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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여행이 남는다 -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은 그리 독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행 조차도 창조적이어야 한다.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실크로드를 순전히 걸어서 여행한 사람은

이 늙은이가 최초이자 현재까지는 최후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사랑하는 아내가 신의 품에 안기고

직장에서는 은퇴한 늙은이가

아직 젊은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이 엄청난 계획을 세우는데

세상 누구보다도 젊고도 과감하다.


" 나는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능적이고 실제적이고 자연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도 않는 이런 길들은

  아무런 몽상도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미의 여행 방식과 같다.

무일은 제주 올레나 백두대간 여행을 빼고는

모든 여행을 자동차, 기차, 자전거로 했다.

시간의 여유가 없었던 여행이 대부분이었고,

지도 위의 많은 유명한 지점들을 끝없이 정복해 가는 여행을 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동체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리웠다.

그렇지만 말이 안통하니 어쩌랴.

말이 안통하면 두려움과 외로움이 더 커진다.

그러다보니 더욱 대로를 따라 빠르고 편리한 탈 것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베르나르도,

" 여행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은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언어 구사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정보 수집에 사실 가장 큰 단점일 수밖에 없다."


77살이 되어서 영국에서 친구가 온다고 하니

영어 공부를 시작한 은퇴한 터키의 농부 베흐체트는,


학교라고는 다녀 본 적이 없고,

낡은 신문과 소설책으로 독학을 해서

베르나르와 아주 천천히 대화를 나누었다.


베흐체트는 여행을 할 수 없어서 독서를 했고,

베르나르는 독서도 하고 여행을 했다.


21세기 한국의 우리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10년 전의 터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계속 일하라고 끊임없이 다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선전의 결과로 사람들은 계속 일한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뻔하다.

멈추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일하는 재미만을 느낄 것이다.


" 진정한 느림은 포기를 내포한다.

  나는 나를 많이 포기하지 않았다.

  떠나기 직전부터 나는 모든 것을 계획해 놓았다.

  진행 단계, 멈출 곳, 찾아갈 곳 등등 .....

  이제 나는 도우바야지트와 사마르칸트 사이의 일정표를

  짜지 않기로 결심했다."


포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계속' 만족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만족이 일상이 되어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


어쨋든 일정표를 짜지 않겠다는 올리비에의 생각은 좋다.

그저 큰 방향만 있으면 족하다.


걷기에 대한 베르나르의 찬양은 계속된다.


"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 가까이에 가 있다고나 할까.

  하루 30km 범위 내에서라면,

  걷는 것은 기쁨이며 부드러운 마약과도 같다."


무일은 몸의 효율을 중시하기에 걷는 것 보다 자전거가 좋다.

투자비의 효율을 중시하기에 자동차 보다 자전거가 좋다.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하루 30km 범위 내에서 여행한다면,

그 여행은 기쁨이며 부드러운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베르나르는 순례를 통한 영혼의 고양에도 불구하고 반성한다.

 

" 이튿날은 기어가다시피 걸었다.

  전날 무리했기 때문에 몸이 녹초가 됐다.

  등도 아프고, 발가락도 상했고, 발은 퉁퉁 부었다.

  어쩌자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먼 길을 걸었을까 후회스러웠다.

  여행을 하며 찾고자 했던 지혜는 어디에 숨은 것일까?"


여행을 하는 동안 얻고 쌓은 지혜를,

여행을 하는 동안 이용해야 하는데,

여행을 다녀와서 정리할 때에야 비로소

그 얻었던 지혜들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그러면서 크게 깨닫는다.

사람이란, 참 묘한 동물이다.


3권으로 된 그의 책에는 사진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박진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사진을 넣고자 했다면,

이 책은 5권에서 10권으로 만들어져야 했을 것이다.


" 내게 여행은,

  책이나 여행 가이드에 없는 걸 발견하는 것이다.


  내게 여행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믿기 힘든 존재를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시골 구석의 소박한 조화로움에 충격을 받거나,

  그때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못했거나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을,

  내 자신이 하거나 생각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것을 말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니,

그동안 내가 했던 여행의 상당 부분은

겁에 질려서 그랬겠지만,

제대로 만났어야 했던 것들을

바로 옆에 두고도 보거나 만나지 못했던 여행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가 두려움에 맞서며 걸었던 야만의 거리들을,

그가 더욱 많이 받았던 따스한 영혼들의 호의들을,

함께 느껴보려고 하는 마음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아직은 왠지 목숨이 더 아깝다.


그의 여행을 통해

이슬람교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 우리는 어디에서고 물라(이슬람의 종교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아요.

  나와 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기도를 올릴 때 중재자 같은 건 필요 없다구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종교와 존경의 마음이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런 가치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 나라는 세계화와 지구촌 시대에 어떻게 진보할 것인가?"


감시와 폭력으로 유지되는 사회가 아니라

존경과 인정, 관용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종교의 감시자 물라와

폭력의 비호자 경찰이 한편이 되어서는

이란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왜 공권력을 쥐는 순간 사람은 폭력적이 되는 것일까?

재물, 음식, 인간의 몸뚱아리를 탐하고 있는 자신을

그 폭력으로 가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종교의 역사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 사마르칸트를 점령한 아랍인 정복자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모든 이들에게 

  세금을 감면하겠노라 선포했다.

  712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슬람은 단일교로 자리잡았다. 


  우즈베키스탄 꼬마들은 

  교회에서 준 싸구려 사탕과 영화에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분명 녀석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단체가 재정을 지원한다고 한다.


  정치의 길과 신의 길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하는 베르나르를 통해 종교의 변천사를 본다.

조로아스터교에서 이슬람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독교가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다.


자본의 힘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지혜의 말이 있고,

종교는 그 모든 지혜의 말을 다 주워 담고 있다.

여기에 자본이 결합된 시혜가 주어진다면,

종교를 거부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자연에 대한 사랑을 공감할 때이다.


" 나는 산이 좋다.

  산이 가진 힘과 다양성과 가혹함도 좋아한다.

  산에는 바람과 비와 사람의 통행에도 때묻지 않고 남아 있는

  옛 세상의 모습이 있고,

  수십억 년 전 이 바위가 만들어졌을 때의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산이나 들판이나 자연은 자연스럽다.

그리하여 두려운 가운데서 매우 편안하다.


" 막 파미르에 다다른 것이다.

  고원은 너무 높고 인상적이면서,

  너무나 위협적이어서,

  구름과 바위와 눈으로 둘러싸인 이 바리케이드를 향해

  감히 모험에 나섰던 초기의 여행자들이

  공포를 느끼며 여행을 계속한 것도 이해가 갔다."


보통 이런 장관과 두려움에 갇히면,

타고 간 자동차 속으로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차의 속력을 높인다.


혹시 이 기계가 고장난다면,

즐거웠던 모든 것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긴장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다시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는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원했다.

그리고 위대한 자연경관과 아울러

자연과 꼭 조화가 되는 인간의 노력에도 감동한다.

결국 모든 여행자는 비슷한 것을 보려고 한다.


" 가파른 경사가 이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어느 쪽을 돌아보든,

  수천 개의 비탈진 경작지가 보였다.


  계곡 바닥으로부터 언덕 꼭대기에 이르는 이 멋진 정원에는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고는 단 1cm도 없었다.


  원래는 헐벗었을 이 산을 이토록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삽과 땀방울이 필요했을까?


  만리장성과 사원은 시간과 인간에 의해 점차 부숴진다.

  그러나 살아서 변화하는 이 경작지는

  매년 더 아름다워진다."


사마르칸트의 종탑에 도착한 그는 만세를 부르고

기념 사진을 찍고 뿌듯해 했다.


" 종탑에 도착하고 나면,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목에 너무 힘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지만,,,,,

  내가 2000년 역사를 통틀어

  실크로드 전체를 혼자 걸어서 종단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그건 보통 일은 아니다!


  종탑은 하나의 단계일 뿐이고,

  나는 여기서 지혜를 얻지는 못했지만,

  어떤 힘을,

  혹은 인간으로서 나의 길을 계속 이어가게 해주는 열정을 얻었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새로운 여행을 기대한다.

여행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자전거와 다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제 결론이다.


" 나를 떠나게 부추긴 것은 우선

  너무 오래도록 얌전히 생활하면서 억눌러온 모험에 대한 갈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유연하지만 질긴, 부드러운 끈으로 온몸이 매여 있었다.


  나는 노인들이 하나둘 가입하는 클럽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내 젊음을 누리고 싶었다.

  아직 다리도 튼튼하고, 눈도 밝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우리들은,

부드럽고 유연한 끈에 매여서 잘 살아가고 있으며,

늙어가며 죽어가는 삶을 잘 받아 들인다.


무일은 이렇게 외친다.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