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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봄이 온다, 인삼밭에서(3/22)

지난 겨울 동안에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추수를 마치자마자 정농께서 붓글씨를 쓰시다가 

넘어지시면서 오른손 팔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하셨다.

뼈가 잘 붙기는 했으나 6주 동안 기브스를 해서

손목이 정상이 아니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번에는 심현께서

나무를 자르시다가 왼손 엄지 손가락에 큰 상처를 입으셨다.

다행이도 수술이 잘 되어 현재 회복 중이신데,

기브스를 풀고 엄지 손가락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한참은 재활 훈련을 하셔야 할 상황이다.


농부들이 일을 하다가 많이 다친다.

경운기 트랙터 관리기 이앙기 전기톱 기계톱 핸드그라인더 등등

수없이 많은 농기계들이 농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그동안 용케 부상의 위험을 넘겨 왔는데,

햇수로 십 년이 되어가니 결국 영광의 상처를 갖게 되고 말았다.


하루 빨리 농민상해보험이 만들어져야겠다.

농민도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인데

산재보험 제도가 없다는 것은 개선되어야 할 일이다.


그래도 봄이 왔다.

봄이 오자 논 갈고 밭 가는 소와 농부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인삼 발굴하는 기계 소리와 음악소리가 먼저 요란하다.


우리 마을을 둘러싼 야산에 조성해 놓은 인삼밭을 캐느라고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밭에다 마구 주차를 해 놓았다.

그분들도 결국 농부이거나 농업 노동으로 사는 분들인데

한 번만 더 생각을 하면,

밭을 차로 뭉게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잘 알텐데,,,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아쉬웠다.


그 와중에 동네 분들은 인삼밭 작업자들이 철수하면

인삼 이삭줍기에 나서겠다고 전화통이 분주하다.

농약이다 뭐다 해서 인삼밭을 꺼려 하지만

인삼 이삭줍기는 마을 여자분들 최고의 행사다.


전문용어로는 뒷삼줍기라고 한다는데,

그래, 기분좋게 캐 가시고 신나게 이삭줍기 하자,,

나도 가볼까? ㅎㅎ


비가 온다고 해서 신이 주신 땡땡이의 기회라고 생각했더니

구름이 대충 있다가 해가 나오기까지 한다.

일하는 것도 좋지만, 예정되어 있던 땡땡이가 좌절되어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는 일,,,


책 좀 보다가 면세유가 나왔다기에 농협 주유소에 가서

경유 100리터를 우선 받아왔다. 11만 6천원.

밭 갈고 논둑 정리하는데 쓰일 경유다.


지난 겨울에 인삼밭 정리하고 버려지는 나무들이 있어서

부모님이 1톤 트럭으로 다섯 차나 가져다 놓으신 것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작업을 했다.

석유값이 자꾸 오르다 보니 땔나무 작업이 끝도 없다.


건너편 인삼밭에서는 오늘도 뒷삼줍기를 하고,

무일은 주워 온 인삼밭 나무를 정리하고 있으니

어제 오늘 온 마을을 인삼밭이 먹여 살리고 있다.


두시간 못되게 조심조심 일을 했는데,

갑자기 톱날에 튄 나무토막이 가슴을 친다.

순간 너무 놀라서 일손을 멈추었다.

일 그만 하라는 경고라고 하시면서 심현께서 전기를 뽑으신다.


그래,,, 어차피 쉬어야 할 날인가 보다.

하루 여섯시간은 일해야 하는데,

오늘은 고작 세시간 일하고 하루를 정리해 버렸다.


별로 한 일도 없고 밥 먹기도 쑥스러우니

국수나 삶아 먹기로 했다.

오랜 만에 어머니가 손으로 쓱쓱 비벼주신 비빔국수를 먹으니

참 고소하다.


어머니의 솜씨도 좋고, 

무일의 면 삶는 솜씨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