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서재

화두를 갖는다는 것 - 명진 스님, 스님은 사춘기

아마도 10살 무렵에 부모님으로부터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으냐를 질문을 받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들 그렇지만, 무어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소년중앙에 연재되는 '태양을 쳐라'라는 만화를 보고,

라디오에서 열심히 중계하는 고교야구를 들으며,

5, 6학년 동안에는 많은 시간을 야구를 하며 보냈다.


혼자 있으면 벽에다 공이나 제기 던지기,

둘이 있으면 공 주고 받기를 하거나

                  하나는 던지고 하나는 치는 놀이,

셋만 되어도 제기를 가지고 야구 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누군가 야구선수가 되겠냐고 물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아서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 후로 화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정치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기왕이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수록 꿈이 작아진다고 하는데,

반대로 꿈은 자꾸 커진다.

다만, 적성에 맞지 않아서 하지 않는게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진 스님의 수행기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험난한 인생이

동생의 죽음으로 극한에 달하여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셨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마음에서 힘을 빼고,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라고 하신다.


대학 시절이야 전두환 군부 독재의 폭압에 벌벌 떨며,

어떻게 하면 맞아 죽지 않고 졸업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으니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어떻게 살면 이 시대에 필요한 삶을 살까를 고민하면서도 항상 두려웠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고,

경제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쨋든 내 화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이다. 


" 교회를 간다고 하면

  온 가족이 새 옷 입고 성경책 들고

  종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울리는

  하얀 예배당에 가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절에 간다고 하면

  할머니가 향과 초를 사들고

  쌀 한 됫박 머리에 이고 땀흘리며

  산길을 올라가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하시며,


스님은 불교가 매도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하셨다.


"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살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아

  무한한 자유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 불교이며,

  스님들은 공부에 걸림이 된다고 생각하면,

  경전도 불태워 버리고 불상도 쪼개 불쏘시개로 쓸 정도로

  도그마에 빠지지 않으려는 파격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자부심을 표현하신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폄훼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편견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해 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사실 부처님 앞에 절하며 많은 기원을 드렸는데도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나로서는 좋은 계기가 된 말씀이다.

 

" 불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문답이 장난처럼 여겨져

과연 스님들이 무엇을 깨닫고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치 성령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보았다는 

기독교 신자들의 경험이 궁금한 것처럼.



"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끊임없이 회의하고 성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신앙의 차원이 아니라

학문하는 자세처럼 느껴진다. 맞는 말씀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내 자신이

왠지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결단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진실한 구도의 자세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너무 놀기만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명진스님의 수행기를 읽고,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일 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많은 아픔을 겪으며 그 답을 찾았다.


나는 스님이 겪었던 그 아픔들은 겪고 싶지 않다.

그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다가

그 질문에 어정쩡한 답이 나오더라도 무작정 그 답을 실천해 가며

망년이 드는 그 날 또는 죽음이 다가온 그 날에


'아, 이것이었구나' 


딱 깨닫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삶을 마감하고 싶다.

모르고 죽는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없다.

충분하게 즐거운 경험들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