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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세상에 대해 쓸데없는 기대를 버려라_한낮의 어둠_240120 el sábado, veinte de enero_Суббота, двадцать январь

실현불가능한 낙원은 이야기하지 말자.

독재와 전체주의를 부른다.

 

낙원을 제시하고 실현하려다보면,

꽉 막힌 어리석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낙원의 추종자가 아니라

권력과 사리사욕에 굶주린 야만인들에 지나지 않는다.

 

낙원은 머나먼 하늘 위에 떠있는 별이므로,

가야할 방향에 불과하고,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그러나 그리로 향해 갈때

우리는 잘 사는 것이다.

 

꽉막힌 어리석은 추종자들에 대한 한탄.


"이 잘난 세대를 우리가 만들어 냈다니" (20쪽)

 

[ 첫번째 심문 ]

 

"내가 꿈꾸고 있다는 걸 믿을수 있다면, 그건 정말 꿈이될거야 (중략) 이것 역시 견뎌내야 해. 끝까지 올바르게" (24쪽)

 

"혁명가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게 아닐까? 만약 자신을 모든 사람과 동일시한다면,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킬수 있단 말인가? (중략) 우린 당신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지. 그러나 우리손에 있는 자유는 채찍처럼 보였어. (중략) 그들은 권력철폐를 지향하는 권력을 꿈꾸었고, 사람들이 지배받는 습관을 없애기 위해 지배하는 일을 꿈꾸었다." (87쪽)

 

혁명가는 모두를 위한 꿈을 꾼다. 그러지 않는 자는, 혁명가의 탈을 쓴 독재자이자 파시스트 전체주의자다.

속지말자.

자유를 말살하려는 독재자들은 언제나 동지를 팔고, 절대선을 팔아서 권력을 유지한다.

그속에서 폭력과 살육이 벌어지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저항이 일어난다.

저항하지 못하면, 누구나 독재자의 도구가 되어 자유를 살해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 두번째 심문 ]

 

1517년 10월 성경을 독점한 이들에 의한 신앙을 종식시킨, 루터의 종교개혁
1917년 10월 귀족과 왕족, 자산가의 정치를 종식시킨, 러시아 혁명

 

두개의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성경을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했다.

 

너무 끔찍해서 혁명따위는 지구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정치와 신앙의 노예가 될지언정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것 아닌가?

 

야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야만인들과 싸우다
죽어가야 하는가?


개신교는 타락했고,

사회주의는 패배했다.

"크리켓처럼 규칙에 따라 행해지는 혁명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중략) 위태로운 전횐기에는 오래된 법칙(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법칙)외에는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중략) 우리가 좇는 잘못된 생각은 모두 미래세대에게 자행되는 범죄행위다. (중략) 사람의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속에 깃든 악의 씨앗까지 학대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종교재판관을 닮아있다. (중략) 따라서 우리는 서로를 파괴할 운명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138~141쪽)

 

이 이야기는, 스탈린 독재를 유지하고, 독재와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회유하고 협박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탈린 독재는, 사회주의 혁명의 보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하는 위선만이 가득하다.

 

독재자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세우고, 토론보다는 다른 의견을 말살하고,

시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것을 순진한 도덕행위로 치부해 버린다.

 

목숨을 구하려면,

독재에 협력하고 굴복하라고 요구한다.

개인의 자유와 의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공동체에 의한 폭력을 미화한다.

엉터리다.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은,

나의 자유와 의지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년 수백만명이 전염병이나 그밖의 자연재해로 무의미하게 죽고있지. 그런데 역사에서 가장 전망있는 실험을 위해 수십만명이 희생되는 것을 우리가 피해야 하는가? (중략) 중국의 황허 유역 희생자들은 때때로 수십만명에 이른다네. 자연은 인류에 대한 자기의 실험에 무덤덤하지. 그런데 인류는 왜 자기자신을 실험할 권리를 가져선 안된다는 말인가?" (220쪽)

 

그러면, 나는 이러한 독재자들의 협박과 폭력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굴복해야 한다. 도망쳐야 한다. 살아야 한다. 

적당한 때에 싸워야 한다.

마침내 이겨야 한다.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살고봐야 한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게, 혁명가의 임무다." (314쪽)

 

[ 세번째 심문 ]

 

러시아 10월혁명은 스탈린 독재로 실패로 돌아갔다.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다.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낙원은 원래 존재하지 않고,

멀리서 방향만 잡아주는 별이다.

 

"사회주의 이론의 과오는, 대중의 의식수준이 끊임없이 그리고 꾸준히 오른다고 믿었던 점이다. (중략) 우리는 세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간단한 과정이라 여겼지만, 실은 수세기에 걸쳐 측정할수 있을만큼 복잡한 것이다. (중략) 소리없는 절망속에서 '침묵속에서 죽는 것'이다." (230~1쪽)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한 논리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독재자를 비호하는 논리는,

파시즘을 비호하고, 전체주의를 비호하는 것과 같은 논리에서 나왔다.

 

"농부들이 도시에 가려면 해가 뜰무렵 역으로 가서 기차가 올때까지 대합실에 누워자곤 했소. (중략) 그 농부들이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소. (중략) 공장장이 용광로를 비우고 다시 비우는 사이에 드러누워자다가 총살됐소. 다른 나라들에서는 농부들이 정교한 산업을 익히고 기계조작습관을 들이는데 100년 혹은 200년이 걸렸소. 하지만 이 나라에선 고작 10년이 걸렸소.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꾸짖고 해고하지 않으면, 나라는 그냥 정지될거요." (300쪽)

 

정치는 어쨌든 앞서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진다.

시민들이 먹고 사느라 복잡한 문장을 해석하고 있을 시간이 없으므로,

민의 말과 문장으로 간단하게 전달할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색깔만 좋은 생강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문장을 단순하게 반복함으로써 대중의 머릿속에 주입하는게 필요하다. 옳은것으로 제시된건 금처럼 빛나야하고, 틀린것으로 제시된건 아스팔트처럼 검어야한다. 정치의 진술은 마치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는 시장의 생강과자처럼 색깔이 칠해져야 한다." (312쪽)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두의 삶이 다 이렇다.
마지막 날에 이 문장을 붙잡고 있어 보자.

아마 무척 허무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하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내가 옳았다면 후회할 것이 없고,

  틀렸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것이다." (317쪽)

 

[ 허구의 문법 ]

 

어느 실패한 혁명가의 죽음에 관한 기록을 조금 힘들고 지겨웠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

처음부터 해야 하는 이 질문을,

마지막 순간에 떠올렸기 때문에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닐까?

 

그의 가슴속에 흐르는 연민, 윤리, 반성의 마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람의 본성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결코 패배가 아니다.

 

그의 실패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잃어버린 독재의 땅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쳐야 했다.

 

우리는 사피엔스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다.

생각을 잘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쓸데없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이 방황하는 인류를 위한 그런 목표가 정말로 있었는가?"