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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내 몫이 아니라니까_050226

대학시절에 두 번에 걸쳐 약 6개월 동안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두 번 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습니다.



비 오는 날, 종이로 만든 신문이 젖지 않게 배달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배달된 신문에 녹아있을

배달하신 분의 걱정과 한숨이 보입니다.



한창 시절이라 새벽 4시 또는 저녁 5시에

배달을 하다 보면 허기에 지쳐서

호떡이나 호빵 하나만 먹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깁니다.

 

배달을 가르켜 준 선배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더군요.

 

첫째 방법은, 배달원에게는 신문 부수를 항상 2, 3부 여유있게 챙겨 주십니다.

이것의 용도는 혹시 잘못 배달해서 신문 부수가 모자라거나,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영업용 신문이지요.

 

이 신문을 지나 가시는 어른께 파는 겁니다.

그 당시에 한 부당 100원을 받아서 2부만 팔면,

호빵도 먹고 초코 우유도 사서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먹는 빵과 우유의 맛은 말이 필요가 없겠지요.





또 한가지 방법은, 

이것은 주로 석간신문을 배달할 때 쓰는 방법인데,

인심 좋은 아주머니 댁을 알아 두었다가

허기가 지고 기운이 없을 때,

'사모님, 죄송합니다만, 물 한 잔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면,

대개는 맛있는 오렌지 쥬스와 과자를 주신다고 합니다.

저도 경험이 있었던 일로서 기분좋은 일입니다.

 

더 나쁜 방법은,

신문을 보시게 하고 아예 영수증을 끊지 않고,

싸게 해 드리면서 제 수입으로 가져 오는 방법입니다.

매월 1천원은 받을 수 있었지요.

완전한 횡령이 되는 것이지요.

 

신문 배달을 그만둔 뒤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영업용으로 받은 신문을 팔아서 빵을 사먹는 것은

큰 잘못은 아니지만, 내 몫의 것이 아닌 회사의 몫을

제가 중간에 가져 오는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그 신문을 열심히 홍보용으로 사용했으면,

새로운 신문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신규 1부당 월급의 10% 정도를

영업수당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제 몫이었고,

실제로 그것이 훨씬 큰 돈이었는데도,

그 당시에는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고,

영업이 어렵다는 것만 알았지,

열심히 하면 영업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불쌍한 얼굴로 물 한 잔을 부탁하는 행위도,

정확히 말해서 구걸행위입니다.

다른 사람의 몫을 제 몫으로 양보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석간 신문을 배달할 때,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아서,

배달하는 시간 내내 달려 다닙니다.

 

그러면,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 오르고,

땀이 비 오듯이 떨어지고,

손은 인쇄 잉크가 묻어서 새카만 까마귀 손이 됩니다.

 

그렇게 열심히 돌다 보면,

어느 맘씨 좋은 아주머니는 열심히 한다며,

수박도 주시고 음료수도 주십니다.

정말 기분이 좋아서 마주보고 씩씩하게 웃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한데 대한 격려와

남의 몫을 구걸하는 것은 이렇게 큰 차입니다.

 

내 몫인지 아닌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고,

내 몫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실천해 가는 일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신문배달을 해야 했던 힘겨웠던 시절의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P 무일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