 한다. 마지막 코스는 30위안의 스키 리프트 코스. 밋밋하지만 90분을 걸어서 지친 다리를 쉬면서 쥬상의 경치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관광로도 잘 개척해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종류동굴의 모양이 정말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 동굴들도 훼손되지 않는 설계와 아름다운 조명이 잘 어우러진다면 이 정도의 볼거리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지칠만한 곳에서 2인 1조의 지겟군 아저씨들이 50원을 외친다. 아 저 환장할만한 언덕의 계단을 50원에 오르며 그들은 얼마나 기쁠까?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지게 위에 오르지 못한다. 살기 위해 그들은 고통을 달게 받는다.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바보같이 고통 속으로 자기 몸을 던진다.
다시 주차장으로 나오니 이량으로 가는 빵차가 사람을 모으고 있다. 우리 식구가 타니 만차. 인당 10위안이니 2위안이 더 비싼데, 일단 세우는 회수가 적어서 드라이브를 하며 경치를 즐기는 느낌이 나고, 시간도 20분이 단축이 된다.
중국 시골사람들의 단순하며 완완디한 모습을 즐기실 분들은 무조건 터미널의 8위안 버스를 타면 될 것이고, 경치를 즐기고 스피드를 즐길 사람은 터미널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쥬상가는 빵차를 타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다. 두 차량 모두 사람이 차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한 아가씨가 우리가 타자 목욕탕 의자로 내려 앉는다. 운전기사와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도 기사는 큰 소리를 친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다행이 십분쯤 가서 내린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안녕히 가라고 인사해 준다. 고마운 일이다. 이 빵차들은 관광객에게 무조건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완전히 가시방석이다. 3위안을 낸 사람과 10위안을 낸 사람을 차별하려고 그런 것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빵차를 타고 하마트면 하늘로 직행할 뻔 했다. 관광지여도 쿤밍시내에서 4시간 가량 떨어진 외지다. 마을 사람들의 주된 교통수단은 마차다. 게다가 왕복 2차선으로 좁은데다가 회전 구간도 많은 도로이다보니 마차를 피하려는 차들이 중앙선을 넘나든다. 위태한 가운데도 잘 가고 있는 우리의 빵차를 향해 중앙선을 넘은 트럭이 돌진해 온다. 비명소리가 절로 나는 가운데 정말 간발의 차이로 충돌을 피한다. 간 큰 기사도 한숨을 내쉰다. 겨우 목숨 건졌다.
다시 이량에 도착해서 10분만에 쿤밍 동부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정말 운이 좋았다. 나가는 버스와 달리 돌아오는 버스는 단 1시간만에 도착했다. 아침에 지긋지긋하게 타고 온 버스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좋은 관광이 마음을 한결 여유롭게 했고, 이곳이 종점이라는 것을 노린 선택이다. 갑자기 다들 택시비가 아까울 정도로 중국의 버스 시스템에 적응이 된 모양이다. 이번에는 두 개의 자리를 잡아 번갈아 가며 좌석을 점유하며 여유롭게 돌아온다.가는 버스에는 짐이 없어서 한결 여유롭다.
맥도날드에서 70위안어치 빅맥, 통닭, 감자튀김을 사고, 과일가게에서 청견과 오렌지, 한라봉을 사고, 슈퍼에서 칭다오 한 병을 사서 호텔로 입성. 마지막 남은 두 개의 햇반을 들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퇴근시간인지 모두들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있었는데, 제일 막내인 듯 어린 처녀가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물론 알아 듣지 못했다. 영업 끝났다고 이야기 했을 수도 있다. 이번에는 햇반을 보여주며 순 우리말로 전자레인지로 덮혀 달라고 말한다. 금방 알아들었다는 듯이 아랫 찬장을 연다. 그러더니 젓가락 두 쌍을 준다. 다시 순우리말로 설명을 하면서 네모난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넣었다 빼었다 하는 몸언어를 보여주었다. 금방 또 알아들었다면서 어디로 한참을 데리고 간다. 다행이 그곳에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밥을 다 덮히는 동안 기다려주는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하고 방으로 돌아온다. 중국 상인들의 고객에 대한 무한 친절은 참 고맙다. 그리미가 컵라면 두 개를 준비해 두었다. 중국 호텔에서의 마지막 만찬. 잘 이용하면 여행이 행복해진다. 어제밤 사온 32위안의 고량주를 마시며 즐거운 식사.
내일 과연 스린(石林)을 갈 것인지를 두고 토론을 하는데, 무일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반대. 다시 나는 강하게 주장한다. 이곳을 못 보면 언제고 400만원을 내고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내일 일찍 일어나게 되면 가자는 억지 동의를 받아내었다. 오늘의 계획이 잘 진행되었다면 쥬상을 거쳐 스린까지 다 보고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동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내일 다시 먼 길을 가야했다. 그래서 이량에서 우리를 안내한 기사 아저씨에게 나는 계속해서 욕을 해 댔다. 빨리 가는 차를 놔두고 순전히 장사 속으로 우리를 태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쥬상에서 스린도 먼 길이어서 무리하게 이동했다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스린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과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그리미의 말을 따라,
아저씨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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