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아직도 그들은 소금꽃을 피울까? - 김진숙, 소금꽃나무

시간이 많아져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잠 자기, 운동, 독서가 되었다.


잠자기는 적당히 해야지 너무 많이 하고 나면,

왜 이런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너무 적게 하면 몸이 피곤해져서 놀지를 못한다.


운동은 많이 할수록 좋다.

자전거 여행도 좋고, 왼손으로 배우는 탁구도 좋다.

언제나 하고 싶은 일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과해서 피곤해도 푹 쉴 수가 있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다.


독서는 항상 즐거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기분이 크게 좌우된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몸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날 정도로 기운이 솟는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밝고 경쾌한 글들을 읽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김진숙 위원의 소금꽃 나무를 읽게 되었다.

희망버스를 보면서 그리미가 사놓은 책을 보고도

읽을 생각을 못하다가 갑자기 읽게 되었다.

이 독서가 내 평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시작부터 감정을 긁어 놓는다.

그래도 '소금꽃나무'라는 표현은 마음에 든다.

노동자의 힘들고 서러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는 최고다.

시작부터 암담하다.



김진숙 위원은 경찰과 국가안전기획부로부터 당연하게 고통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는 김치 냄새조차

 절망이 되어 갔다. 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절망이었다."


지금도 경찰, 검찰, 안기부나 국정원의 수사요원들이

과연 사람이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학교 동기 중에 한 명도 국정원에 다니고 있으니

그 친구에게도 제일 먼저 묻고 싶은 부분이다.


죄 없는 사람을 그렇게 협박하고, 고문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능하니?

설사 죄가 있는 사람이라도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는 너희들은 사람이니?


군대 3년에 23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노동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김진숙 위원은 절망으로 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열심히 일해도 연명하기 힘든 노동자들의 삶이 너무 절절했기 때문이지요.

그저 분노로 가슴이 불붙었을 것이다.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면, 노동자들의 삶이 꼭 그렇지도 않다.

뉴질랜드와 호주 같은 곳에서는 배관공이나 목공, 전기공 같은 사람들의 월급이

교수나 의사 보다도 높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려운 일을 하기 때문이란다.

교포들로부터 들은 말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이런 사회가 된다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는 훌륭한 사회다.

그래서 내가 만일 영어만 잘 했었다면,

그쪽 동네로 이민가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었는데,

말이 안통하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할 것같아 포기했다.


게다가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이다.

김진숙 위원과 같은 용접공이라면 제법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을텐데.

마음 속에 분노를 갖는 대신에 잠시라도 평화를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열사들, 그들의 부모님과 아이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그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래서 자기와 배우자의 부모만 제대로 챙길 수 있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회복지사업이라 생각한다.


" 고무신에 버선을 신으면 신발이 자꾸 벗겨진다는 말씀을 듣고,

  신문 배달해서 어머니 털 신 사들고 집으로 뛰어들던 날.

  전 사실 그날,

  어머니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며

  가슴이 벅차 숨이 가빴던 것 같아요."


겉으로 냉랭하셨던 어머니지만,

아까워서 그 신을 신지 못하셨을 정도로

중학생 김진숙의 작은 실천이 어머님을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노동자가 노동자에게 비참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의 과거인가? 아니면 지금도 그럴까?


" 20년 가까이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으로만 버텼겠습니까?

  그 폭력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지던,

  살려만 준다면 글마들 발톱의 때라도 핥을 만큼 비굴해지던

  스물여섯의 제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소름 끼칩니다."


" 회사가 오데 자선 사업하는 덴 줄 아나?

  공불 할라면 회살 관두고 하든지 말든지 해야지.

  니 공부 하라꼬 회사에서 비싼 밥 멕이고 월급 주는지 아나?"


과장이면 노동자가 아니고,

부장이면 노동자가 아니고,

이사면 노동자가 아니고,

사장이면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안다.

참으로 어리석은 구분이고, 어리석은 존재규정이다.


일하는 사람 모두가 노동자다.

노동자는 모두 가족이다.

가족과 같은 동료 노동자에게 저렇게 말하고,

동생과 같은 동료 노동자에게 저런 마음을 느끼게 한다면,

그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가족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이 짐승이지 어찌 사람일 수 있는가?


고야의 그림 중에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라는 괴물이 있다.

그 그림을 보면서 노동자들 모두 사원에서 과장, 부장, 임원, 사장들까지도

내가 혹시 그런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반성해 볼 일이다.



소금꽃나무에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안타깝다.

처절하고 비열하고 극악하고 악다구니와 안타까움 투성이다.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평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희망버스의 사람들처럼 그저 노래하고, 사랑하고, 그리워하자.

즐거움이 없으면 함께 하지 못한다. 연대하지 못한다.

나와 가족을, 동료와 친구들을 챙기면서

웃음을 나누며,

새로운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 가야 한다.


인생은 짧다.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