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는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죽었다. 부인의 말을 참 잘 듣는다고 하여 괴롭다. 나도 잘 듣는데, 그런 나도 석렬이나 덕수처럼 한심한 사람이 아닐까. 고민이 된다.
새벽 2시까지 축의시대와 리스보아 카드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4시간 만에 잠이 깨어 유튜브를 듣는다. 유튜브 중독. 한달간 10기가의 데이터를 받았는데, 8일만에 8.5기가를 썼고, 그중 5.5기가가 유튜브다. 자제해야겠다.
다시 전기요를 챙겨 가방에 넣는다. 하루만에 호텔을 떠나려니 아쉬웠지만 짐을 쌌다. 천천히 가자.
9시가 다 되어서야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랜만에 남이 만들어주는 밥을 먹으니까 기쁘다. 두개의 작은 접시에 두번씩 받아먹었으니 4접시를 먹었다. 접시는 재사용했다. 1일 2에그타르트를 달성했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단맛을 챙겨먹었다. 많이 걸으니 많이 먹어야 한다.
볼트를 불렀다. 덴젤 워싱턴을 닮은 친구가 아주 깨끗한 차를 몰고 나타난다. 침착하게 우리를 제로니모스 수도원으로 데려다준다.
먼저 ask me lisboa 카드 48시간을 발급받았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며칠간의 고민끝에 결국 사버린 리스보아 카드를 받았다. 오늘은 오후부터 쓰거나 쓰지 않을 계획이다. 3박 4일을 잘 배분해야 한다.
바스코다가마가 안치되어 있는 제로니무스 성당(원래 무료입장)에 긴줄이 늘어서 있다. 맞은편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줄에 비하면 절반도 안된다. 금요일 11시인데 이렇다. 내일 아침에는 8시 반에 집에서 나와야겠다. 이곳도 어린아이와 함께 온 부모들은 먼저 입장을 시킨다.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한 유럽의 모든 공공기관들이 이런 대우를 한다. 멋진 일이다.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면서, cp라는 포르투갈 기차예매용 앱을 내려받았다. 아주 잘되는 듯하더니 결제를 하려고 하니 마구 튕겨낸다. 안되겠다. 호텔에 가서 차분히 하자. 기차예매를 해야 다음 단계로 뽀르띠망 portimao에 있는 붉은 해변 Praia da Rocha의 에비를 예약할수 있다.
성당은 늘 보던 곳이라서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피곤한 눈을 쉬려고 한다. 멋진 대리석 기둥의 청소작업을 하고 있다. 하얗게 빛나는 대리석 외관이 멋진 곳인데, 내부의 기둥들도 때가 벗겨지면 장관이겠다. 바스코다가마는 좋은 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종교개혁(1517)이 있기 전인 콜롬부스의 시대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항해하면서 자기땅이라고 우긴다. 레콩기스타(722~1492 : 800년 전쟁)를 협력해서 해낸 나라들이어서 그런지 교황의 권위에 복종하여 발견한 땅의 경계를 긋는 토르데시야스조약을 평화롭게 체결한다.
* 아래 두개 지도의 출처 : 위키백과
바스코다가마는 포르투갈의 대표선수다. 1497년에 리스본을 출발해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2년이 걸렸고, 4척의 배중 2척, 170명중 55명만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3번의 인도항로를 항해하는데 성공했고, 인도의 부왕으로 임명되어 살다가 인도 께랄라의 코친에서 1524년에 죽었다. 해양박물관에 가보고 싶다.
명의 정화는 1405~1430년 사이에 아프리카 동부까지 항해를 해서 포르투갈의 인도항로의 절반은 이미 해냈다고 볼수 잇다. 귀족들의 이권다툼과 중화론을 바탕에 둔 해양봉쇄령의 영향으로 더 이상의 항해가 없었다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다. 충분해서 만족스러웠기도 했을 것이다.
한참을 놀다가 70분을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씩씩하게 걸었다. 대사관 거리였다. 처음보는 앙골라 대사관도 봤다. 러시아대사관 앞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우울해 보인다. 전쟁과 불안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데, 우리는 계엄을 이겨내면서 축제를 벌인다.
이렇게 열심히 걸어도 15,000보 정도라서, 잘 먹고 다니니 살은 빠지지 않는다. 좀더 열심히 걷자.
호텔리어들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기차표를 예약하려고 했는데도 실패했다. 그래도 한가지 수확은 있었다. 앱이 아니라 홈페이지에 가서 직접 처리하자. 결국 그 방법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은퇴자는 50% 할인이라는 유혹에 빠져 또 일을 만들고 말았다. 덜컥 할인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러고나니 정신이 든다. 어떻게 증명하지. 일단 은행으로 들어오는 연금을 내려받아 기차회사에 보냈다. 한글이다. 그러고 나서 국민연금에 들어가보니 국영문증명서를 모두 발급받을수 있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리미의 영문증명은, 하필이면 전산보완중이라서 이틀후에나 발급할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문제해결이다. 65세 이상은 여권만 보여줘도 증명이 되어 50% 할인된 기차표를 살수 있다.
모든 증빙을 영문으로 완벽하게 하고도 결국은 이표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연금생활자라도 최저임금 아래여야 한다. 우리는 그럴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시에 홀리데이인을 나와 에비로 갔다. 꼬불꼬불 오래된 집들이 늘어선 골목길에 내렸다. 괜찮았다. 집도 넓어서 좋았는데, 묘하게도 썰렁하다. 그래도 넓은 화장실과 깔끔한 부엌, 아담한 침실이 있어서 좋다. 3박을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다.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빵과 과일, 계란을 샀다.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사는 곳, 어떤 곳은 폐가가 되어 비어있고, 우리가 묵는 숙소는 그나마 에비로 관리가 되어 있어서 깨끗하다. 한가지 흠은, 단열이 좋지 않아서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