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찍어낸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정말로 술이나 마시고 다닌 모양이다.
덴마크에서 92년에 나왔고, 우리나라에 05년에 풀어나왔다.
술을 끊고, 더 많이 읽어야 하는 모양이다.
한 아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가 -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이야기 앞글)
도시
도시 하나
눈에 읽어낼 무엇이 있는가?
눈을 느끼고, 아름답고 따스함에 빠지고, 눈을 보며 지난날을 되살리고, 앞날을 꿈꾸고.
"눈雪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쓰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11쪽)
답답하다.
덴마크의 문화를 알수 없으니. 툴레, 그린란드, 잉글필드, 북극광, 얼음이 어는 바다, 해가 뜨지않는 겨울.
새로우면 즐거움에 눈이 반짝거려야 할텐데, 답답하다.
멋진 글인데, 만들어진 느낌. 알맞게?
나의 슬픔을 내내 왼손에 꼭 틀어쥐고 있었다.
왼손에 틀어쥐고 있는 슬픔은 그렇다치고, 슬픔이 얻어내야만 하는 선물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슬픈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왜 슬픈지 = 무엇이 내마음을 슬프게 만들었고,
그 무엇은 왜 일어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슬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경찰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율리아네에게는 기댈수 있는 어깨를 빌려준 뒤 그녀를 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느라 나의 슬픔은 내내 왼손에 꼭 틀어쥐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슬픔에 무너질 차례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슬픔은 선물이며,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박하차 한 잔을 만든 뒤 창가로 가서 선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작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 끝마치지 못한 한 가지 일, 감정의 홍수를 막아버릴 수 있는 종류의 일.” (23쪽)
이야기에 유클리드가 나오다니.
"물론 유클리드로는 그애를 겁줘서 쫓아버리지 못했다. 당연히 무엇을 읽든 별 차이가 없었다." (29쪽)
이런 표현도 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에서 갑자기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건너간다.
인간이라는 한자어를 쓰지 않으니 사람이라는 말이 두번 나온다. 이럴때는 수식어를 하나 붙여주면 된다.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자애로운 사람과도 같은 친절한 표정.
왜 이렇게 바꾸냐고? 문화는 스며든다. 녹여버린다. 모든 재료를 음미하고 싶다면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 되듯이, 모든 문화를 즐기려면 내것을 지켜가며 섞어야하기 때문이다.
"얼굴에는 낙타의 등에 앉아서, 모래속을 기어가는 세상의 나머지 사람(번역원문:인간)들을 자애롭게 내려다보는 사람과도 같은 친절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33쪽)


일각고래라 narwhal. 그리고 바다쇠오리들은 왜 떼죽움을, 들쥐들도, 메뚜기들도 왜 떼로?
[뉴펭이알] 뿔 달린 고래? No! "턱 뚫고 나온 엄니" < 멸종뉴스 < 멸종 < 기사본문 - 뉴스펭귄
"왜 한달 동안 3천마리의 일각고래가 철철넘치는 생명력으로 하나의 피오르드안에 모여드는 것인지 설명하려고 했다. 그 다음달에는 얼음이 고래를 가두게 되고, 그러면 고래들은 얼어죽게 된다. 5월과 6월에는 너무나 많은 바다쇠오리들이 몰려들어 골짜기를 검게 물들인다. 다음달에는 50만 마리의 새가 굶어죽게 된다." (54쪽)
https://youtu.be/uJ24n_JiJmE?si=ez4ZsCV3dYsy5qHp
그린란드에는 5천년전부터 몽골계 이누이트(사람이라는 뜻 / 에스키모 : 생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 얕잡아 보는 말로 쓰지않는 것이 좋다)들이 살아왔다. 985년 노르만족이 아이슬란드를 거쳐 남쪽에 살았다. 붉은머리 에리크라는 사람이 얼음으로 뒤덮인 땅에 바이킹들을 유인하기 위해 그린란드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날씨가 지금보다는 좋아서 밀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살다가 1,400년경에 날이 다시 추워지면서 이누이트들만 남게 되었다가 1830년경에 덴마크에서 다시 진출했다. 2차대전기에 히틀러의 유에스 침공의 전진기지가 될 것을 우려한 유에스사람들이 비행장을 건설하였다. 바다표범 사냥으로 에리크는 큰돈을 벌었다고도 한다. 지금은 이누이트와 덴마크의 혼혈이 90%가 넘어서 그린란더라고 불리운다.
그린란드의 바다에서 1년에 약 백만마리의 바다표범이 계속 태어나고 있단다.
https://youtu.be/ZhxCJC_8-XA?si=QiS8UridspGzva-W
4도가 중요한 온도구나.
"그린란드에서 익사한 사람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의 수온은 4도 미만이고, 그런 온도에서는 부패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기서는 위속의 음식물이 발효하지 않는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발효된 음식물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몸속에 새롭게 부력이 생겨 시체가 바다 표면에 떠올라 해변으로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59쪽)
이나=이야기 나누기는 어렵다. 잘 듣고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 말은 그런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데, 그러지를 못한다. 그런점에서 카톡이나 SNS는 적어도 남의 말을 끝까지 듣게 한다. 짧아야 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해야하지만 말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성급한 성격 때문에 대화에서 빠져나오거나, 마음속으로 그 상황을 개선시키려 하거나, 언제 등장할지 준비하고 있다가 상대방이 입을 다물면 그때 무대위에 발을 내딛는다.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달랐다. 내가 말을 하는 동안, 그는 딴 데 정신 팔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는 말만 들었다. (중략) 잘 듣고 곰곰히 생각할줄 아는 사람" (65~6쪽)
wikipedia의 첫문장은 이렇다. 그러다가 왜 원본을 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Isaac Newton's rotating bucket argument (also known as Newton's bucket) is a thought experiment that was designed to demonstrate that true rotational motion cannot be defined as the relative rotation of the body with respect to the immediately surrounding bodies.
뉴턴의 회전하는 물동이 논쟁(또는 뉴턴의 물동이라고 알려진)은 사고실험이었다. 이 실험은 다음을 보여주기(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회전운동은, 가까이 있는 물체들과 관련이 있는, 물체의 상대회전으로서 규정(정의)될수 없다."
애플의 무료도서에는 The math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가 없다. MacTutor라는 곳에 인용된 뉴턴의 글을 읽어보자.
"the surface of the water will at first be flat, as before the bucket began to move; but after that, the bucket by gradually communicating its motion to the water, will make it begin to revolve, and recede little by little from the centre, and ascend up the sides of the bucket, forming itself into a concave figure (as I have experienced), and the swifter the motion becomes, the higher will the water rise, till at last, performing its revolutions in the same time with the vessel, it becomes relatively at rest in it. (중략) I do not define time, space, place, and motion, as they are well known to all. Absolute space by its own nature, without reference to anything external, always remains similar and unmovable.
물의 표면은 처음에는 평평하다. 물동이가 아직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동이가 돌고, 점점 그 움직임이 물에 전달되면, 물동이의 운동이 물을 돌도록 만든다. 한가운데는 조금 움푹 들어가고, 물동이 표면에 가까운 쪽의 물은 위로 조금 올라갈 것이다. 나는 물이 오목하게 들어간 모습이 만들어진 것을 관찰했다. 물동이가 빨리 돌면 돌수록, 물은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드디어 물은, 물동이와 같은 속도로 돌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의 운동은 물동이 안에서 안정된다. (중략) 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시간-공간-장소-운동을 규정=정의하지 않는다. 외부의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는, 자연 자신에 의한 절대공간은, 언제나 똑같은 상태로 움직일수 없는 상태로 있다."
뭔가 이상하다. 마지막 문장에서 relatively at rest라고 했는데, 그러면 도는 속도가 같아진다는 것인지, 물이 다시 처음처럼 평평해진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물동이가 돈다고 물이 돌까? 물동이가 계속해서 돈다면, 물동이의 표면이 거칠어서 물을 돌리는 힘을 전달할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고끄하고 =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서 뉴턴까지 잠깐 다녀왔다. 절대공간 absolute space라는 말에 아주 조금 다가갈수 있었다. 그런데, 뉴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국은 환상이라는 잘못된 직관에 의지하게 된다. 모든 직관은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이야기에서는, 직관으로 길을 찾을수 있다고 만들더라도 말이다. .
"음악의 경험을 말로 강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얘기다.
나의 유일한 영혼의 형제는 뉴튼이다. 대학에서 자연철학의 수학 원리 1권에 나오는 한 문단을 처음 배웠을 때 감동받았었다.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양동이를 살짝 들어올리면 표면이 기울어진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공전하는 지구, 자전하는 햇님, 흔들리는 천체의 내부와 주위에는 절대 공간이 있어서 삶안에서 일정한 시작점이나, 초기 체계, 혹은 고정점을 찾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절대공간은 가만히 서 있으며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나는 뉴튼에게 입을 맞출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후에 나는 에른스트 마흐가 양동이 실험을 비판한 것과, 그 비판이 아인슈타인 연구의 기초를 형성했다는 사실을 배우고는 절망에 빠졌다. 그때 나는 어렸고 좀더 쉽사리 감동받을 시기였다. 오늘날까지 인간이 해낸 일은 모두 뉴튼의 주장이 부적절하다는 것뿐이다. 모든 이론 설명은 직관을 감소시킨다. 아무도 절대 공간에 대한 나나 뉴튼의 확신을 바꿔놓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의 논문에 코를 박고서는 아무도 카나크까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66쪽)
일단 넘어가자. 뉴턴 - 마흐 - 아인슈타인까지 몽땅 이해하고 난뒤에 이 이야기를 읽으려 하다가는, 읽을수 없기 때문이다.
크리오라이트가 뭔지 궁금해서 코파에 물었더니 이런 답을 준다.
"빙정석(氷晶石, Cryolite)은 Na₃AlF₆(헥사플루오로알루민산 나트륨)으로 구성된 희귀 광물입니다. 그린란드 서해안의 이비투트(Ivittuut) 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으며, 한때 주요 채굴지로 알려졌습니다. 빙정석은 역사적으로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알루미늄 광석의 전기분해 과정에서 용융제를 제공하여 알루미늄 생산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었죠.
하지만 1987년 이후 이비투트 지역의 빙정석 매장량이 고갈되었고, 현재는 다른 지역에서 소규모로 발견되거나 인공적으로 합성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빙정석은 단사정계 광물로 분류되며, 그 독특한 성질 덕분에 과거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린란드에 갈수는 없지만 그린란드에 대한 내용을 '유클리드 원론'에서 읽을수 있단다. 무슨 말인가? d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