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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사는 이야기

너무 귀한 자식

심현께서는 참깨 턴 것과 쌀과 콩 등을 볶은 것을
한보따리 준비하셔서 참기름과 미숫가루를
만들러 가자고 나서신다.

트럭도 거주지 이전을 해야 해서
겸사겸사 음성군청까지 다녀 오기로 했다.
군청에서 금왕으로 오는 37번 국도는
양쪽으로 야트막한 산과 작은 마을들이 늘어서 있어
제법 운치가 있다.
게다가 시원한 가을 하늘까지.

심현께서는 이런 길을 시원하게 드라이브 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한참 도시에서 돈과 권력을 갖고 떵떵거려야 할 아들이
농사 짓겠다고 시골로 도망온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바깥의 좋은 경치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시골에 내려와 일을 배우려면
가을에 내려오는 것이 좋겠다.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해도
모든 일을 자연이 해 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저 왔다 갔다 풀이나 한 번 메고
잘 익은 것들을 거두어 들이면 그만이다.
농사일이 이렇게 편한 것이구나 안심이 된다.

한겨울에 시골에 오면 눈이 예쁘게 내리거나
별빛이 아름답지 않으면 너무 춥고 삭막하다.
게다가 일이 없어서 심심하기도 하다.

봄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꽃이 예쁘게 피어 있어도
너무 일이 많아 정신이 없다.
한여름에도 여전히 잡초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뜨거운 바람이 땀을 쥐어 짜낸다.

게다가 봄에서 여름까지는
모든 일이 새끼를 치면서 농부의 손길을
끊임없이 요구한다고 하신다.

가을은 날도 좋고 일도 적어 농부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의 계절이다.

흙살림에서 산 미생물 영양제를
배추밭과 무우밭에 뿌리기로 했다.
영양제를 희석한 물이 큰 통에 한가득.
등에 멘 물통에 영양제를 옮겨담아 짊어지고
뿌려야 하는데,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정농께서는 좀처럼 물통을 아들에게
넘기지 않으신다.

오늘도 아들은 그저 지켜 보다가 물통이 떨어지면
집에 가서 영양제를 채워다 메어 드리고
옆에서 말벗이나 하면서 왔다갔다 한다.
일은 온전히 정농께서 하신다.

어머니는 설겆이도 못하게 하시고
아버지는 일을 못하게 하시니
내가 두 분에게는 정말 귀한 자식인 모양이다.
나도 자식들 귀하게 여기지만
이렇게 무거운 것을 메고 일하게 되면
얼른 배워서 너희들이 하도록 해라 할텐데.

우리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효도가 아니라 팔십 가까운 노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만 받고 살 모양이다.





P 무일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